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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초강국의 불편한 미래

TSMC 호황이 만든 집값·전력·교육 왜곡… “정상적이지 않은 성장” 경고 나오는 대만
등록 2026-05-07 21:44 수정 2026-05-12 14:13
2022년 12월29일 대만 남서부 타이난 과학단지에 있는 티에스엠시(TSMC) 건물. REUTERS 연합뉴스

2022년 12월29일 대만 남서부 타이난 과학단지에 있는 티에스엠시(TSMC) 건물. REUTERS 연합뉴스


한국에 삼성전자가 있다면, 대만에는 티에스엠시(TSMC)가 있다. 삼성전자가 메모리 시장에서 강자라면, 티에스엠시는 전세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의 60%를 장악한 독보적인 1위 기업이다. 티에스엠시는 1987년 대만 정부가 국책 연구기관인 공업기술연구원(ITRI) 출신 모리스 창을 데려다 국가 차원에서 설계하고 키운 회사다.

티에스엠시는 인공지능(AI) 슈퍼사이클(AI 기술의 폭발적인 성장으로 반도체 등 관련 산업이 호황을 누리는 현상)로 인해 막대한 이윤을 내고 있다. 2025년 매출액은 약 177조8377억원, 영업이익은 약 90조1400억원을 기록해 사상 최대치를 찍었다. 매출액 기준 티에스엠시는 대만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11~13%를 차지한다. 여기에 국가의 안보와 생존을 책임진다는 의미까지 더해져 티에스엠시는 ‘호국신산’(나라를 지키는 신성한 산)으로 불린다. 1992년 민영화 뒤에도 대만 정부가 설립한 국가발전기금이 티에스엠시 지분 6.3%를 소유해 최대 단일 주주로 남아 있다. 삼성전자 역시 국민연금(지분 약 7.6%)이 주요 주주로 있고, 단일 기업으로 경제 기여도가 가장 크다는 점에서 한국에서 티에스엠시와 유사한 지위를 점하고 있다.

반도체산업 집중도(전체 수출의 약 35%)가 한국(약 25%)보다 높은 대만에서는 최근 ‘티에스엠시 효과’(반도체 호황이 낳은 사회적 부작용을 뜻하는 용어)가 고개를 들고 있다. 티에스엠시는 2025년 직원 한 명당 약 1억1천여만원의 성과급을 지급했는데, 억대 성과급 지급이 해마다 이어지자 상대적 빈곤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2025년 들어 티에스엠시 직원들의 평균연봉(약 1억6천만원)이 대만의 평균임금(약 3100만원)보다 5배 이상 높아지다보니 부동산 가격과 물가를 올리는 주범으로 지목된 것이다. 신주, 가오슝, 타이난 등 티에스엠시 공장 지대의 물가와 집값이 올라 서민과 청년이 삶의 터전에서 밀려나고 있다.

티에스엠시가 국가의 인적·물적 자원을 독식하는 블랙홀이 되면서 산업 간 불균형도 심화하고 있다. 2023년 이미 국가 전체 전력의 9%를 소비하는 ‘전기 먹는 하마’가 되자, 대만은 탈원전 기조마저 뒤집었다. 내부에서조차 “정상적이지 않은 성장”(양진룽 대만 중앙은행 총재)이라는 지적이 있고, “티에스엠시가 주거·교육 부문에서 지역사회에 더 기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 속에 반도체산업이 국가안보의 핵심 자산이 되다보니 이런 목소리는 울림이 크지 않다. 반도체산업 종사자들의 직업성 질환을 연구해온 직업환경 전문의 피터 우는 한겨레21에 “티에스엠시는 대만 내에 여러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고 있지만, 이게 회사의 급속한 확장에 따른 지역사회와 환경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완화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지적했다.

대만의 현재가 한국의 미래라고 단정하긴 어렵다. 한국은 반도체 외에도 자동차·조선·철강·방산 등 전통적 제조업이 강하다. 다만 반도체 집중에 따른 전조 증상은 곳곳에서 관측됐다. 이미 경기도 용인·화성·수원 내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시설이 있는 지역의 집값이 고공행진하고 있다. 에스케이(SK)하이닉스 노동자들의 성과급 규모는 이제 예능 소재로 활용될 만큼 국민적 관심사가 됐다. 그간 ‘의치한약수’(의대·치대·한의대·약대·수의대)로 요약된 입시 철옹성에도 ‘반’(반도체)이 새로 추가됐다.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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