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반도체 국민배당’이 공산주의면 원숭이도 빨갱이겠네

모든 사안 ‘이재명 정권=친북친중 독재'로 모는 국힘… 극우포퓰리즘 앞, 장동혁과 한동훈은 한 끗 차
등록 2026-05-14 22:02 수정 2026-05-17 11:40
이재명 대통령이 2026년 5월12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 겸 비상경제점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재명 대통령이 2026년 5월12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 겸 비상경제점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재명 대통령은 2026년 5월12일 국무회의에서 “국민의 눈을 속이는 포퓰리즘적인 긴축재정론의 함정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했다. 적극적 재정 운영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다. 보통 ‘포퓰리즘’이란 개념은 확장재정을 보수정치가 공격할 때 쓰는 경우가 많은데, 오히려 긴축재정론에 대고 이렇게 일갈하니 신선한 느낌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왜 이런 말을 했을까? 포퓰리즘에 대한 깊은 연구와 고민 끝에 나온 발언 같지는 않은데, 다만 직관이 작용했으리라는 생각은 든다. 보수 진영이 정부가 재정을 쓰는 모든 시도에 ‘포퓰리즘’이란 딱지를 붙여 비판하며 긴축을 주장하는 것 자체가 대중을 현혹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그걸 오히려 포퓰리즘으로 불러 마땅하지 않겠냐는 의미로 보인다.

 

퇴행적인 국힘 메시지의 뿌리, 포퓰리즘

 

흥미로운 것은 어떤 경로든 대통령이 ‘포퓰리즘’이란 키워드를 짚은 게 나름 이유가 있어 보인다는 점이다. 최근의 보수정치는 포퓰리즘 개념을 빼놓고 평가하기 어렵다. 국민의힘이 내놓는 메시지가 퇴행적인 이유도 근본을 찾자면 여기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가령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글에서 시작된 ‘국민배당금’ 논란에 대한 국민의힘의 반응을 보자. 반도체산업의 호황으로 초과세수가 발생한다면 국부펀드 등의 방식으로 사회에 환원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수 있다는 이 주장은 당연히 여러모로 논쟁이 될 수 있는 내용이다. 문제는 그 수준인데,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공산주의 배급 경제”라고 했고, 송언석 원내대표는 “사회주의적 발상”이라고 했다. 세금이 많이 걷히면 그걸 양극화 해소 등에 쓰자고 미리 정해놓자는 게 왜 공산주의인가? 더군다나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선전은 국가적 지원과 특혜에 대한 사회적 용인, 노동자의 희생과 시민의 양해에 힘입은 것이다. 이들이 낸 세금의 사회 환원을 정부가 모색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문제는 이들이 이런 퇴행적 주장에 매달리는 이유다. 이걸 논하기 전에 한 가지 사례를 더 보자. 최근 한국 선박 에이치엠엠(HMM) 소속 나무호가 호르무즈해협에서 피격되는 일이 있었다. 유력 용의자인 이란은 범행(?)을 부인했다. 정부는 조사단을 파견했고 미상의 비행물체로부터 공격이 있었음을 밝혀냈다. 최종 결론은 잔해물 등을 추가 조사해 내린다는 계획이다.

정부의 신중한 태도는 이해가 가는 면이 있다. 명분 없는 전쟁의 수렁에 빠져 있는 미국이 그러잖아도 호르무즈해협에 대한 군사적 개입을 요구하는 상황이다. 호르무즈해협에는 우리나라 선박 26척과 선원 160여 명이 고립돼 있다. 문제 해결을 위해 우리 정부는 이들 정보를 이란에 넘겼고 인도적 지원 등도 모색했다. 잘못되면 이런 노력은 모두 물거품이 된다.

그런데 장동혁 대표는 정부가 공격 주체를 언급하지 않는 방식으로 사건 은폐와 축소를 시도한다면서 “이 정권은 이란에 돈까지 갖다바쳤다. 그 돈이 우리 선박을 공격한 드론으로 돌아왔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이건 ‘북한에 대한 퍼주기가 핵실험과 미사일 도발로 돌아왔다’는 전형적 주장의 변주다. 그러니까 ‘이란=북한’이므로 이 정부의 이란에 대한 태도는 곧 북한에 대한 태도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연상과 환유의 주술뿐, 논증이 없다

 

이렇게 짚어가다보면, 국민의힘 지도부의 모든 주장은 ‘이재명 정권은 친북·친중 독재’라는 어느 한 점으로 수렴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엄밀한 논증이 아니라 이미지의 연상과 환유로 이뤄진다. ‘이란에 약하니까 북한에도 약할 것이다, 그런데 북한에 약한 것은 이들이 같은 공산주의자이기 때문이다, 김용범 실장의 주장은 이들이 공산주의자라는 것을 증명한다, 공산주의자는 보통 독재를 한다, 따라서 이재명 정권은 독재다’라는 식인데, 비유하자면 ‘원숭이 엉덩이는 빨갛다, 그런데 빨간 것은 사과이다, 사과는 맛있다…’로 시작하는 구전동요를 연상케 하는 방식이다.

이는 포퓰리즘의 대중 동원 방식인데,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의 ‘등가 사슬’과 ‘텅 빈 기표’라는 개념을 활용하면 국민의힘이 무슨 시도를 하고 있는지 개념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라클라우는 사람들의 서로 다른 요구가 기득권에 반대하기 위해 등가적으로 이어지는 걸 ‘등가 사슬’이라 불렀다. 사람들의 요구는 이 과정에서 재구성되고, 이를 통해 담론적 주체로서 ‘인민’이 등장하게 된다. 뒤집어 말하면 등가 사슬을 어떻게 접합하느냐에 따라 ‘인민’은 서로 다른 얼굴을 하고 나타날 수 있다. 과거에는 이 과정이 전형적인 포퓰리즘으로 귀결됐지만, 최근에는 특정 계층·인종·민족을 배제하기 위한 ‘극우포퓰리즘’으로서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 정치의 맥락에선 국민의힘이 하는 정치도 이 범주에 들어간다.

이때 요구를 하나로 묶는 것은 ‘텅 빈 기표’인데, 정확히 같은 지향점을 가진 건 아니면서도 독재와 전체주의를 반대한다며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한다고 주장하며 정치적 연합을 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예를 들어 이 연합 안에서도 ‘김정은 독재와 박정희 독재를 똑같이 반대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김정은 독재는 안 되지만 박정희 독재는 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 모두가 어찌됐건 ‘독재를 반대한다’고 말하는 것은 가능하므로 ‘자유민주주의자’를 자처하며 ‘이재명 독재’에 반대하는 것이다. 즉, 이들의 ‘자유민주주의’는 구체적 가치 지향의 문제가 아니라 독재와 전체주의로 규정된 대상을 반대하는 연합을 이루기 위한 ‘텅 빈 기표’로서 작동한다.

 

잊지 말자, 여기는 ‘다이내믹 코리아’다

 

장동혁 대표와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의 차이는 이 연합에서 ‘윤석열 독재’를 용인할 것이냐에만 있다. 장동혁 대표는 그게 가능한 ‘등가 사슬’을 구성하려는 것이고, 한동훈 전 대표는 이를 배제한 ‘등가 사슬’ 구성을 시도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이 대목에서 파당적으로 대립하면서도 ‘이재명 독재’에 반대하며 ‘자유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정치에서는 같은 좌표선상에 머무르게 된다.

이런 방식으로 보면 장동혁 대표가 비상계엄에 대한 국회 통제권을 강화하는 개헌을 오히려 장기 독재로의 길을 닦는 것이라며 거부하고, 미국 우익 매체에 이재명 정부를 친중·친북 정권으로 묘사한 글을 기고한 이유도 알 수 있다. 극우포퓰리즘의 조직화 전략에 충실한 행보인 것이다. 과연 이게 먹힌다고 보나 싶은 생각도 드는데,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여기가 ‘다이내믹 코리아’라는 사실이다.

이들은 문재인 정권을 대상으로 이 전략을 실행해 윤석열 시대를 열었다. 그런 학습효과로 보면, 지금이야 어림없어 보여도 정권 말기에 가면 또 모를 일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 그때 가서 정권에 대한 실망감에 갑자기 극우포퓰리즘 바람이 불면? 제1야당 대표가 가장 큰 수혜를 입는다. 장 대표가 기를 쓰고 물러나지 않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장동혁 대표의 꿈은 현실이 될까? 가능성은 크지 않다. 시민들은 이런 정치에 두 번 넘어갈 수 없다는 학습효과를 얻었을 것이다. 더 완전한 시민의 승리는 이재명 정권이 모범적으로 성공할 때에야 이뤄진다. 지금 그렇게 가고 있는지 돌아볼 때다.

 

김민하 정치평론가

한겨레 저널리즘
응원으로 지켜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