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10월 전남 영광군 한화큐셀 태양광발전소 모습. 염전 위에 지은 이 발전소의 면적은 100만㎡로, 약 100메가와트(㎿)의 전기를 생산한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2026년 2월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침공으로 이란 전쟁이 발발하기 몇 개월 전,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에 ‘에너지 무기의 귀환’(The Return of the Energy Weapon)이라는 제목의 의미심장한 기고가 실렸다. 일찍이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이 독일을 상대로 구사했던 전통적인 경제 무기가 2020년대에 새로운 무기로 재부상했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 기고문은 마치 예언처럼 2026년 3월 호르무즈해협 봉쇄와 유가 폭등으로 현실화했다.
사실 21세기에 지정학적 경쟁과 갈등에 등장했던 주요 경제 무기는 에너지가 아니었다. ‘무기화된 상호의존성’(Weaponized Interdependence) 시대의 주요 무기는 금융과 인터넷망, 반도체 같은 첨단 기술이었다. 여기에 중국이 최근 동원한 ‘희토류’ 같은 핵심 원료나 소재가 추가됐다. 하지만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과 2026년 이란 전쟁이라는 두 번의 전쟁이 오래된 경제 무기인 에너지를 위험스럽게 갈라지고 경쟁하는 글로벌 각축장에 훨씬 파괴적인 방식으로 내놓게 되었다. 에너지가 상대방의 급소를 겨눌 무기로 변신한 것이다.
그 결과 이제 세계가 에너지에 접근하는 태도는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애초에는 최적의 공급망을 구축해 ‘저렴하게’ 에너지를 조달받는 것이었다. 이후 기후위기가 심각해지고 화석연료가 주요 원인임이 명백해지면서 화석연료에서 벗어나는 에너지 전략이 중요해졌다. 이제는 여기에 더해 상대방의 에너지 무기화에 대응하고 견딜 수 있는 ‘에너지 안보’가 핵심 과제로 등장했다.
그런데 이번 에너지 위기는 과거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에너지 위기가 터지면 전통적으로 나왔던 ‘에너지 절약’이나 ‘가격 통제’ 또는 ‘수입처 다변화’ 같은 처방 외에, 역사상 처음으로 석유보다 더 나은 대안이 실용화됐기 때문이다. 더 싸고 더 지역적인데다, 신속하게 대규모로 도입할 수 있는 대안인 태양광과 풍력, 전기자동차 등 ‘녹색기술’이 바로 그것이다. 에너지 무기에 대응할 새롭고도 강력한 ‘재생에너지 방패’가 주목받게 된 것이다. 실제 이번 에너지 위기에서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았던 유럽의 스페인과 아시아의 중국은 상대적으로 덜 충격받았다.
이제 특정 국가가 가스 공급을 중단하고 석유 이동을 봉쇄하면 ‘소비 축소’ 외에 달리 방법이 없던 과거와 달리, 재생에너지 전력 생산을 신속히 늘리고 가스 난방을 히트펌프(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한 고효율·저탄소 친환경 난방시스템)로 대체하며 가솔린차와 경유차를 전기차로 교체하는 과정을 가속하려는 움직임이 전세계에서 두드러지고 있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면서 에너지 안보를 지킬 전략이자 경제성까지 담보할 수 있는 녹색기술의 혁신 덕분이다.
그런데 여기에도 결정적 난점이 하나 있다. 핵심 녹색기술과 녹색 제조 영역 모두 중국이라는 한 국가가 독점적 지배력을 소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중국은 세계 태양전지의 80%, 풍력터빈의 70%, 리튬 배터리의 70%를 생산하며 경쟁국이 따라오기 어려운 기술과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반면 2010년대에 독일의 유력 태양광 기업 솔라월드는 문을 닫았고, 큐셀은 한국의 한화그룹에 인수됐으며, 미국의 유망한 태양전지 기업 솔린드라 역시 파산을 피하지 못했다.
심지어 앞으로 10년 동안은 중국이 정제된 리튬과 코발트의 60% 이상, 배터리용 흑연과 희토류 원소의 약 80%를 공급하리라 전망된다. 석유·가스와 달리 태양광·풍력은 에너지를 생산할 때마다 원료를 반복해서 수입해야 하는 건 아니고, 아직 중국이 ‘재생에너지의 무기화’를 시도한 적은 없다. 하지만 지정학적 경쟁이 치열하게 펼쳐지는 이 새로운 시대에 ‘에너지 전환’의 길목에서 중국이 재생에너지를 무기화하지 않으리라고 믿는 것은 어리석을지 모른다. 최근 북미와 유럽 국가들이 중국산 전기차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고 자국 안에 태양광과 배터리 설비를 유치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재생에너지와 녹색제품 공급처를 중국에 일방적으로 의존하지 않으려는 몸부림이다.
태양광이나 풍력터빈 수입국이 중국 한 나라에 재생에너지를 의존함으로써 생긴 ‘급소’(chokepoint)를 피할 대안은 정말 없을까? 있다. 바로 대한민국이다. 태양광과 풍력터빈 생산, 배터리와 전기차, 전해조(전기를 이용해 물을 수소와 산소로 분해하는 장치)와 히트펌프 등 6대 녹색 제조 분야에서 한국은 나름 견고한 제조 잠재력을 보유한 나라다. 한화큐셀 등 주요 국내 기업들이 세계 태양광 생산에서 상당한 위치를 차지했고, 한국의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는 한때 80% 이상의 세계시장 점유율을 자랑했다. 더욱이 한국은 여전히 해상풍력에 요긴한 해양 플랜트 기술을 보유했고, 국내 주요 가전 기업들은 히트펌프 주요 생산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은 중국과 달리 최근까지 국내 녹색 제조와 녹색 수요를 소홀히 했고, 그 결과 급격히 중국과 격차가 벌어졌다. 반면 중국은 2010년대부터 ‘신 3대’ 분야인 전기차·배터리·태양전지를 중심으로 꾸준히 기술혁신과 투자를 늘린 결과, 2025년 녹색 부문이 국내총생산의 11.4%(약 2조5천억달러)에 이를 만큼 성장했다. 이는 브라질이나 캐나다의 전체 경제 규모(약 2조5천억달러)와 비교될 정도다. 지금도 이 분야 연간 성장률은 2024년 12%에서 2025년 18%로 가속화되고 있다.
한국은 지금이라도 ‘인공지능(AI) 3대 강국’뿐 아니라 ‘녹색 제조 강국’을 목표로 새로운 전략적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정부가 현재 추진하는 ‘대한민국 녹색전환’(K-GX)의 위상을 대거 높여, 중국과 함께 글로벌 녹색 공급망 다변화의 한 축을 맡겠다는 구상을 세울 필요가 있다. 2030년 재생에너지 100기가와트(GW) 목표 달성과 450만 대 무공해차(전기차·수소차) 확대를 위해서만이 아니다. 녹색산업을 전략적으로 키우는 정책은 향후 녹색제품의 수출 확대를 위한 길이기도 하다. 이란 전쟁 발발 이후 중국 배터리 제조사 닝더스다이(CATL)의 주가는 29.5% 급등했고, 자동차 회사 비야디(BYD)의 3월 수출은 전년 대비 65%나 치솟았다. 심지어 3월 중국은 태양광 패널·셀·웨이퍼 등 총 68GW를 수출했는데, 이는 스페인에 설치된 전체 태양광 설비와 맞먹는 규모다.
한국도 이 대열에 합류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김병권 녹색전환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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