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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웜톤 옷 입고 출마 선언한 뜻은

파란색 벗고 중도 겨냥 ‘국가 주도 경제성장론’ 꺼내며 선두 자신감
국민의힘 ‘반이재명’이 모토… 이순신·맥아더·박정희 앞 대선 출마 외쳐
등록 2025-04-11 21:45 수정 2025-04-15 11:01
2025년 4월10일 공개된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대선 출마 선언 영상. 기자회견 대신 11분 분량의 다큐멘터리 영상을 유튜브에 업로드했다. 이재명 유튜브 갈무리

2025년 4월10일 공개된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대선 출마 선언 영상. 기자회견 대신 11분 분량의 다큐멘터리 영상을 유튜브에 업로드했다. 이재명 유튜브 갈무리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와아!!!”

2025년 4월10일 공개된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6·3 대통령 선거 출마 선언 영상은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목소리’ ‘광장을 채운 국민의 함성’으로 시작했다. 그는 다른 대선주자들처럼 특정 장소에서 하는 기자회견이나 연설 방식의 대선 출마 선언을 택하지 않았다. 대신 11분 분량의 다큐멘터리 영상을 유튜브에 공개해 ‘계엄 사태와 싸운 대한민국 국민의 위대함’을 앞세웠다.

눈에 띄는 점은 영상 속 이 전 대표의 옷차림·말투·배경이다. 셔츠 위에 크림색 니트티를 받쳐 입은 이 전 대표는 나무 책상과 책장을 배경에 두고 앉아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대한민국의 갈등 원인을 ‘불평등’이라고 진단했다. ‘먹사니즘’을 넘어 ‘잘사니즘’을 실현하기 위해선 실용주의에 기반한 경제성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양극단에 선 사회 갈등에 피로감을 느끼는 중도층을 명확하게 겨냥한 출마 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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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주도 경제성장 내세운 이재명

이 전 대표의 메시지는 ‘국가 주도 경제성장론’으로 요약된다. 이 전 대표는 심각한 사회 갈등의 근본 원인을 “먹고살기 어려워서(경제)”라고 지적하면서 “더 잘살게 됐는데 왜 더 부족한가. 편중됐기 때문이다. 양극화, 불평등, 격차가 너무 커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해결책으로 “첨단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가 중요한 시대인데 과학기술의 수준이 너무 높아져 개별 기업들이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정부 단위의 인력양성, 대대적인 기술개발·연구개발 투자, 스타트업이나 벤처기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겠다고 밝혔다.

이 전 대표의 이런 메시지는 대선 주자 여론조사에서 30%대 지지율을 유지하며 앞서가고 있지만 그 이상 지지율이 확장되진 않는 상황에서 중도층을 공략하기 위해 내미는 실용주의 노선 전략으로 풀이된다. 실제 이 전 대표도 “국민의 삶을 결정하는 데 빨간색이냐 파란색이냐, 누구의 생각에서 시작됐냐”는 중요하지 않다며 “어떤 게 유용하냐가 최고의 기준”이라고 말했다. 외교 분야와 관련해서도 “한-미 동맹 매우 중요하고, 한·미·일 협력관계도 매우 중요하다”며 “그 속에 일관된 원칙은 ‘대한민국의 국익’이 최우선”이라고 말했다. 이 전 대표는 중도 유권자를 공략하기 위한 싱크탱크 ‘성장과 통합’(상임공동대표 유종일 전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장·허민 전남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을 4월16일 출범시키는 등 선거 기간 내내 이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이 전 대표 쪽은 이번 출마 선언 형식이 국민에게 직접 “이 전 대표의 의지와 각오를 진솔하게 전달하는 데 집중”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기자회견이 아니었기 때문에 돌발질문이나 군중 야유, 언론의 프레임 왜곡을 차단하고 ‘이 전 대표의 메시지’에만 집중할 수 있게 만드는 전략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전 대표가 2025년 4월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분수대 앞에서 제21대 대통령 선거 출마 선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겨레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한동훈 국민의힘 전 대표가 2025년 4월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분수대 앞에서 제21대 대통령 선거 출마 선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겨레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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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이재명 네거티브’+색깔론 공세

이 전 대표에 맞설 뚜렷한 주자가 부각되지 않고 있는 국민의힘은 이 전 대표에 대한 네거티브 전략을 앞세우거나 전통적인 국민의힘 지지 세력을 겨냥한 발언을 꺼내며 극우와 보수 세력의 결집을 노리고 있다.

범보수 진영 선두 대권 주자인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은 4월9일 국회에서 대선 출마 기자회견을 열어 “12가지 죄목으로 재판받고 있는 피고인 이재명을 상대하기에는 가진 것 없는 깨끗한 손, 김문수가 제격”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민중민주주의 깃발 아래 친북, 반미, 친중, 반기업 정책만을 고집하며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고 나라의 근간을 뒤흔드는 세력이 우리 사회에 잔존하고 있다. 중국의 안보, 경제적 위협도 현실화하고 있다”며 “대한민국의 위대한 성취를 부정하는 세력들과는 맞서 싸워야 하고, 이겨내야 한다”고 말했다.

‘인천상륙작전’이나 ‘박정희 정신’ 같은 고전적 보수 담론을 내건 후보도 등장했다. 국민의힘 소속 유정복 인천시장은 4월9일 인천 자유공원 맥아더 장군 동상 앞에서 대선 출사표를 던지며 “75년 전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켜 자유대한민국을 지켜낸 역사의 현장에 비장한 각오로 섰다”며 “거짓과 위선, 선동으로 국민을 힘들게 하는 정치를 끝내고 진실과 정의, 자유가 넘쳐나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소속 이철우 경북지사도 4월9일 경북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찾아 “무너져가는 대한민국을 이대로 볼 수 없어서 새로운 박정희 정신으로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선다”고 밝혔다. 현직인 두 사람은 모두 휴가를 낸 상태로 경선에 참여한다. 지방자치단체장이 대선에 출마하려면 선거일 기준 30일 전 사퇴해야 한다.

국민의힘 내부에서 계엄과 탄핵 상황에서 극우 세력과 선을 그어온 것으로 평가받아온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와 안철수 의원 등은 이 전 대표를 공격하면서도 중도층 유권자를 겨냥한 메시지를 함께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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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전 대표는 4월10일 국회 본관 계단 앞에서 대선 출마 선언을 하며 “(이곳이) 계엄을 막은 공간이자, 헌법 가치가 담겨 있는 곳”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계엄과 탄핵으로 고통받은 분들의 마음에 깊이 공감한다”거나 “보수의 핵심 가치인 자유주의와 법치주의를 지키겠다”는 발언도 했다. 한 전 대표는 다만 “위험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고 괴물 정권이 탄생해 나라를 망치는 것은 막아야 한다”며 이 전 대표를 겨냥한 메시지도 잊지 않았다. 한 전 대표가 대선 출마 선언을 하는 자리에는 지지자 수백 명이 몰려 “멋지다” “속이 다 시원하다” 등의 응원과 환호를 보내기도 했다.

안철수 의원은 앞선 4월8일 서울 광화문광장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대선 출마 선언을 하며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찬성·반대로 나뉜 광화문광장에서 갈등을 봉합하겠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역시 친윤석열계와는 거리를 두고 있는 오세훈 서울시장은 4월13일, 홍준표 대구시장은 4월14일 대선 출마를 선언한다.

국민의힘 일각에서는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의 대선 출마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황우여 당 선거관리위원장은 4월10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당 내부 단합과 본선을 생각하면 처음부터 참여하는 게 모양새가 좋다”고 말했다. 이 같은 분위기에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최근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 후보자 2명을 지명한 한 권한대행을 향해 “항간의 소문대로 대통령 꿈을 꾸고 있다면 헛된 꿈이니 얼른 꿈 깨시라”라며 “이완규 법제처장은 내란 방조 피의자인데 헌법 수호 기관인 헌법재판소 재판관에 지명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비판했다.

민주당 ‘어대명’ 분위기 속 ‘신3김’ 엇갈린 행보

야권에서는 이재명 전 대표가 압도적 지지율을 보이면서 ‘신3김’(김부겸 전 국무총리·김경수 전 경남지사·김동연 경기지사)의 행보가 엇갈리고 있다. 김부겸 전 총리는 대선 불출마 의사를 밝혔고, 김경수 전 경남지사는 아직 출마 여부를 밝히지 않았다.

김동연 경기지사는 4월9일 인천공항 제2터미널에서 대선 출마 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국제무대에 나서는 경제전문가’ 이미지를 내세웠다. ‘미국 트럼프발 관세전쟁’ 대응책을 찾기 위해 미국으로 출국하기 전이라는 김 지사는 “1998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 2017년 탄핵 후 첫 경제부총리, 저에겐 경제위기 때마다 해결한 경험과 노하우가 있다. 30년 넘게 쌓은 국제무대에서의 경험과 네트워크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 지사는 특히 최근 ‘중도보수’를 자처한 이 전 대표의 우클릭을 겨냥해 “포퓰리즘 정책, 무책임하게 감세를 남발하는 정책을 펴지 않겠다”고 말했다.

김두관 전 민주당 의원도 4월9일 부산시의회에서 대선 출마 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 균형 발전’ 담론을 앞세우면서 “수도권 1극 경제를 5개의 초광역 메가 경제로, 분권 경제체제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했다.

한편 진보당에서는 김재연 상임대표(4월8일 광화문 월대 앞)와 강성희 전 의원(4월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이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김 대표는 “로켓배송의 연료로 노동자의 목숨을 태워버리는 나라에서 어떤 노동자가, 어떤 청년이, 어떤 국민이 자기의 권리를 지킬 수 있다 생각하겠느냐”며 “기업의 것은 기업에게, 노동자의 것은 노동자에게 공정하게 돌아가는 사회로 바꿔야 한다”고 밝혔다. 강 전 의원도 “노동자를 ‘건폭’이라고 말하는 권력, 농민 트랙터를 막는 권력, 장애인을 끌어내는 권력, 대학원생 입을 막는 권력, 성소수자의 차별이 마땅하다는 권력이 결국 ‘처단’이라는 극단적 폭력으로 우리 모두를 향했다”며 “서민을 위한 정치를 실현하겠다”고 밝혔다.

2025년 4월10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이재명 전 대표의 대선 출마 영상을 지켜보는 시민들. 연합뉴스

2025년 4월10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이재명 전 대표의 대선 출마 영상을 지켜보는 시민들. 연합뉴스


대선 주자들에게 질문해야 할 것들

윤석열 탄핵으로 60일 동안 빠르게 치러야 하는 조기대선 레이스에서 전문가들은 대선 출마자들의 생각을 제대로 검증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박종희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는 “대선 주자들에게 민주주의 사회에서 생각이 다르다고 폭력을 저지르는 사람들에 대해 사면해줄 의향이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며 “지금 한국 사회가 놓여 있는 문제는 ‘공화국의 위기’이기 때문에 윤석열 전 대통령 사면, 서울서부지법 폭도 사면 문제에 대해 공식적으로 검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만권 경희대 학술연구교수(정치철학)는 극우 유튜버 중심의 부정선거론 부상, 비상계엄 사태 등에서 봤듯 “한국이 국외와 비교했을 때 상당히 시스템이 잘 갖춰진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정치시스템과 사법시스템을 사람들이 안 믿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이번 대선에선 시스템에 대한 신뢰 회복을 어떻게 할지가 주요 화두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강윤 정치평론가도 “서울서부지법 폭동 등 파시스트적 양태를 보이는 무책임한 유튜버의 문제가 최근 명확하게 드러났다”며 “표현의 자유가 근거 없는 폭력주의나 상상력의 극치, 음모론까지 보호하는 건 아니므로 새 정부를 준비하는 대선 주자들은 이를 어떤 식으로 제어할지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이 고문은 국민의힘이 후보를 내지 않은 ‘4·2 재보선 구로구청장 선거’ 사례를 언급하며 “국민의힘이 대선 후보를 내는 것 자체가 자기모순”이라는 점도 지적했다. 구로구청장 보궐선거는 국민의힘 소속으로 당선된 문헌일 전 구청장이 자신의 회사 주식 약 170억원을 백지신탁하라는 법원의 결정이 나오자 이를 거부하고 사퇴하면서 치러지게 됐는데, 원인을 제공한 국민의힘은 후보를 내지 않았다.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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