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부부 공천개입 의혹의 핵심 인물인 명태균(54)씨는 2022년 3월 치러진 제20대 대선 전까지만 해도 경남 창원 정치계에서 큰 존재감이 없는 인물이었다. 창원대를 졸업한 뒤 전화번호부 관련 업체를 창업해 텔레마케팅 사업을 하다가 ‘좋은날리서치’라는 회사를 운영했고, 이 회사 이름을 2017년 9월 인터넷신문·인터넷방송·여론조사업체인 ‘시사경남’으로 바꿨다. 이후 2018년께부터 시사경남 편집국장으로 자신을 알리면서 ‘김건희-명태균 게이트’의 시발점이 된 여론조사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때까지도 명씨는 자격이 없는 상태에서 불법 여론조사를 진행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여러 차례 법원을 드나든 무명의 범법자에 불과했다.
명씨의 존재감은 김건희 여사를 만난 뒤 커지기 시작했다. 여론조사 명목으로 정치인들 주변에 맴돌던 명씨는 2021년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을 그만두며 대선 잠룡으로 분류될 때 김 여사를 처음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정확하게 누구 소개로 만남이 이뤄졌는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이 자리에서 명씨는 ‘장님 무사(윤 대통령) 어깨에 올라탄 앉은뱅이 주술사’라고 김 여사를 지칭하는 등 영적인 대화를 나누며 친분을 쌓았다.
2022년 3월 윤 대통령이 대선에서 이기고 김 여사가 ‘영부인’이 되자, 명씨는 김 여사와의 친분을 권력 삼아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그가 윤석열 대선 후보를 위해 총 81회의 여론조사를 하면서 사용했던 3억7520만원의 여론조사 비용을 지방선거 예비후보자들에게 ‘공천을 약속’하며 빌려올 수 있었던 것도, 창원시에서 별 존재감이 없던 김영선 전 의원의 공천을 받아 왔다고 주변인들에게 대놓고 언급할 수 있었던 것도 김 여사와 본인이 강하게 연결돼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김 여사와의 결속력은 명씨가 창원시의 이권 사업에도 개입하는 계기가 됐다.
한겨레21 취재를 종합하면, 명씨의 영향력은 2022년 11월께 극대화됐다. 대표적인 계기가 창원 신규 국가첨단산업단지(신규 창원산단) 유치 추진이다. 2022년 9월부터 신규 창원산단 유치를 추진했던 창원시 고위 공무원들은 같은 해 11월9일 명씨가 ‘총괄본부장’을 자칭하던 김 전 의원실에 처음 방문했다. 여기서 창원시 공무원들은 명씨로부터 신규 창원산단 예정부지에 대한 제안을 받았다. 창원시는 “명씨가 아닌 김 의원에게 보고했다”고 밝히고 있지만, 당시 의원실을 주도하던 사람은 명씨였다. 명씨는 자신이 공천을 받아 왔다고 주장한 김 전 의원 위에 군림하며 의원실을 통제하고 있었다. 당시 그런 모습에 환멸을 느껴 의원실을 그만두려 했다는 ‘김건희-명태균 게이트’ 핵심 제보자 강혜경씨는 2024년 11월1일 한겨레21과 한 단독 인터뷰에서 “(명씨는) 서울 보좌관 채용도 컨트롤해 뽑았고 조금이라도 본인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자르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후 명씨는 최소 다섯 차례 이상 창원시 고위 공무원들과 만나 신규 창원산단과 관련한 대외비 문건 등을 보고받았다. 사전에 산단 예정지를 알게 된 명씨는 주변 지인들에게 산단 땅을 구매하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실제로 명씨의 집기류를 보관해줬던 동업자 강아무개씨가 신규 창원산단 계획이 발표되기 전과 직후로 인근에 8억원에 이르는 토지를 구매한 사실도 한겨레21 보도로 처음 드러났다. 명씨는 2022년 11월23일 국토교통부 산업입지 평가위원단이 창원시를 찾았을 때도 동행했다. 이날 명씨가 김 전 의원에게 평가단 안내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는 취지로 질타하는 통화 녹음 파일도 공개됐다. 창원시는 산단 지정과 관련해 명씨의 개입을 부정하면서 김 전 의원이 현장에서 산단과 관련해 브리핑하는 사진을 공개했지만, 사실상 이를 뒤에서 조율한 사람은 명씨였던 셈이다.
11월23일은 명씨가 ‘김건희 여사 보고용’ 신규 창원산단 홍보 팸플릿을 만들라고 강씨에게 지시한 날이기도 하다. 명씨는 강씨에게 윤 대통령과 관련한 문구를 넣을 것을 요구하면서 “(팸플릿) 밑에 공간이 많잖아. ‘국가산단이 필요합니다’를 넣어야 한다. 왜냐면 이건 부탁하는 거다. 사모(김 여사)한테”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신규 창원산단 지정과 관련해 김 여사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 상태다. 실제로 신규 창원산단은 기존의 계획된 땅이 90% 이상 변경됐음에도 문제없이 2023년 3월15일 신규 산단으로 선정됐다.
명씨가 김 여사 순방과 관련해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도 이때쯤이다. 뉴스토마토는 2024년 10월24일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이 “명씨는 자신이 꿨던 꿈을 바탕으로 김 여사에게 앙코르와트 방문 취소를 제안했고 김 여사가 이를 수용한 대화가 김 여사와 명씨가 주고받은 카카오톡에 고스란히 담겼다”고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윤 대통령 부부는 2022년 11월 동남아시아 순방길에 올랐는데, 김 여사는 각국 정상 부인들과 함께 참석하기로 했던 11월12일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방문 일정을 돌연 취소하고 대신 선천성 심장질환을 앓는 14살 소년의 집을 찾아 위로했다. 강씨도 2024년 10월2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나와 “해외 방문할 때 (명씨가) ‘꿈자리가 좀 안 좋다. 비행기 사고가 날 거다’라고 해서 (김 여사가) 일정을 변경한 적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렇게 명씨가 윤 대통령 부부와의 친분을 공공연히 과시하며 국회의원 위에서 군림하는 상황이 절정에 이르자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이 명씨를 직접 찾아가 경고하기도 했다. 강혜경씨는 “2022년 말쯤 대통령실(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창원으로 2명인가 내려왔다고 들었다. 명씨에게 경고하는 차원이었다”고 말했다. 지역의 한 정치권 관계자도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와서) 대통령하고 친한 관계는 얘기해도 되는데 이권 사업에는 절대 개입하지 말라고 했다”며 “이 말은 그만큼 (명씨를) 신뢰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말하는 이권 사업은 신규 창원산단과 관련한 일로 추정된다. 하지만 김 여사와의 친분을 과시하는 명씨의 태도는 그 뒤로도 변하지 않았다고 한다. 강씨는 “(경고 이후에도) 명씨는 주눅 들거나 이런 거 없이 똑같이 행동했다”고 말했다.
곽진산 기자 kjs@hani.co.kr·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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