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정말 ‘극우’ 정치인일까. 2022년 5월 취임 뒤 1년2개월 동안 윤 대통령의 말과 행동(인사) 심심치 않게 ‘극우 논란’이 따라붙었다.
2023년 6월29일 장차관급 15명의 개각 명단을 발표는 논란의 최종편이다. 2018년 대법원의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배상 판결에 대해 “우리 대법관들이 반일종족주의에 사로잡혔다”고 발언한 김영호 성신여대 교수를 통일부 장관으로 지명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을 ‘종북 주사파 운동권’으로, 더불어민주당은 ‘간첩 집단’이라고 아무렇지 않게 지칭해온 유튜부 시사이다 운영자 김채환은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차관급)에 임명됐다.
“반국가 세력들은 (북한의) 유엔 안보리 제재를 풀어달라고 읍소하고, 유엔사를 해체하는 종전선언을 노래 부르고 다녔다.(…) 가짜뉴스와 괴담으로 자유 대한민국을 흔들고 위협하며 국가 정체성을 부정하는 세력이 너무 많다.”(6월28일 한국자유총연맹 창립행사에서 윤 대통령)
간접적으로 흘러나오던 ‘극우 발언’은 최근 윤 대통령 입을 통해 직접 발설되는 일이 잦아졌다.
극우 발언을 경계하는 시선을 의식한 탓인지 윤 대통령은 7월3일 신임 차관급 공무원들에게 임명장을 나눠준 뒤 “상식적이고 공정한 중도도 반대쪽에서 보면 극우가 된다”며 ‘극우 ’ 평가에 대해 반박했다.
2022년 7월 ‘극우 성향’ 강기훈 전 ‘자유의새벽당’이 대통령실 행정관으로 일하고 있는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일었을 때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실은 “일부 극우적인 발언을 했다고 그 사람을 극우라고 단정할 순 없다”고 말했다. 강 행정관은 유튜브에서 “주사파 정권(문재인 정권)이 국가정보원 댓글 정치개입 사건을 수사하면서 인터넷이 중국 공산당 등 외부세력에 점령돼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당했다”는 등등 황당한 주장들을 펼쳐왔다.
윤 대통령이 ‘나는 극우다’ 자인하지 않아도 평가는 가능하다. “윤석열 대통령의 정치성향은 어떤 메시지를 내놓고, 어떤 사람을 기용하는지 등과 같은 드러난 현상을 보고 평가하는 것이 타당”(김민하 시사평론가)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간첩인 걸 국민 70%가 몰라” (2023년 6월26일 국회 토론회에서 박인환 경찰제도발전위원장)
비합리적인 극우 유튜버들 사이에서 나올법한 발언이 윤석열 정부 고위직들 입을 통해 툭하면 터져 나오고 대통령실은 이에 대해 아무렇지 않다는 듯 대응한다. ‘극우 불감증’이다.
“윤석열 정부는 국가 시스템을 믿지 않고, 무너뜨리려고 하는 사람들도 ‘극단적이지 않다’고 보는 것 같아요. ‘박근혜 탄핵 무효’를 주장하는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만 해도 수년 전엔 ‘극우’라고 분류됐지만, 지금 대통령실 기준으로 보면 전 목사도 ‘극우’가 아닙니다.”(판사 출신 ㄱ변호사)
윤석열 정부와 극우 유튜버들 간의 모종의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윤석열 멘토’로 불리는 신평 변호사는 5월3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전(광훈) 목사는 윤석열 퇴진 운동을 벌인 극렬 진보세력들이 일으키는 파도에 방파제 역할을 해온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전 목사는 윤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자신에게 세 차례 전화를 걸어 ‘선거운동을 도와달라’고 했다고 밝혔다.
사실 윤석열 정부와 극우 유튜브의 관계를 ‘특수관계’로 볼 수 있는 정황 증거는 차고 넘친다. 전광훈 목사 쪽에서 운영하는 <너알아TV>를 비롯해 <이봉규TV>, <시사파이터>, <가로세로연구소>, <안정권TV>, <정의구현박완석> 등 ‘극우’ 유튜버 관계자들은 ‘(김건희) 여사 추천’으로 2022년 5월 윤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받기도 했다. 이에 대해 윤석열 정부(행정안전부)는 별다른 해명을 하지 않았고, 되레 ‘개인정보보호법’을 이유로 참석자 명단을 삭제했다.
구독자가 약 81만명에 달하는 <이봉규TV>는 2020년4월 치러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가 ‘부정·조작 선거’라는 음모론을 퍼트려온 대표적인 극우 유튜브 채널이다. 대법원까지 간 소송에서도, 이런 부류의 주장들은 기각됐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실’ 대우는 남다르다. 2022년8월 강승규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은 <이봉규TV>에 출연해 외교정책에 대해 설명했다. 또 진행자인 이봉규씨는 대선 당시 ‘윤석열 후보는 자면서도 내 방송을 본다’고 말했고, 이에 대해 윤 당시 후보는 특별히 반박하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미화와 야당 등 정치적 반대세력에 대해서 밑도 끝도 없는 비난과 의혹 제기는 취임식 ‘귀빈’ 유튜버들의 단골 아이템이다. <시사파이터>(구독자 약 4만명)도 마찬가지다. 2023년 6월23일엔 “이재명과 이재명당(민주당)은 부산엑스포 유치를 방해하는 북한과 중국의 공작에 부합하고 있다”고 음모론을 제기했다.
“4·3의 아픔을 치유하고 상흔을 돌보는 것은 4·3을 기억하는 바로 우리의 책임입니다.” 2022년 제주 4.3기념식에서 윤석열 당시 대통령 당선자가 한 말이다. 하지만 1년 뒤 상황은 180도 바뀌었다. 윤 대통령은 ‘일정상 이유’로 4·3기념식에 불참했다. 대신 기념식장 밖에서는 제주도민 수만명을 무참히 살육한 우익테러집단과 같은 이름인 ‘서북청년단’이 집회를 열었다. 이에 앞서 2023년 2월13일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은 “4·3사건은 명백히 김일성 일가에 의해 자행됐다”는 역사적 사실과 다른 주장을 발언했다.
1년여 기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검사 시절 윤 대통령과 근무한 인연이 있는, 검사장 출신 ㄴ변호사는 이렇게 분석했다.
“윤 대통령의 지금의 극우성향은 본능이라기보다 전략으로 보인다. 대선 때 찍은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문재인 대통령이 싫어서’ 찍어준 사람이다. 윤 대통령은 정치 기반이 없다. ‘문빠’(문재인 전 대통령 열혈 지지층)와 같은 정치기반이 없으면, 퇴임 후 살아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지층이 있으니) 쉽게 수사하지 못하지 않나. 대통령으로서 사람을 골고루 쓴다면 자기 지지세력은 안 생긴다. ‘극우’로 불리는 사람들이 윤석열의 고유 지지층이 돼가는 것 같다. 또 경기는 어렵고, 물가는 오르고, 우리나라의 누적된 문제를 정책으로 푸는 데도 한계가 있다. 하지만 갈라치기라고 비판을 받더라도 상대를 욕하면 쉽게 지지층을 모을 수 있다.”
윤 대통령의 우클릭이 2024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포석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관후 건국대학교 상허교양대학 교수는 “오른쪽(보수)으로 가는 건 맞지만 어떤 이데올로기적인 내용이 있다기보다는 이런저런 생각이 뒤섞이고, (정치 성향이) 계속 변하는 것 같다”며 “민주당이 중도 확장을 못하는 상황에서 우파 지지층 결집이 내년 총선에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윤 대통령 발언을 자세히 보면 굉장히 노련하게 소수의 문재인 대통령과 일부 참모들만을 지칭하지, 지지층 전부를 공격하진 않는다. 이런 행보로 우파의 지평을 넓어질 가능성이 있다. 반문재인 전선을 만든다던지, 이번 수능(대학수학능력시험) 논란의 경우처럼 소수의 상위권과 다수의 중하위권 학생을 갈라치기하면서, 중도보수도 좋아하는 정책으로 국민들이 자신을 좋아할 이유를 만들려고 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검사 시절 승부 근성도 극우로 의심되는 ‘정체성’ 형성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분석된다. ㄱ변호사는 “정치는 양보하고 타협하면서 이기고 지는 것이 모호할 때가 많다. 그런데 검사들은 구속영장 발부냐 기각이냐, 유죄냐 무죄냐 등 이기고 지는 것으로 민감하게 반응한다. 극우 유튜버들도 상대를 ‘반국가세력’, ‘나쁜 놈’, ‘간첩’, ‘잡아넣어야 할 놈’ 같은 식으로 극단적으로 가른다. 양쪽 습성 모두 세상사를 간편하게 바라보려고 한다는 점에서 닮았다”고 말했다.
“과거 정부는 불법집회에 경찰권 발동을 사실상 포기했다.” 5월23일 윤 대통령이 이렇게 강경 진압을 주문하자, 경찰은 이틀 뒤 열린 민주노총 금속노조가 개최하려던 야간문화제를 강제해산했다. 또 6년 만에 불법집회 해산 훈련도 재개했다. 6월15일엔 윤 대통령이 갑작스레 ‘6월 수능 모의고사’와 관련 “공교육에서 다루지 않은 부분이 수능에 출제되면 무조건 사교육에 의존하라는 말이냐”고 말했다. 다음날 교육부는 대입 담당 국장을 경질했다. 같은달 28일 국세청은 사교육 업체들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대통령 말 한마디에 공권력의 기민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권위주의 시대로의 회귀’는 지적이 나왔다.
극단적인 보수는 왜 위험할까. 김민하 평론가는 “대통령이 설사 뼛속 깊은 극우주의자는 아니라고 해도, 그의 극우적인 말과 행동은 ‘진짜 극우주의자’들에게 아주 좋은 환경을 제공한다. 벌써 난리다. 4·3기념식장에 서북청년단이 나타나는가 하면, KBS 수신료 분리징수 문제를 보면 ‘KBS가 편향됐다’ 정도가 아니라 ‘KBS는 종북이다’라는 말이 버젓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윤민섭 강원도 춘천시의원은 “최근 민주당 시의원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발언을 하자, 국민의힘 쪽에서 징계를 청구했다. 정치는 실종됐고, 밀당하고 타협할 문제를, 법으로만 풀려고 한다. 비판하고, 다른 방향으로 가면 적으로 돌리는 것이다. 대통령과 중앙정치의 원사이드한 경향이 지방의회에 까지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사회 후퇴가 너무 심각하다”고 말했다.
배병인 교수(국민대 정치외교학과)도 “유럽에서 헝가리·폴란드 같은 나라를 보면 처음엔 부패한 집권세력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을 하면서 (극우세력이) 집권했다. 그렇게 포퓰리즘을 선동하던 사람들이 대단히 권위주의적인 방향으로 갔고, 정부의 언론통제 강화하는 ‘언론탄압법’이라 불리는 법까지 통과시켰다. 처음엔 아주 대단해 보이진 않지만 권위주의적인 경향은 점차 늘어난다”고 말했다. 2020년 3월 헝가리 의회는 가짜뉴스를 유포한 사람을 징역 5년형에 처할 수 있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2021년12월 폴란드 의회에서는 정부에 비판적인 TV 채널 대주주를 강제로 바꿀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됐다.(이후 대통령 거부권 행사로 무산)
“대통령이 모의고사 난이도를 지적하자 교육부 장관이 ‘대통령은 입시전문가’라고 하고, ‘반국가세력’ 운운한데 대해선 여당 대표가 ‘정확한 팩트에 근거’했다고 해요.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도 김건희 여사 쪽 땅으로 고속도로 노선을 바꿔놓고도 사과는 하지 않고 오히려 문제 제기가 날조된 거라고 막 화를 냅니다. 비판을 수용하지 않는, 정상적인 흐름이 아닙니다. 정치인들도 그렇고, 언론도 그렇고 뭔가 전두환 때처럼 겁에 질린 것 같아 보입니다. 정치인·공무원 입장에선 법무부·검찰 라인을 보면 대통령한테 함부로 하면 ‘즉각적으로 수사받겠구나’ 생각이 안 들겠습니까?”(검사장 출신 ㄴ변호사)
극우란 무엇이고, 누구를 가리킬까. ‘보수주의 정치 논객’ 서민 단국대 교수(기생충학)는 2023년 7월2일 <자유일보> 기고글에서 ‘극단적인 민족주의에 기반한 인종주의적 배타성, 여기에 폭력까지 동반된다면 극우라 불러도 무방하다’며 ‘극우’를 협소하게 정의했다. 하지만 국어사전에선 극우를 ‘극단적으로 보수주의적이거나 국수주의적인 성향. 또는 그 성향을 가진 사람이나 세력’이라고 보다 폭넓게 정의한다.
유럽 극우 정당에 대해 연구해온 배병인 국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극우라는 것이 학술적으로 정의된 건 아니다. 유럽에서는 역사적으로 극단적인 민족주의에 인종주의를 가진 집단을 극우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엔 특수한 역사적 경험 때문에 극단적인 반공주의자를 비롯해 굉장히 강한 국가주의적, 권위주의적인 전통에 토대를 두고 외국인이라든가 사회운동세력 등 특정 집단에 대해 혐오·폭력을 일삼는 집단을 극우라고 할 수 있다”며 “최근 유럽 극우정당들은 기성 정치 질서에 대한 포퓰리즘적인 비판을 통해 지지기반을 확대해왔는데, 우리나라도 비슷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배병인 교수는 이런 정의에 빗대어 윤 대통령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윤 대통령이) ‘국가 정체성’ 문제를 거론하거나, ‘반국가세력’이라는 말을 쓴다든가, 여당 대표가 ‘중국인 투표권 축소’를 거론하는 등 사용하는 용어를 보면 대단히 극우적이다. 국가라는 하나의 완결된 공동체를 전제로 하고, 그 안에 어떤 다양성을 인정하기보다는 거세하려는 생각이 깔렸다. 속마음은 누구도 모르지만, 용어만큼은 대단히 극우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재근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도 “정치적 반대세력을 ‘내부의 적’으로 규정하고 자기 지지자들에게 어필하는 건 극우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의 공통점”이라며 “군부 독재 시절에도 반공을 앞세워 ‘내부의 적’을 내세워 지지층을 결속했다”고 지적했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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