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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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뜯어본 ‘노란봉투법’ 입법 쟁점들

국회에 관련 법안 8건 발의… 경영계 등 “재산권 침해로 위헌”
시민사회 “기업 손배소만 광범위 보장, 노동3권부터 보장해야”
등록 2022-10-10 12:09 수정 2022-12-09 01:42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의 옥포조선소 점거농성이 진행 중이던 2022년 7월19일, 가로·세로·높이 1m 크기의 철 구조물 안에 스스로를 가둔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이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과 대화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의 옥포조선소 점거농성이 진행 중이던 2022년 7월19일, 가로·세로·높이 1m 크기의 철 구조물 안에 스스로를 가둔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이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과 대화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불법 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및 가압류를 제한하는 노동조합법 개정안은 위헌 논란은 물론, 노조의 불법파업을 조장한다는 국민적 우려가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2022년 하반기 국회 최우선 과제로 꼽은 이른바 ‘노란봉투법’에 대해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9월29일 지방청장 등이 참석한 ‘노동동향 점검 주요 기관장 회의’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현재 국회에는 노동자들의 쟁의행위에 기업들이 무분별하게 손해배상청구소송(손배소)을 내는 것을 막자는 취지의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이 8건 발의돼 있다. 최근 대우조선 하청노조가 파업했다가 470억원의 손배소를 당한 사건 등을 계기로 민주당과 정의당은 이 법을 통과시키겠다는 의지를 강력히 밝혔다. 반면 경영자 단체와 국민의힘 등은 헌법이 보장하는 재산권의 침해 등을 이유로 노란봉투법에 강하게 반대한다. 이들에 이어 주무부처 장관까지 위헌 가능성을 거론하면서 법을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까다로운 파업 요건 없애고 원청도 사용자로

현재 국회에 발의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노란봉투법) 8건은 공통적으로 손해배상 면책이 되는 파업의 범위를 넓히는 것을 뼈대로 한다.

노동조합법에 따른 파업은 원칙적으로 모든 손해를 면책받는다. 파업의 목적 자체가 생산 차질을 일으켜 사용자에 대한 교섭력을 확보하는 것인데 그에 따른 손해를 노조에 모두 물리면 노동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이 위축될 수 있어서다. 다만 실제 면책받으려면 노동조합법과 판례가 정하는 요건에 따라 △단체교섭의 주체가 되는 노사(통상 1개 사업장의 노사)가 △근로조건 개선에 한해 △조합원 투표 등의 절차를 거쳐 △사용자의 재산권과 조화를 이룬 상태여야 했다. 이 때문에 2009년 쌍용자동차 파업 등 정리해고에 반대하는 파업이나 2012년 현대자동차 하청 노조 점거농성 등 원청에 대화를 요구하는 하청 노조의 파업은 불법파업으로 간주되곤 했다.

이은주 정의당 의원 등이 낸 개정안은 손해배상 면책 범위를 ‘이 법(노동조합법)에 의한’ 단체교섭 및 쟁의행위에서 ‘단체교섭, 쟁의행위, 그 밖의 노동조합 활동’으로 넓힌다. 노동조합법이 정하는 수단과 방법, 목적 등을 모두 만족해야만 면책받는 구조를 없애자는 것이다. 임종성 민주당 의원안은 기존에 불법파업으로 간주했던 쌍용차나 현대차 하청 노조 파업 사례 등을 참고해 ‘임금 등 근로조건’으로 한정했던 파업의 목적에 ‘정리해고’와 ‘원청 사용자의 교섭 의무에 관한 노사 의견 차’도 추가했다.

노란봉투법 개정안 가운데는 현행 노동조합법상 ‘사용자’ 개념에 단서 조항을 달아 사내 하청 노조를 둔 원청업체를 포함시킨 조항도 있다. 노동조합법 제2조의 ‘사용자’ 개념은 그간 법원 판례에 따라 ‘노동자와 직접 근로계약을 맺은 사용자’로 해석됐다. 이 때문에 원청업체들이 하청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하면서도 ‘노동조합법상 사용자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단체교섭 의무를 회피하곤 했다. 최근 원청 사업장 점거농성으로 손배소를 당한 대우조선 하청 노조와 하이트진로 화물기사 노조 모두 합법파업으로 시작했으나 원청이 대화 요구를 수차례 받아들이지 않자 극단적인 투쟁으로 나아갔다. 노란봉투법이 국회를 통과해 법적으로 원청 사용자와 교섭이 가능해지면 불법파업이 도리어 줄어들 수 있다.

손배액도 상한 설정… 마구잡이 소송 막는다

노란봉투법은 노동조합에 대한 과도한 손배소를 제한하려는 취지도 담고 있다. 기업들이 구체적으로 파업과의 인과관계를 확인하기 어려운 항목까지 ‘손해’에 포함해왔기 때문이다. 2022년 8월 대우조선해양이 하청노조를 상대로 낸 470억원의 손배소 소장을 보면, 회사 쪽은 전체 5개 도크 가운데 점거농성이 없던 4개 도크의 각종 작업 공백까지 전부 ‘파업 손해’로 주장했다. 파업 기간일지라도 생산량 감소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인데 이를 모두 ‘파업에 따른 손해’로 계산했다. 하청 노조는 “파업 이외에도 인력난 등으로 목표 생산량을 맞추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반박한다. 대우조선은 법에 따라 합법파업이 이뤄진 기간을 모두 ‘불법파업 손해’에 포함하기도 했다.

이에 개정안들은 노동조합의 인원과 규모를 고려해 배상액에 상한선을 두자고 제안한다. 파업에 대한 보복성으로 사용자 쪽이 노조 존립을 흔들 만큼의 손해액을 청구하지 못하도록 하자는 취지다. 노조 배상액에 상한을 두는 사례는 영국 법(최대 100만파운드)에도 있다. 이수진 민주당 의원은 폭력·파괴 행위 없이 이뤄진 ‘집단적 노무 제공 거부’는 정당한 권리 행사로 봐 그 손해를 청구 범위에서 제외하자는 안을 내기도 했다.

노동조합 간부 외에 개별 조합원까지 손배소 대상에 폭넓게 포함하는 관행도 기업들이 자주 쓰는 ‘압박 카드’다. 대법원이 2006년 “개별 조합원의 단순 파업 참가는 손해배상 대상(불법행위 책임자)이 아니”라고 판결하면서도 “생산현장 무단이탈 등으로 인한 손해를 예방하지 않은 경우는 예외”라고 정한 것을 기업들이 적극 활용하는 것이다.

이에 국회에서 발의된 각 법안에는 ‘노동조합에 의해 계획된 행위’이면 개별 조합원의 책임을 면책하자는 조항이 담겼다. 다만 이 경우 헌법이 단체행동권을 노동조합이 아닌 개별 근로자의 권리로 규정해 이와 충돌한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기업의 청구권을 일반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재계의 반박도 나오는 상황이다. 1982년 프랑스도 유사한 법 개정을 추진했다가 위헌 결정을 받아 입법을 중단했다. 대신 프랑스 파기원(한국의 대법원)은 ‘노동조합은 노동조합의 책임을, 개인은 개인의 책임을 진다’는 원칙을 세워 파업 손해 전반의 배상 책임을 특정인에게 과도하게 지우는 문제를 해결했다.

기업 청구권 제한 아닌 손배소 남용이 ‘위헌’

이정식 장관이 말한 ‘위헌’ 논란은 주로 ‘재산권 침해’를 뜻한다. 그러나 헌법은 재산권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도 보장한다. 그럼에도 재산권 행사를 명목으로 한 기업의 손배소가 광범위하게 보장되는 것과 달리, 노동3권은 무력화됐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최근 ‘노조법2·3조개정(노란봉투법) 운동본부’를 꾸린 64개 시민사회단체가 “지금의 현실(노조에 대한 손배소 남용)이 이미 위헌”이라며 법 개정에 적극 나서는 이유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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