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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의 의존명사 ‘등’ 활용법 [뉴스 큐레이터]

등록 2022-08-20 23:37 수정 2022-08-24 09:44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2022년 8월11일 과천 법무부에서 브리핑하고 있다.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2022년 8월11일 과천 법무부에서 브리핑하고 있다.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그 밖에도 같은 종류의 것이 더 있음을 나타내는 말.’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된 의존명사 ‘등’의 의미다. 법무부가 2022년 8월11일 입법예고한 검찰청법 시행령 개정안은 이 의존명사 ‘등’에서 시작됐다.

2022년 4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검찰청법 개정안은 검찰의 직접수사 범위를 ‘부패범죄, 경제범죄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로 규정한다. 기존에는 공직자범죄와 선거범죄, 방위사업범죄, 대형참사 등을 포함한 6대 범죄에 대해 검찰이 직접수사할 수 있었다. 국회 본회의에서 개정안이 통과될 때 논란이 됐던 문구가 바로 ‘등’이었다. 애초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할 시점엔 경제범죄 ‘등’이 아닌 ‘중’이라는 표현이 들어갔다. 그러나 본회의에서 ‘중’이 ‘등’으로 바뀐 안이 최종 의결됐다. 당시 법조계 안팎에서는 본회의를 통과한 개정안을 두고 곧 취임할 윤석열 대통령이 시행령을 개정하는 등의 ‘꼼수’로 검찰 수사권을 다시 확대할 여지가 있는 법안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그런데 실제로 검찰 수사권 축소라는 법안 개정 취지에 정면으로 반하는 시행령이 입법예고된 것이다.

법무부가 입법예고한 이번 시행령 개정안에 따르면 공직자범죄와 선거범죄 등 일부가 다시 검찰의 직접수사 범위에 포함된다. 법무부는 “현행 시행령은 합리적인 기준 없이 검사 수사 개시 대상인 중요범죄를 과도하게 제한하고 있다”며 국가의 범죄 대응 역량 약화를 개정 이유로 꼽았다.

국회의 입법 취지를 무시한 것이라는 문제제기에 관해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법의 ‘허점’을 이용했을 뿐이라고 맞섰다. 법으로 규정된 ‘등’을 그대로 시행한 것인데 어떻게 국회를 무시한 것으로 볼 수 있느냐는 취지다.

입법예고 직후 한동훈 장관은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및 검찰청법 위반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됐다. 경찰도 비판에 나섰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8월18일 법무부 시행령 개정안을 두고 “법 개정 취지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시행령을 통해 그 밖의 유형을 구체화할 수 있다는 해석에 이론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법무부가 시행령 개정을 입법예고하며 밝힌 설명이다. 최소한 법무부가 의존명사 ‘등’을 적극 활용했다는 점은 이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뉴스 큐레이터는 <한겨레21>의 기자들이 이주의 놓치지 않았으면 하는 뉴스를 추천하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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