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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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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윤석열, 검증의 시간

검찰총장을 ‘대권 주자’로 만든 건 ‘공정 이미지’, 비선호도에서도 1위
등록 2021-07-03 01:59 수정 2021-07-03 09:16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021년 6월29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대선 출마 기자회견을 하기에 앞서 정진석 의원 등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과 인사하려 기념관 들머리로 나오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021년 6월29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대선 출마 기자회견을 하기에 앞서 정진석 의원 등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과 인사하려 기념관 들머리로 나오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022년 대선을 8개월 앞둔 현재, 야권의 지상과제인 정권교체를 이룰 가장 앞선 링 위의 선수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다. 윤 전 총장은 여론조사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1위 자리를 놓고 엎치락뒤치락하며 일대일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2021년 6월29일 서울 서초구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윤 전 총장은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3월4일 총장직에서 사퇴한 지 117일 만이다. 그 자리에서 윤 전 총장은 이렇게 말했다.

“공직 사퇴 이후에도 국민들께서 사퇴의 불가피성을 이해해주시고 끊임없는 지지와 성원을 보내주셨다. 저는 그 의미를 깊이 생각했다. 공정과 상식을 무너뜨리고 자유와 법치를 부정하는 세력이 더 이상 집권을 연장하며 국민에게 고통을 주지 않도록 정권을 교체하는 데 헌신하고 앞장서라는 뜻이었다.” 여론조사에서의 높은 지지율을, 국민이 정권교체를 위해 자신을 불러낸 의미로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이날 윤봉길 의사 기념관 앞에는 ‘국민의 부름대로, 국민의 생각대로’ ‘구하자 대한민국, 나와라 국민의 희망’ ‘정의와 공정, 상식이 통하는 나라 만들어주세요’ 등의 손팻말을 든 지지자 1천여 명이 운집해 “윤석열 대통령”을 연호했다.

공정과 정의의 브랜드 획득

막강한 권한으로 인해 고도의 중립성이 요구되는 검찰총장직에 있던 윤 전 총장은 어떻게 야권 대선 후보로 부름을 받은 것일까. 김형준 명지대 교수(정치학)는 “윤 전 총장이 큰 지지를 받는 주요 이유 중 하나는 국민이 진보 진영의 공정 가치는 훼손됐다고 보는 반면, 윤 전 총장의 공정 가치에는 신뢰를 보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출발점은 2013년 집권 초기 서슬 퍼런 박근혜 정권에서 특별수사팀장으로 맡은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수사였다. 당시 윤 전 총장은 법무부·검찰 수뇌부의 외압에 굴하지 않고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에 대한 수사를 밀어붙이다 수사팀에서 전격 배제됐다. 그는 며칠 뒤 국정감사장에서 외압 사실을 폭로하고 “저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 등 소신 발언 ‘어록’을 통해 화제를 모았다. 이후 대구고검 검사로 좌천됐다. 2016년 윤 전 총장은 ‘박근혜·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수사를 위한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수사팀장으로 일선에 복귀해 ‘박근혜 대통령 탄핵’의 법적 근거를 제공했다.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윤 전 총장은 서울중앙지검장에 발탁됐다. 청와대가 당시 대전고검 검사인 윤 전 총장을 검사장으로 승진시키고, 고검장급이던 서울중앙지검장을 검사장급으로 낮춘 파격 인사였다. 2년 뒤 2019년 7월 문재인 정부는 윤 전 총장을 검찰총장에 임명했다. 이 인사도 검찰총장 임기제 도입(1988년) 이후 검사장에서 고검장을 거치지 않고 총장으로 직행한 첫 사례였다는 점에서 파격적이었다. 그러나 불과 한 달 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에 대한 수사를 개시하면서 윤 전 총장은 문재인 정부와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보수 박근혜 정부와 진보 문재인 정부, 두 정권을 거치며 윤 전 총장은 진영을 가리지 않고 살아 있는 권력에 칼을 들이댔다는 평가를 받으며 공정과 정의의 브랜드를 획득했다. 반면 평등·공정·정의의 정신이 담긴 ‘촛불혁명’으로 집권한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부동산 정책 실패와 ‘내로남불’ ‘조국 사태’ 등을 통해 ‘위선과 무능’ 평가를 받으며 지지를 보냈던 국민에게 실망을 안겼다. 등 돌린 민심은 민주당의 4·7 재보궐선거 참패로 선명하게 드러났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021년 6월29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대선 출마 선언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021년 6월29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대선 출마 선언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정권 탄압받는 투사’ 이미지까지

윤 전 총장의 높은 지지율은 집권 여당이 띄워준 것이라는 자성도 나온다. 집권여당의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윤 전 총장의 조국 전 장관 일가 수사가 얼마나 과도했는지, 그 수사가 대통령의 인사권에 대한 도전이었는지 등의 논란과는 별개로 윤 전 총장이 정권으로부터 ‘탄압받는 투사’의 모습으로 비치게 한 책임이 집권여당에 있다는 것이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윤 전 총장의 갈등이 대표적 사례다.

이 때문에 검찰총장직에 있다가 대선으로 직행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선례이지만, 특수한 배경이 있는 윤 전 총장 탓만 할 수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송영길 민주당 대표가 6월29일 윤 전 총장의 대선 출마 선언과 관련해 내놓은 자성의 목소리는 적절했다. “윤 전 총장의 지지도가 높은 건 우리가 반성해야 할 요소다. 오죽 우리가 미우면 검찰총장으로 일생을 보낸 분의 지지도가 저렇게 높게 나오겠냐. 국민의 미움을 풀어드리고 우리 스스로 변화돼야 객관적 평가가 될 수 있다.” 유창선 시사평론가는 “나쁜 선례라는 원칙론은 정상적인 상황에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런데 윤 전 총장의 경우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했다고 핍박받고 결국 검찰을 떠나게 된, 이 상황 자체가 비정상적이라서 문제 삼기는 어렵다고 본다”고 했다.

집권여당의 반성을 촉구하는 정서는 세 차례 전국선거(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에서 내내 민주당을 지지했지만 이제는 윤석열 지지로 돌아선 20대의 목소리에서도 확인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좋아해서 문재인 대통령도 지지했다는 직장인 박아무개(27)씨는 이렇게 말했다. “‘조국 사태’ 때 결정적으로 실망했다. 조 전 장관 부부가 자녀 입시를 위해 벌인 일련의 일이 분명히 문제가 있었지만, 문재인 정부 사람들은 문제를 문제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게 정의롭지 않다고 생각했다. 촛불로 탄생한 정부라 적어도 정의로운 나라를 기대했는데 자꾸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자기편이라고 봐주더라. 반면 윤 전 총장은 국민의힘 후보로 나와 대통령이 된다 해도 국민의힘 사람들이 잘못했을 때 봐주자고 하지 않을 것 같다. 문 대통령에게 기대했던 정의를 이제 윤 전 총장에게 기대하게 됐다.” 직장인 정아무개(29)씨도 “문재인 정부는 법과 원칙을 말하지만 반대로 행동했다. 반면 윤 전 총장은 법과 원칙을 지켰고, 여당과 야당에 대해 두루 공정했다”며 민주당 지지에서 윤석열 지지로 돌아선 이유를 밝혔다.

윤 전 총장이 기자회견을 하는 동안 그의 지지자들이 손팻말을 든 채 응원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윤 전 총장이 기자회견을 하는 동안 그의 지지자들이 손팻말을 든 채 응원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검증 결과 따라 요동치기 쉬운 지지율

최근 이른바 ‘윤석열 엑스파일’ 논란도 있었지만 ‘초보 정치인’ 윤 전 총장은 이제 본격적인 검증 시험대에 올랐다. 현재 여론조사에서 눈에 띄는 점은 윤 전 총장이 ‘비선호도’에서도 1위라는 점이다. 제이티비시(JTBC)가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에 의뢰해 2021년 6월19~20일 전국 만 18살 이상 남녀 1028명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선호도’는 윤 전 총장 32%, 이재명 경기도지사 29.3%로 오차범위(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 내 접전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비선호도’는 윤 전 총장이 30.9%(이 지사 12.4%)로 추미애 전 장관(25.9%)과 오차범위 안에 있지만 가장 높게 나타났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조) 김형준 교수는 “비선호도가 높으면서 지지율이 높으면 그 지지율은 불안정하다는 의미다. 윤 전 총장의 도덕성이나 정책·정치 능력 등 검증 과정에서 문제가 불거지면 요동칠 수 있다는 함축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 전 총장의 6월29일 첫 정치인 데뷔 무대에 비판적인 평가도 나온다. 보수층뿐 아니라 중도층과 진보이탈층이 문재인 정부에서 불거진 진영정치를 넘어 한국 정치의 새로운 판을 주도하기를 기대했는데 그런 기대를 충족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유창선 시사평론가는 “윤 전 총장은 이번에 새로운 것 없이 기존 국민의힘도 할 수 있는 얘기를 반복하는 데 머물렀다. 윤 전 총장이 국민의힘 이상의 무엇을 보여주는 차별성이 있다면 국민의힘에 입당하지 않고 자기 정치를 해나가는 게 의미가 있다. 그러나 국민의힘 재탕 수준이라면 시간 끌 것 없이 국민의힘에 들어가 대선 경선에 참여하는 게 현실적인 판단일 것”이라고 짚었다.

‘국민의힘 재탕’ 같은 데뷔 무대

이날 윤 전 총장이 ‘자유민주주의’를 거듭 강조한 것이 ‘국민의힘 재탕’처럼 보이는 한 요소였다. 우리 사회에서 자유민주주의로 표현하느냐, 자유를 뺀 그냥 민주주의로 표현하느냐는 해묵은 논쟁이다. 보수세력은 자유민주주의가 북한의 인민민주주의와 대립되는 개념으로 자유를 빼면 개념이 잘못 이해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윤 전 총장이 국민의힘 강성지지층에 소구하기 위한 메시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아직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그의 철학을 확실히 알 수는 없다. 이와 관련해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정치학)는 “윤 전 총장이 반공과 친미를 의미했던 구시대적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기후위기, 불평등, 미-중 신냉전 등 21세기 주요 이슈와 관련해 합리적 보수의 자유민주주의 비전과 어젠다를 내놓고 진보와 경쟁하면 좋겠다”고 권했다. 그러면서 “진정한 자유주의자라면 차별금지법 제정에 어떻게 생각하는지 밝혀야 한다”고 덧붙였다. 자유주의는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자유를 최대한 허용하는 것이므로, 자유주의에서는 공적·사적 모든 영역에서 어떤 차별도 허용될 수 없기 때문이다.

철학과 현안에 대한 입장뿐 아니라 도덕성, 정책·정치 능력 등 혹독한 시험대가 링 위에 오른 윤 전 총장 앞에 첩첩하게 놓여 있다. 이젠 대선 주자 윤석열에 대한 ‘검증의 시간’이다.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이정규 기자 j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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