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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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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사이 완벽하게 잊어버린 것

2012년 진보신당의 후보자 전원,
2014년 광주 지역 지방선거 후보자가 했던 스왜그 넘치는 ‘학력 미기재’
등록 2020-04-05 16:14 수정 2020-05-03 04:29
선거관리위원회 화면 갈무리

선거관리위원회 화면 갈무리

“알고 봤더니 김어준도 내 후배더라고.”

업무상 만난 앞자리 아저씨가 갑자기 이렇게 말했다. 설마 학연 내세우기? 그럴 리가. 옷차림부터 행동까지 자신은 결코 ‘아재’가 아님을 온몸으로 증명하던 중에 말이다. “아, 부산이나 미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셨나봐요.” 띄엄띄엄 아는 김어준 정보를 떠올리며 물었더니, 그냥 같은 대학 출신이란다. 김어준 본인도 자신이 어느 대학 나왔는지 잊고 살 터인데 세상 온갖 힙한 척은 다 하던 아저씨의 뜬금없는 연줄 자랑이라니. 10년도 더 전의 일이지만 그날의 ‘후딱 깨는’ 느낌이 잊히질 않는다.

그 느낌이 얼마 전 정의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 당내 경선을 앞두고 떠올랐다. 청년 예비 후보들이 한두 명을 제외하고는 너나없이 출신학교를 경력에 박아넣고 있었다. 몇몇은 제일 앞줄에 적었다. 청년이라 경력이 많지 않아서였을까? 그리 보이지는 않았다. 공교롭게도 하나같이 서울의 유명 대학이었기 때문이다. 대학으로 대표되는 학벌자본을 내세우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면, 탈학벌이라는 오랜 의제를 모르는 것일까. 혹은 버린 것일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된 21대 총선 후보자 명부를 살펴보았다. 지난 총선과 지방선거에서 정책적으로 ‘학력 미기재’의 멋짐을 뽐내던 녹색당조차 이번에는 학력을 밝힌 후보가 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진보신당이 최초로 후보자 전원 학력 미기재를 했는데(사진), 그 후신 정당으로 이 분야 원조 자리를 지키는 노동당은 이번엔 다들 학력을 기재했다. 불과 4년 전인 20대 총선 때만 해도 노동당은 중앙선관위 직원의 잘못된 판단으로 학력 미기재라는 ‘정치적으로 중요한 행위’를 하지 못하게 되었다며 발끈한 바 있다. 노동당에서 갈래를 쳐서 나온 기본소득당 후보들도 마찬가지다. 미래당도 다를 바 없다. 소수당의 맏이 격인 정의당을 포함해 전원 ‘학력 기재’다. 그 와중에 일부는 대놓고 ‘학력 자랑’까지 하는 것이다.

끝내 위성정당을 만들어낸 정치권 양대 패밀리의 민망하고도 위험천만한 세력다툼에 시달려 정신 못 차린 것일까. 소수당 후보들이 ‘학력 철폐, 학벌 타파’라는 우리 사회의 대표 의제를 이렇게 완벽히 잊을 줄은 몰랐다.

전체적으로 학력 인플레도 심해졌다. 이번 총선 지역구 후보들(1117명) 가운데 가장 많은 수는 대학원 졸업(424명)이다. 비례대표 후보들도 비슷하다(308명 중 133명). 대학원 재학이나 수료 등을 합하면 그 수는 훨씬 더 늘어난다. 큰일 하기로 맘먹었으면 머리부터 심고 학벌 세탁에 나서야 한다는 우스개가 틀린 말이 아니다. 임명직도 예외는 아니다. 정권의 성격을 가리지 않는다. 공기업 수장은 물론 관리직 승진에조차 학위가 유리하게 작용한다. 이러니 공공, 정책, 행정, 경영 등 뭐든 퍼 담을 수 있을 것 같은 이름을 단 대학원들이 돈벌이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돈만 내면 인맥도 학위도 얻는다.

지난해 수많은 사람이 기승전‘조국’으로 날밤 새우며 학벌 취득과 세습의 작동 원리를 낱낱이 보았다. 그러면서 과몰입한 걸까. 비난하는 이는 비난하는 대로 역성드는 이는 역성드는 대로 ‘자식 대학 보내는 문제’는 아예 생활의 ‘기본값’으로 치부하는 것 같다. 학력주의, 학벌주의가 우리 사회 기본 적폐 중 하나라는 인식마저 희미해진 게 아닌가 싶다.

소수당과 청년은 우리 사회에 소금 같은 역할을 할 이들이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더 큰 짐을 지라고 할 자격이 내게는 없다. 더 엄정한 비판의 잣대를 들이댈 수도 없다. 다만 4년 전인 2016년 총선에서 서울 종로구에 출마한 정의당, 녹색당, 노동당 후보가 서로 질세라 나란히 학력 미기재로 후보 등록을 했던 사실을 떠올린다. 6년 전 6·4 지방선거에서 광주 지역 후보자 243명 중 10명이 학력을 기재하지 않은 사실을 새삼 환기한다. 광주 시민단체 ‘학벌 없는 사회를 위한 시민모임’이 어찌나 그들을 치켜세우며 자랑해댔는지 아직도 몇몇 이름은 귓가에 맴돈다. 우리 좀더 ‘스왜그’ 있는 정치적 인간이 되자.

김소희 칼럼니스트
<font size="2">*김소희 칼럼니스트의 ‘엄마의 품격’을 잇는 ‘정치의 품격’은 정치·정치인 관찰 칼럼입니다.</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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