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원오 서울 성동구청장이 2025년 12월12일 오전 구청장 집무실에서 성동구의 소셜벤처, 도시재생 및 지역 회복력 등에 대해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한겨레 류우종 선임기자 wjtyu@hani.co.kr
한파가 몰아친 어느 날 버스정류장 ‘엉뜨(엉덩이 닿는 부분이 뜨뜻한) 의자’에 앉아 친구와 안부 통화를 했다. 친구가 “오늘은 공무원이 오셔서, ‘청소하는 날’”이라고 했다. 뭐? 공무원이 와서 청소도 해줘? 그게 아니라 한 달에 한 번 담당자가 정신건강 관리를 위해 방문하는데 그 전에 집을 치우겠다는 말이었다. 몇 년 전부터 마음이 엉키고, 그 여파로 주변 정리정돈이 유난히 되지 않는 친구에게는 ‘이 하루’가 생활과 생존의 받침대 같은 날이다. 일석이조인 행정의 효능을 엿보았다.
한겨레21(제1587호 참조)에 소개된 서울 성동구의 ‘위험거처 개선사업’에서도 같은 인상을 받았다. 반지하 거주지를 모두 조사해 분류한 뒤 안전과 생활에 필수적인 문제부터 해결한 사업이다. 집을 고치니 마음이 바뀌었다는 반응이 따랐다. 거주 스트레스가 줄자 우울감과 불안감이 줄고 이웃을 더 신뢰하게 되었단다. 집수리 지원과 5년간 임대료 동결을 묶은 일머리가 돋보였다. 거주 불안은 지금 여기의 주거 환경이 열악한 탓도 있지만 여기가 아니면 어디 가서 사나 하는 걱정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형편만이 아니라 마음까지 헤아린 행정이었다.
성동구는 냉난방에 충전도 가능한 버스정류장, 휴대전화에 고개 박고 걷는 이들의 사고 위험을 줄인 바닥 불 횡단보도, 음압 원리를 이용해 냄새를 없앤 흡연부스 등 이미 수많은 생활밀착형 사업을 선도적으로 실행해 행정도 ‘힙’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어떤 정책을 왜 펼치는지 근본적인 이유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만 30년이 된 민선 지방자치의 가치를 되새기게 된다. 물리적·심리적 취약자들에게 우리 공동체가 줄 수 있는 ‘최저선’이랄까 ‘최소한’은 지방행정(가)의 안목과 능력에 달려 있었다.
정원오 성동구청장은 ‘리비히의 최소량의 법칙’을 설파한다. 농작물이 제대로 자라려면 여러 요소가 필요하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성장을 가르는 것은 많은 좋은 요소가 아니다. 딱 하나다. 그 작물에 가장 부족한 요소. 그 하나로 생육도 생사도 결정된단다. 각기 다른 판자를 이어 만든 둥근 통 안에 물을 담을 때 저장량을 결정짓는 것은 길이가 가장 짧은 판자라는 ‘나무통의 법칙’을 떠올려볼 만하다. 개인의 삶은 물론 조직이나 사회도 넘치고 풍부한 것들이 아니라 부족하고 모자란 것이 때론, 아니 자주 결정적이다. 2014년 처음 구청장이 된 그는 이듬해 성수동 일대 도시재생과 소셜벤처 지원에 앞서 전국 최초로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조례부터 만들었다. 구도심이 활기를 띤다 싶으면 빠른 속도로 잡아먹는 ‘상가 사냥꾼’들을 막았고, 대기업 프랜차이즈의 입점을 제한했다. 누가 굶는지 어려운지 위험한지 촉을 세우고 살아온 ‘구력’이 한몫한 듯하다.
‘눈 오기 전 제설’이라는 믿기지 않는 행정도 자리를 잡았다. 인천 연평도에 눈발이 날리기 시작하면 1시간에서 1시간30분 뒤 성동구에도 필히 눈이 온단다. 겨울철 대기 흐름이라는 과학과 오랜 관찰이 결합한 데이터이다. 2025년 12월4일 서울에 첫눈이 오던 날 곳곳에서 퇴근길 발이 묶인 가운데 유일하게 제설 작업이 제대로 된 성동구 사연이 빠르게 전파됐다. 이미 여러 지역 커뮤니티에서 “성동구 님들, 정원오 구청장 좀 당근에 내놔주세요”라는 우스개가 회자 중이었는데, 그날 이후 성동구발로 “우리 구청장 서울시에 나눔 하겠다”는 메시지가 나온다. ‘사용감’이 엄청 좋다면서.
김소희 칼럼니스트
□ 연재: 김소희의 정치의 품격
https://h21.hani.co.kr/arti/COLUMN/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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