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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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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해선 이재명을 이길 수 없다

이혜훈 장관 후보자 지명으로 여야 모두 출렁… 뜻밖의 승부수로 새판 짜는 정치 본능
등록 2026-01-01 21:21 수정 2026-01-02 08:10
이재명 대통령이 2026년 1월1일 청와대에서 2026년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올 한 해를 붉은 말처럼 힘차게 달리는 해로 삼아 ‘대한민국 대도약의 원년’으로 만들겠다”며, 반칙과 특권이 없는 사회를 구현해 성장의 과실을 모두가 함께 나누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청와대 제공

이재명 대통령이 2026년 1월1일 청와대에서 2026년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올 한 해를 붉은 말처럼 힘차게 달리는 해로 삼아 ‘대한민국 대도약의 원년’으로 만들겠다”며, 반칙과 특권이 없는 사회를 구현해 성장의 과실을 모두가 함께 나누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청와대 제공


이재명 대통령은 놀라운 승부사다. 국면마다 판을 흔들어버리는 걸 넘어 예상치 못한 수로 아예 새판을 짜버린다는 점에서 무섭기까지 하다. 계산적이라기보다는 다분히 본능적인 듯하다. 집권 2년차를 앞두고 청와대 시대의 시작과 함께 초대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국민의힘 출신 이혜훈 전 의원을 전격 지명한 것도 없던 판을 짜버리는 이재명 스타일의 단면이다.

 

논란 앞에 내놓은 메시지, ‘콘크리트론’

 

정치권은 여야 가릴 것 없이 출렁였다. 국민의힘은 그야말로 ‘대혼돈의 아노미’에 빠졌고 더불어민주당도 혼미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혜훈 후보자가 경제학자 출신이긴 하나 딱히 ‘대체 불가’한 능력의 소유자도 아닌데다, 국민의힘 전신 정당에서 국회의원 3선을 하는 동안 줄곧 건전재정 노선을 고수했고, 원외로 밀려나면서는 정치적 생존을 위해 국민의힘 주류 세력에 강한 충성심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경제 전문가보다는 투사 이미지를 더 많이 자랑했다. 윤석열의 내란을 옹호하고 탄핵을 앞장서 반대했고, 지명 불과 며칠 전까지 국민의힘 서울 중구·성동구을 당협위원장으로서 이재명 정권을 비난하는 펼침막을 동네 여기저기에 내걸기도 했다.

민주당에서도 여러 목소리가 들린다. 여권에도 사람이 없지 않은데 굳이 확장재정이라는 현 정부의 ‘정책’에도 반대하고 내란 국면에서 목격했듯이 ‘정체’는 더욱 불분명한 이혜훈을 낙점한 이유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불만이다. 지지자 사이에서는 “선을 ‘씨게’ 넘은 탕평”이라거나 “이도 저도 아닌 잡탕”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조국혁신당과 진보당도 가세했다.

이 대통령은 지명 다음날 대변인을 통해 “내란 관련 발언은 본인이 충분히 소명해야 한다”며 “(비록 지명은 했으나) 국민의 검증을 통과해야 한다”는 완곡한 설명을 더했다. 논란이 가라앉지 않자 그 이튿날에는 국무회의 시작과 함께 8분 동안 “인재도 운동장도 넓게 쓰겠다”는 소신을 피력했다. “통합과 포용, 융합이 대통령의 책무이다. 시멘트만 있으면 시멘트 더미, 모래만 있으면 그저 모래 더미이다. 내가 모래면 모래 말고 자갈, 시멘트, 물을 모아야 한다. 그래야 콘크리트를 만들 수 있다.” 중간중간 전 정권에 이어 유임한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도 언급하고, 지지자들의 우려도 에둘러 반박했다.

 

‘이혜훈 효과’, 여야 모두에 다중적 파장

 

‘이혜훈 효과’는 뜨겁고도 다중적인 파장을 낳았다. 우선 ‘윤 어게인’ 세력의 주장이 얼마나 허망한지 만천하에 드러냈다. 이 후보자는 “내란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불법적 행위”라며 “정당에 속해 정치를 하면서 당파성에 매몰돼 사안의 본질과 국가 공동체가 처한 위기의 실체를 놓쳤음을 솔직하게 고백한다”고 밝혔다. 그야말로 ‘탈윤’ 메시지의 정석에 해당하는 답을 ‘변검’ 수준의 속도감으로 내놓은 셈이다. 정책 소신 또한 제대로 쓰이지 않으면 얼마나 무용한지도 보여줬다. 과거 이재명 지사 시절 경기도의 재난기본소득에 대해 “헛돈”이라고 비판하는 등 재정지출을 적극 반대했던 이 후보자는 “민생과 성장에 과감하게 투자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며 현 정부의 재정 기조와 방향을 맞출 뜻을 비쳤다. 이 대통령은 이를 의식한 듯 “의견이 다른 건 불편한 게 아니라 시너지의 원천”이라고 의미 부여를 했다.

진영에 따라 정책에도 딱지를 붙여 조율과 타협의 여지를 없애고, 자리는 끼리끼리만 챙겨온 분위기에 변화가 생길까? 이번 지명은 민주당 인사들에게 적잖은 ‘각성’과 ‘긴장’을 선사했을 법하다. 이미 대통령은 국무회의나 부처 업무보고 과정을 실시간으로 공개하면서 업무 장악 능력과 자세에 따라 상대를 매우 다르게 ‘대접’하는 모습을 감추지 않았다. 누구든 능력을 입증하지 않으면 출신성분도 ‘짬’(관록)도 무의미하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안겼다.

국민의힘에서는 ‘탈출 러시’가 펼쳐질 가능성도 있다. 특히 이혜훈보다 내란과 ‘윤 어게인’이 ‘덜 묻은’ 이라면 ‘혹시 내가 2호가 될지 몰라’ 설렐 수도 있겠다. 내 편 아닌 네 편에서도 필요한 사람 얼마든지 데려와 쓰겠다는 뜻을, 어설프게 변방을 건드리지 않고 복판을 두들겨버리는 식으로 크게 알렸으니 충분히 가능한 바람일 터이다.

이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성장하는 내내 스스로가 ‘생태 교란종’에 가까웠다. 광역단체장은커녕 국회의원도 한 번 안 해본 처지에 덜컥 대통령에 도전했다. 그 승부수로 단숨에 경기도지사와 국회의원을 거쳐 대권을 잡았다. 이 대통령은 거대 야당의 장악력 센 대표를 했지만 딱히 자기 사람이라고 꼽을 만한 인사나 인연은 그리 많지 않다. 기능적으로 사람을 대하고 ‘얄짤없다’는 평이 따르나, 적잖은 지지자가 그런 점에서 오히려 안도한다. 우리 정치가 그간 이 모양 이 꼴이었던 이유는 얽히고설킨 인연이 끈질기게 작동한 탓도 크다. 특히 1980년대 운동권 출신 배경이 여전히 프로필 첫 줄에 꼽히는 범민주 계열 인사들에게는 인맥이 거의 ‘종특’ 수준이니까.

 

노무현·문재인 정권과의 차이는

 

이 대통령은 대선 전부터 다른 소리를 듣겠다는 정도가 아니라 여차하면 다른 의견을 가진 인재를 중용해 쓰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정책 다툼에 머물지 말고 정파를 떠나 국운을 함께 짊어지자는 뜻이다. ‘전례’에 얽매이지 않는 이런 태도가 용인술에 앞서 업무 속도에서 빛을 냈다. 공약이었으니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을 할 줄은 알았지만, 집권 첫해에 마무리할 줄은 아무도 몰랐다. 대전·충남 통합은 여건이 갖춰져 있었다 해도 2026년 지방선거 전에 띄워 급물살을 타게 할 줄은 짐작하기 어려웠다. 업무보고와 국무회의 생중계도 하면 좋은 거, 굳이 망설임 없이 몸풀기 한번 없이 즉각 시행해버렸다. 이 모두가 전에 없던 새판을 짜버린 일이었다.

그에게 대통령이란 공동체의 안녕을 “주도할 권한과 역할을 맡은 자”다. 앞서 2025년 12월30일 국무회의에서 그는 간곡한 어조로 “정치와 전쟁은 달라야 한다”며 이혜훈 후보자 지명에 대한 양해를 구했다. “대통령이 될 때까지는 특정한 세력을 대표하지만 대통령이 된 순간에는 모두를 대표해야 한다. 나 아니면 전부 적이다, 내 의견과 다른 집단과 인사는 다 제거하고 모든 걸 갖겠다고 벌인 극단적 처사가 바로 내란이다. 다시 정말로 정상인 사회로 되돌아가려면 통합·포용 같은 반대쪽의 노력을 많이 해야 한다.” 반박할 수 없는 말이다.

이재명 정권은 엉망진창이었던 윤석열 정권의 ‘기저효과’를 톡톡히 누린다고들 한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이나 노무현 정권과 대비하여 보는 이도 많다. 당시 처음 겪은 탄핵의 어려움을 함께 헤쳐온 정치세력이 보란 듯이 연대와 협치를 했다면, 그보다 앞서 여야가 함께하는 대연정을 성사시켜봤다면 우리 정치가 얼마나 달라졌을까 하는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도 새삼스럽기 때문이다. 그때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덜 간절했던 것 같다.

 

김소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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