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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귀연 앞머리 하고 다닌 내 친구…판사들은 시민의 ‘간절함’ 알아야

30년 묵은 과제인 재판소원 입법에 몽니 부리는 대법원… 판단은 끝났다
등록 2026-02-19 22:03 수정 2026-02-20 16:09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 지귀연 부장판사가 2026년 2월19일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2·3 비상계엄 관련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1심 판결 선고 주문을 낭독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 지귀연 부장판사가 2026년 2월19일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2·3 비상계엄 관련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1심 판결 선고 주문을 낭독하고 있다. 연합뉴스


내란 이후 온 나라가 크게 출렁이면서 가라앉아 있던 많은 것이 일제히 떠올랐다. 뿌연 부유물들은 그간 우리가 무엇을 ‘깔고’ ‘뭉개고’ 있었는지 역설적으로 선명하게 내보였다. 잘못한 이들에게 준열히 책임을 물어야 할 사법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음도 고통스럽게 직시해야 했다. 휴먼 에러가 반복되는 것은 분명 시스템 에러이니까.

음모론에 운명론까지 등장했다. 최근 판결들이 오죽 상식과 동떨어져 보이면 그럴까. 김건희가 판사들을 그렇게 챙겼다더라, 김건희 모친 최은순이 “돈 싫어하는 판사 있냐”고 떠들고 다니지 않았느냐 등의 의심은 음모론일 테고, 그래봤자 언젠가 (죄인이든 죄인 봐준 판사든) 죗값 다 치른다, 그도 아니라면 하늘이 가만두지 않는다 등의 믿음은 운명론일 테다. 운명론자인 한 친구는 한동안 이진관 판사 앞머리를 흉내 내고 다니더니 얼마 전부터는 지귀연 판사 앞머리를 연출하고 다녔다. 에너지 주파수를 맞춰야 한다나. 머리카락이 무슨 삐삐나 워키토키라도 되는 양. 우스개 같지만, 나름 진심이다. 시민들이 어떤 ‘간절함’으로 재판을 지켜보는지 안다면 판사들은 훨씬 더 치열해야 한다.

죄목을 조목조목 멀쩡히 짚어놓고는 ‘다만’ 양형은 터무니없이 낮게 내리고, 그런 게 있는지도 잘 몰랐던 공소기각을 유난히 특정인과 연관된 피고인들에게 남발하고, 권력자의 권력자인 탓에 브이제로(V0)로 불린 이를 그저 사치품에 눈먼 공직자의 일개 배우자 취급을 한다. 내란 피고인을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풀어준 것도 모자라 재판을 질질 끌어 국민 숨넘어가게 한 지귀연 판사는 이름 자체가 장르가 됐다. 나라의 운명을 벼랑 끝으로 몬 내란의 밤을 겪고도 다음날 그저 지켜보자는 식의 말만 하더니, ‘재판소원법’이나 ‘대법관 증원법’ 등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하자 다음날 득달같이 “국민에게 엄청난 피해가 가는 문제”라고 목소리 높인 조희대 대법원장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법 정상화의 걸림돌로 길이 이름을 남길 것 같다.

조희대 대법원장. 연합뉴스

조희대 대법원장. 연합뉴스


2026년 2월18일 설 연휴 마지막 날, 조희대 원장이 이끄는 대법원은 재판소원 도입과 관련해 “4심제의 희망 고문이자 소송 지옥”이라며 반대 입장을 냈다. 닷새 전 헌법재판소의 “우리 헌법 취지에 부합한다”는 공식 입장에 대한 반박이었다. 법을 다루는 두 최고 기관이 정면으로 부딪치는 양상이나, 아무도 이 다툼을 염려하지 않는다. 이미 ‘분별’을 끝냈기 때문이다. 두 기관의 권한이나 역할은 입법 기술적으로 나눌 과제이지 헌법상의 본질적 문제가 아니다.

어느 기관이 제 기득권에 집착했는지, 어느 기관이 그간 우리 공동체에 더 ‘신의’를 보였고 ‘신뢰’를 받는지는 분명하다. 당장 논리와 표현만 봐도 알 수 있다. 대법원의 입장문은 거칠고 노골적이다. 재판소원은 이재명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파기환송 뒤 갑자기 추진됐다는 둥 헌법재판소는 정치적 기관이므로 중립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둥 헌법재판소 입장이 오락가락했고 법안 심사도 졸속으로 이뤄졌다는 둥 음모 제기와 침소봉대, 사실 왜곡까지 두루 담았다. ‘와, 그동안 이런 식으로 재판하고 판결문 쓴 건가’ 싶은, ‘자기고백서’ 같아서 안쓰러울 정도이다.

헌법재판소는 일찍이 “법원의 재판을 헌법소원 대상에 포함하여 또 한번의 구제절차를 국민에게 제공하는 것이 이상적”이고 “이는 입법자가 해결해야 할 입법 과제”(1997년 12월24일 선고, 96헌마172 등 결정)라고 밝힌 바 있다.

 

김소희 칼럼니스트

한겨레 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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