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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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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친구를 만듭시다

등록 2014-08-02 15:52 수정 2020-05-03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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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앞으로 무슨 일을 할 거냐고 물으면 나는 “책을 만들 거예요”라고 답한다. 보통 “어떤 책을 만들어요? 혹시 직접 글을 쓰세요?”라고 되물어온다. 사실 조금 난감하다. 책은 책인데 글이 없는 책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응? 글이 없으면 그게 책이야?’

난 책이 될 책을 만들고 있다. ‘소셜네트워크북’(Social Network Book)이라고 이름도 붙여봤다. 현재 작업 중인 ‘동네북’은 동네친구를 만드는 책이다. 나의 상상 속에서 동네북이 책이 되는 과정은 이렇다.

동네 커피숍에 동네북이 놓여 있다. 동네 커피숍에 놀러온 동네 사람 A가 동네북을 발견한다. 마침 동네친구가 있었으면 하던 A는 동네북에 글을 남긴다. “저는 34살 남자입니다. 따뜻한 세상을 꿈꾸며 마을공동체 사업에 지역활동가로 일하고 있습니다. 가끔 저녁에 동네에서 술 한잔 같이 할 친구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며칠 뒤 동네 사람 B가 A의 글을 본다. 마침 마을사업에 관심도 있고 술친구도 필요했던 B가 A에게 전자우편을 보낸다. “언제 시간 괜찮으면 술 한잔 해요.” A와 B는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동네친구가 된다.

한동네 사람들이 직접 작성한 글들이 모여 책이 되고 서로 동네친구가 되는 상상을 한다. 실제 동네북에 어떻게 하면 더 다양한 이야기가 담길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다.

어떤 모임에서 처음 본 사람이 같은 동네 사람인 걸 알면 괜히 반갑다. 어디에 사는지 절로 묻게 된다. 하지만 실상은 내 옆집에 누가 살고 있는지도 잘 모른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관계의 무한한 확장과 다양한 주제의 소통을 돕고 있지만 내 옆집 사람을 SNS에서 만나기는 쉽지 않다. 언제부턴가 혼자 살다 혼자 죽어가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굳이 일본의 무연사회를 말하지 않아도 이미 우리나라의 이야기다. 옛날 시골마을처럼 옆집 숟가락 개수까지 아는 관계는 바랄 수도 없고,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이 차가운 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새로운 관계가 필요하지 않을까?

동네북을 만들기 위해 ‘왓썹북’(whatsupbook)이라는 1인 출판사를 만들었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안부를 묻고 싶은 마음에서 영어의 ‘What’s up?’을 따왔다. 동네북은 20년 지기 서울 신림동 동네친구들이 모여서 만들고 있다. 어떻게든 올해 안에 세상에 내놓을 작정이다. 물론 생뚱맞은 시도이고 어설프겠지만, 사람들이 ‘동네북’을 동네북처럼 편하고 재미있게 두드렸으면 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정말 필요한 건 동네북이 아니라 동네친구다. 늦은 저녁에라도 불러내서 마음 편히 만날 수 있는 동네친구를 만들어보자. 요즘 같은 힘겨운 세상살이에 넋두리라도 함께 나눌 동네친구가 있다면 작지만 큰 힘이 되지 않을까.

오승환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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