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3일 ‘세상을 향한 오피니언 펀치 훅’에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종편 연합군의 강습이 두렵다.’ 비행이 시작되었다. 종합편성채널(종편)의 처지에서는 순탄한 비행 (飛行)이 되지 않겠지만, 그래도 저널리즘의 가치와 미디어 생태계의 윤리를 지키고자 하는 우리는 채널들의 비행(非行)을 주의해야 한다. ‘영양가 없는 종편인데, 뭐’라며 대수롭지 않게, 냉소적으로 보는 미디어 운동장 사람들에 대한 경고였다.
“광고시장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종편과 보도전문채널을 이렇게 무책임하게 내주면 결국 서로 싸우다 모두 망하거나 몇 개가 결정적으로 나가떨어질 거라는 낙관적 전망을 내놓는다. 매우 안일한 예측이고 비현실적 진단이라고 단언한다. 종편이라는 쓰나미가 가져올 방송 부문과 사회 영역에서의 이중적이고 실제적인 파괴력은 그렇지 않을 거라는 기대로 절대 해소되지 않는다.”
‘글로벌 미디어 기업’이니 ‘일자리 창출’이라는 환상은 깨졌다. 눈덩이 같은 손실과 덤핑 광고 등이 힘든 실재계를 구성한다. 시청률도 제대로 나오지 않으니, 자체 제작에 돈 댈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종편은 끝? 천만의 말씀. 조•중•동 연합 종편이 곧 망할거라 했던, 시청률 0%대의 채널은 신경쓸 것 없다던 망상의 예언가들은 입 다무는게 좋다. 종편은 지금 꽤나 잘나가는 오빠다. 밤무대에 종편 저널리즘이 떴다.
짧은 시행착오 기간을 거쳐 답을 찾은 종편이다. 돈 안 되는 드라마 제작은 포기! 폭스의 교본을 따른다. 우익본색. 정파성에 충실한 뉴스를 전면 배치하고, 이데올로기 정치공학에 기초한 토크쇼를 잔뜩 편성한다. 값싸면서도 시청률 높은 시사 프로그램 중심으로 재편하고, 총 4%를 넘나드는 시청률로 수구의 의중을 파고든다. 물론 대선이 호기였다. 의제를 장악하고 프레임을 짜내라. 노골적으로 야당 후보를 까고, 질낮은 언어 를 쏟아낸다. 이에 적합한 선수들을 출현시켜라. 그러면 시선이 모이고, 힘이 실린다.
욕을 봐도 괜찮고, 심의 제재를 받는게 오히려 낫다. 어차피 새판이다. 판을 망가트리는게 종편 처지에서 오히려 살길. 뉴스와 토크를 뒤섞은 프로그램으로 ‘공정성’의 가치를 교란하고, 그럼으로써 우익의 목소리가 텔레비전에 나오길 학수고대하던 골수들의 지지를 틀어잡는다. 정치적 이슈조차 선정주의로 바름으로써, 흥미를 좇는 젊은층까지 파고든다. 온갖 말꾼들, ‘전문가’ ‘정치 평론가’들을 끌어들이라. ‘보수 대 진보’의 적대 진영을 강화하며, 기술적으로 우익의 논리를 설파한다.
종편은 그렇게 한참 힘을 내고 있다. 여전히 별것 아니라고? YTN 시청률은 얼마고, MBC 의 정치적 영양가는? 종편 우익 저널리즘의 득세는 ‘공정’이나 ‘기계적 중립성’에 매몰된 기존 지상파 뉴스의 몰락과 맞물려 있다. 전자의 비행은 후자의 파행에서 더욱 힘을 얻는다. 선거가 끝나면 끝? 무책임한 발상. 대통령이 누가 되든, 저질•편파•선정의 종편 저널리즘은 더욱 발호할 것이다. 종편은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의 방송이고 두려워할 미래의 채널. 그러하니 어찌 공습경보를 내지 않을 수 있겠나?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무관심에 발끈하는 건 ‘오기’뿐이요, 계속된 굴욕에 늘어가는 건 ‘배짱’뿐이다. 개국이후 꾸준히 0% 시청률에서 ‘암중비약’하고 있는 종합편성채널(종편) 4사에 이번 대선은 생사의 갈림길에서 극적 구원이 펼쳐질 것이냐, 아니면 충분히 예견되는, 아니 충분히 객관화된 숙명적 폐업의 길로 들어설 것이냐를 결정하는 절체절명의 ‘승부’다. 종편의 박복한 굴레를 끊어줄 단 하나의 가능성은 바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당선뿐이다.
종편은 그래서 돌진 또 돌진이다. 이탈리아 시인 잠바티스타 마리노는 “기적이야말로 시인의 목표”라고 했다던데 이를 종편 4사의 오늘로 번안하면 “그분의 당선이야말로 우리의 기적”쯤 될 것이다. 지면 관계상 다 옮겨 적을 순 없지만, 결코 과장이 아니다. 종편사들은 이미 시장의 원리와 경쟁의 법칙 속에서 생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잃었다. 워낙 축적해놓은 것이 많은 비대한 집단이므로, 한국의 자본주의가 또 워낙 천박하고 비논리적이어서 대마가 쉽게 죽게 내버려두지 않으므로, 그저 꾸역꾸역 버티고 있을 뿐이다.
지난 6월 기준으로 종편 4사의 손실 누적액은 그야말로 천문학적이다. 프로그램이 가장 풍성한 JTBC가 825억원 규모로 가장 많았고, TV조선이 500억원대, 채널A가 200억원, MBN이 181억원가량이다(‘투입=환수’가 아니라 ‘투입=적자’가 되는 산출). 개국 반년 만에 4사 합계 약 2천억원을 날려먹은 셈이다. 세계 방송사에서 이렇게 단기간에 많은 금액을 여러 방송사가 잃어버린 적이 있었을까 싶어 기네스북 등재를 고려해야 하지 않은가 싶을 정도다.
개국 이후 종편이 언론 그 자체의 면모로 주목을 받았던 때는, 불행하게도 없다. 검색을 해보니 그나마 채널A의 정파 사고(1시간가량 방송사고가 났지만 다음날에야 알려졌다)가 종편 개국 이래 가장 ‘핫’한 소식이 아니었나 싶다. 그 밖에 채널A가 박근혜·문재인 여론조사 수치를 바꿔 내보냈던 뉴스,TV조선이 자살 생중계를 했던 것 정도가 종편이 노이즈의 한 방식으로라도 주목을 받았던 때로 꼽힌다.
더욱 절망적인 건, 시간이 지나면 좀 나아질 것이란 기대야말로 낭만적이란 점이다.TV조선의 회계를 책임졌던 경영기획실장이 100억원대의 회사 돈을 횡령하고 중국으로 도주한 것은 단적이다. ‘배가 침몰할 때, 쥐가 제일 먼저 바다에 뛰어든다’는 말은 이럴때를 대비한 격언일 터. 종편은 지금 버틸 수 없는 ‘회로’에서 누구의 ‘신호’가 먼저 꺼질 것인가를 기다리는 신세다. 글로벌 미디어 그룹과 일자리 확충이라는 출범 취지는 말하기도 겸연쩍고, 그저 하루 16시간 사고나 내지 않고 뉴스를 편성해 ‘찬양가’를 부르는 것으로 겨우 실속 없이 허울만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종편 출범 이후 선거방송심의위원회는 업무 폭주에 시달리고 있다. 심의 업무의 절반 이상이 종편 프로그램들이다. 이들은 제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경고를 받아도 개의치 않는다. 죽음을 각오한 ‘가미카제’가 ‘무좀’을 두려워할 리 없지 않겠는가. 그렇게 언론이 좀먹히고 있는 중이다.
김완 기자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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