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파적 ‘사연팔이’ 없인 시선 끌 수 없는 프로그램 전락김완 〈미디어스〉 기자
진심으로 그리고 기꺼이 위대한 프로그램이라고 불러주고 싶다. (이하 )가 방송계에 미친 영향은 가히 천지창조라고 불러도 좋을 만한 것이었다. 는 지상파와 그 나머지로 구분되던 방송의 지형 자체를 바꾼 프로그램이고, 지상파 예능의 바깥에서 대중의 오락을 바꿔낸 거의 유일한 포맷이었다. 주류에서 비껴 주류를 바꿨고, 아무도 예상치 못한 곳에서 폭발했다.
근래 한국 사회의 대중문화 전체를 논하더라도, 가장 주목할 만한 ‘도전’이자 ‘성공’인 이 프로그램은 그러나 ‘기적을 노래하라’는 카피의 참신함이 실제 기적을 마주한 횟수로 치환돼가며 이제 더 이상 어떤 기적이 발생하더라도 놀라지 않을 정도로 또 빠르게 익숙한 것이 되었다. 는 을 원형질로 하는 오디션의 기원을 이루 말할 수 없는 높은 곳까지 도약시켰지만, 역설적으로 그 도약된 높이에서 이제 서서히 하강하고 있다.
를 좇아 범란한 수많은 아류작들은 애초 의 ‘영향력’으로 칭송됐지만, 그 아류작들과의 출혈 경쟁 속에서 는 이제 더 이상 어떤 기적을 보여주고 무엇을 노래해야 하는지 방향을 잃어가고 있다. ‘악마의 편집’과 ‘60초 후에’의 파격은 어느새 익숙해졌고, 이젠 신파적 ‘사연팔이’에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화제를 모을 수 없는 그저 그렇고 그런 프로그램이 되어가고 있다.
‘기적’과 호응하고(시즌1), ‘공정사회’를 호명하고(시즌2), ‘아마추어리즘’의 진수를 보여줬으며(시즌3), 스타덤의 획기적 ‘경로’를 제시하던(시즌4) 시간은 이제 지났다. 다시 찾아온 는 지금껏 가 확립한 익숙한 경로를 따라 안정적인 시청률과 변함없는 호응을 과시하는 듯 보이지만, 지금보다 더 작은 시절에 보여줬던 파괴력과 활력은 아직 찾지 못하는 모습이다.
‘기적을 노래하라’던 의 슬로건은 감동의 최대치를 약속하는 주문인 동시에 가 지닌 매력을 가장 정확히 드러내는 구호였다. 삶이 바뀌는 기적을 누가 차지할 것인지의 단순한 회로 위에서 대중은 맹렬히 집단적으로 그걸 궁금해했다. 하지만 어느새 그 기적의 쟁취마저 시스템화됐다. 그리고 연예산업의 컨베이어 벨트 바깥 영역처럼 보이던 그 포맷마저 이제 분명한 산업화의 길을 걷게 됐다. ‘제 점수는요?’를 트레이드마크로, 의 상징으로 군림하는 이승철은 ‘세상이란 무대에선 모두 다 같은 아마추어’라고 노래했다. 한때 그 외침은 분명 감동적이었다. 여전히 그 외침이 어떤 영감을 제시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위대했던 한 프로그램의 시대가 확실히 저물고 있다.
TV도 노력·비용 들여 즐겨야 하는 현실이 서글프다 원용진 서강대 교수
소비 비용이 늘고 있다. 물가가 올랐다는 말은 아니다. 물가가 내린 듯 보이는 경우도 상품을 사는 사람이 상품 외 비용을 지불하며 비싼 소비를 하고 있다. 대형 할인점의 물가가 싸 보이지만 꼼꼼히 따져보면 상품을 한꺼번에 많이 사 냉장고에 넣어둘 경우 전기료, 대형 냉장고 구입비 등 오롯이 소비자가 치러야 하는 부담이 만만찮다. 그 비싼 구매를 적극적으로 우리가 해내고 있다. 문제는 대형 할인점에서 물건을 사는 일에만 그 비싼 소비가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얼마 전 몇몇 대학에서 교양영어 교육을 그만둘 예정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미리 영어 공부를 다 해오는 학생들 탓에 따로 교양영어를 가르치는 일이 헛수고라는 판단을 한 모양이다. 과외로 선행학습을 마친 고교생들이 정작 학교에 와서는 모두 엎드려 자는 꼴이 대학에서도 생겨난 것이다. 사회가 같이 치러야 할 비용이 개인 몫으로 전가되는 일은 장보기에서의 개인적 비용 치르기, 교육에서의 개인 돈 내기처럼 온갖 일상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심지어 안방에서 편하게 볼 수 있던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공들여 수용하라는 요청이 쇄도한다. 텔레비전의 예능 프로그램을 재밌게 보려면 제법 큰 덩치의 정보 더미를 지녀야 한다. 의 주인공들에 대한 적절한 데이터베이스를 지니지 않고서는 그 프로그램으로부터 재미를 구할 수 없다. 리얼 버라이어티쇼를 재밌게 보려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연예 정보를 꾸깃꾸깃 모아야 한다. 연예 정보에 게으른 어르신들이 을 재밌게 볼 리 만무하다. 예능 스펙을 못 가지면 예능 소비에서도 제외되기 일쑤다. 텔레비전을 보는 일에도 개인 비용 치르기가 일반화되는 추세다.
는 개인 부담하기가 일상화되는 절정이다. 재벌 방송은 판을 깔고, 세상의 온갖 스펙을 섭렵한 자들이 경쟁을 벌인다. 연예기획사 대표가 나와 경쟁자를 뽑는 <k> 프로그램 때만 해도 뽑아서 연수시킨다는 절차가 주요 스토리라인을 구성하고 있었다. 하지만 는 이제 그 능선을 넘어선다. 연수시킬 필요가 없는 자를 선발하는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았고, 나머지는 그 주요 목표를 감추는 알리바이로 존재한다. 사연이 있는 경쟁자들의 사연 들려주기처럼 보이고 관객도 그에 열광하지만, 속 알맹이에는 ‘이미 스펙을 완성한 자’를 뽑는 목표를 내재하고 있다.
생산하는 쪽에서 치러야 할 기회비용을 수용하는 쪽에서 다 부담해버리는 현상의 최고점에 놓인 . 그를 좋아하고, 전파하며, 일상 안 주요 의제로 가져다 쓰는 사람들. 이는 대형 냉장고에 잔뜩 상품을 챙겨넣고 전기료와 대형 냉장고 비용을 부담하는 일, 사교육으로 교육을 완성해내는 일, 예능 프로그램을 더 재밌게 보기 위해 각종 예능 정보를 섭렵하는 일과 계열을 이룬다. 생산해 판매하는 이들의 손을 덜어주고 그 부담을 오롯이 떠맡기엔 이미 우리 삶이 너무 고달프다. 가 눈물이 날 정도로, 그 안 경쟁자들의 이야기가 허리가 휘어지도록 재밌더라도 그 재미는 억울한 재미일 가능성이 크다. 재미 속에서 억울함도 찾아내는 재미를 한 번씩이나마 누려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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