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과 RO 파문을 다룬 978호 의 표지 문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였다. 퍽 인상적이었다. 이 문장은 그들의 종북성과 그 낡은 확신범들의 폐쇄적 공격성과 끝내 작별을 고했던 노동당이 낸 성명의 제목에 들어간 문장이기도 했다. 비록 사실이 그러하더라도 그것과는 상관없다는 역설은 꽤 무거운 그리고 진지한 사유의 지점을 던진다. 그것이 어떤 문제라고 하더라도.
한국 사회는 지난 수년간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복잡계가 아닌 ‘단언컨대’의 단선적 경로를 질주해왔다. 정치와 진영으로 나뉘어 ‘너는 누구 편이냐’는 배타적 질문에 언제나 헐떡거리며 응답 해야 했다. 원했건 원치 않았건 그 단순한 회로 속에서 우린 지속적으로 그리고 분명한 선택을 하는 것만이 내가 지지하는 정치와 진영을 수호하는 일이라고 굳게 믿어왔다.
영화 의 상영 중단 사태는 말하자면 그동안 우리가 살아온 ‘단언컨대’의 시간이 총체적으로 얼마나 피폐한 것이었는지 보여준다. 개봉관을 잡아놓고 급작스레 상영이 중단된 사건의 전말을 두고, 여러 가지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다. 하지만 구체적 압력이 있었건 아니건, 또 누구의 의지가 작용해 상영 중단이 결정된 것인가와도 별개로 이 사건의 맥락과 징후가 읽혀야 한다고 본다.
천안함 사건이 북한의 소행이 아니라고 믿을 근거가 상대적으로 부족하더라도 누군가는 그걸 충분히 의심할 수 있다. 어떤 적극적인 이는 당연히 그걸 표현할 수 있다. 영화로 만들어 회의할 수도 있고, 글로 써 의구심을 고발할 수도 있다. 그 표현이 대체로 불편하고, 설령 너무나 형편없는 회의와 의구심이라 하더라도, 그래서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는 기꺼이 그것들을 인정해야 하고, 할 수 있어야만 한다.
상영 중단의 구체적 이유는 곧 밝혀지겠지만, 그것이 무엇이건 간에 그 시작은 아마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이 표현과 의심이 ‘단언컨대’의 질서 바깥에 있다는 두려움, 그래서 행여 힘있는 누군가 몹시 불편해할 수 있으리라는 지레짐작 말이다. 한 사람의 ‘단언’이 점점 더 나머지 사회적 힘들을 초라하게 만드는 때에 그래서 이 사건은 상징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두렵게 여기게 된 인식의 만연이야말로 지난 수년간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가 당한 가장 선연한 상해다. 정치와 진영은 영속한 것이 아니다. 언젠가 세월이 흐르면 정반대의 표현과 의심이 또 난무할 것이다. 왜냐고? 의심이야말로 민주주의의 필요악이기 때문이다. 의심은 세상을 전복하려는 것이 아니다. 비록 사실이 어떠하더라도 그것과 상관없는 것들을 또한 기꺼이 인정하려는 민주적 관습의 복원, 거기서 이 사건을 직시해야 할 이유다.
영화관 체인 메가박스에서 상영되던 가 석연치 않은 이유로 개봉한 지 이틀 만에 상영 중지를 당했다. 극장 쪽은 영화 상영을 반대하는 특정 단체들의 물리적 항의가 우려된다며 상영 중지를 결정했지만, 정작 중지를 요구한 단체가 어디인지, 상영 중단을 요구하는 정확한 이유가 무엇인지는 속 시원하게 밝히지 않고 있다.
제작자인 정지영 감독은 등 우리 사회에서 논란이 된 역사적 사건의 진실을 묻는 작품을 줄곧 연출했지만, 이번 처럼 예정된 상영이 중단된 적은 없었다. 흥행이 안 돼 조기에 간판을 내리는 것은 그렇다 쳐도 일부 단체의 항의로 상영을 중단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그러나 최근 정황을 잘 살펴보면 이런 비상식적인 일이 이번만이 아니라 여러 번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 영화 에 계획적으로 낮은 평점을 준 사례나 고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고의적인 인신공격·격하 사례는 서로 다른 표현과 생각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극단적 집단행동을 표출한다. 특이한 것은 이런 극단적인 배타적 행동을 벌이는 집단이 보수우익 진영에서 아주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나는 이런 현상을 '우익행동주의의 등장'으로 정의하고 싶다. 거슬러 올라가면 우익행동주의는 고 노무현 대통령 탄핵 정국을 관통한 촛불시위의 반작용에서 비롯되었다. 보수우익 단체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의견에 반하는 단체들에 대해 현장에서 직접 충돌하는 행동주의를 선택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어버이연합’ 같은 보수우익 단체들은 이명박 정부 들어 보수의 행동대 역할을 자처하며 현장에서 극단적인 혐오 발언과 자신들이 반대하는 단체나 집단에 해를 가하려는 물리적 행동을 감행한다. 또한 최근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는 ‘일베’ 집단은 온라인 행동을 통해 상대방에 대한 극단적 혐오 발언을 무차별적으로 유포한다. 현재 한국의 우익행동주의는 진보적 행동주의보다 과격하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구체적인 계획을 구체적인 실행에 옮긴다.
이번 의 상영 중단을 관철시킨 단체가 어디인지 확실하게 밝혀지진 않았지만, 일련의 우익행동주의의 연장에 서 있는 집단이기 쉽다. 이들은 보수우익 권력의 헤게모니 싸움을 대행하고 있고, 반공주의와 애국주의에 기반한 국가와 자본의 동맹을 지지하고 그 동맹의 전위에서 싸우고 있는 제3의 주체세력들이다. 상영 중단 사태가 간단치 않은 것은 바로 목적지향적인 이들 행동의 스타일과 그 암묵적 배후세력 때문이다. 이것은 한국 사회 민주주의의 퇴행이 야기한 대표적인 폐해 사례다. 우익행동주의라는 좀더 큰 틀에서 이번 사건을 바라볼 필요가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크로스’가 이번호를 끝으로 독자 여러분과 작별합니다. 그동안 수 고해주신 필자들께 감사드립니다.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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