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의 입 틀어막으려는 반지성주의를 경계한다
최서윤 월간 <r> 편집장</r>
버는 돈이 적다. 그러다보니 소비에 신중 해진다. 필요한 물건이 생길 때마다 포털에 서 검색 신공을 발휘해 관련된 평가글을 적 어도 5개 이상은 읽어본다. ‘호갱님’이 되지 않겠다는 의지다. 영화관에서 볼 영화를 고 를 때도 신중하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기 위해 지불하는 가격은 최저 5천원, 최대 9천 원. 누군가에게는 껌값이겠지만 ‘개털’인 나 에게는 아니기에 꼼꼼히 따져보고 지출하게 된다. 결제하며 소망한다. 내가 낸 돈 이상의 효용을 얻기를!
돈과 시간을 버리는 일을 피하기 위해, 볼 영화를 결정하기 전 영화 관련 글들을 미 리 읽어본다. 그중에서도 내가 영화를 선택 할 때 결정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은 두어 명 의 영화평론가가 쓴 글이다. 10년 가까이 그 들의 글을 읽어오며 신뢰를 쌓았다. 이제 그 들의 글을 읽으면 대략 ‘이 영화를 보면 돈과 시간이 아깝지 않겠구나’ ‘이 영화는 안 봐도 뻔하겠네’ 등의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저마다 평론가에 대한 인식과 평론가에게 거는 기대는 다르다. 나는 영화평론가들을 ‘영화 선택 가이드’로 여기고, ‘자신과 잘 맞 는 평론가’를 찾는 작업을 중요하게 여긴다. 어떤 이들은 평론가에게 더 큰 기대를 가지 고 있다. 평론가가 자신과 대중의 괴리를 이 해하고, 그 상황이 내포하는 의미를 설명해 주기를 요구한다. 평론가의 해석에 반론을 제기하며 다른 시각으로 영화를 분석해내는 사람도 있다. 더 좋은 영화 담론을 형성하는 데 기여하는 건강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한 국 영화가 10년 전에 맞이한 중흥기는 다양 한 영화잡지와 이를 통해 활발하게 이뤄진 영화 담론의 몫이 컸다고 분석된다.
문제는 평론가를 ‘무찔러야 할 대상’으로 상정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넌 뭐가 잘났냐” “그럼 네 가 영화를 만들어라” “평가는 관객이 하게 기자들은 그만 좀 떠들어라” 등등. ‘취존’이 라는 말이 생각난다. “취향입니다, 존중해 주시죠?”의 줄임말이다. 이들은 평론가들로 부터 ‘취존’받지 못했다고 느꼈기 때문에 상 처받은 것 같다. 더 나아가 작품과 자신을 동 일시하며 작품을 비판하는 게 자신을 비난 하는 것이라고 여기기도 한다. 그렇기에 평 론가가 자기가 재밌게 본 영화를 부정적으 로 평가하는 걸 ‘선빵’ 날린 것이라고 여겨 평 론가의 입에 ‘죽빵’을 날리는 것일 테다.
취향의 사전적 정의는 ‘하고 싶은 마음이 나 욕구 따위가 기우는 방향’이고, 존중은 ‘높이어 중하게 여긴다’는 뜻이다. 영화를 볼 때 원하는 체험은 각자 다를 수 있다. 누군가 는 좋아하는 연예인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커 다란 스크린으로 2시간가량 보는 체험에 5천 ~9천원을 쓰는 게 아깝지 않을 수 있다. 그 런 취향 자체가 공격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 각하지만, ‘그 영화’에 대한 부정적 평론이 취 존의 영역을 침범한다고 느끼는 건 과한 피 해의식이다. 만듦새가 허술한 영화를 ‘높이어 중하게’ 여기는 건 평론가가 아니라 ‘알바’다.
‘영화관을 여행하는 개털을 위한 안내서’ 의 차원에서도, 한국 영화 산업의 질적인 발 전을 위해서도 평론가의 역할은 중요하다. 평론가의 입을 틀어막으려는 반지성주의를 경계하게 되는 이유다. 평론가입니다, 존중 해주시죠.
종 다양성 확보 위해 ‘마이너리티쿼터제’ 도입하자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r> 교수</r>
개봉 15일 만에 관객 550만을 동원한 의 스크린 독점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개봉 이후 최단시간 100 만 명 돌파’라는 언론의 발 빠른 보도마저 이 영화의 흥행 가도에 일조했으니, 는 극장이 밀어주고 미디어가 끌 어주는 형국이다. 관객들은 극장을 가면 밖에 볼 게 없다는 말을 한 다. 영화가 압도적으로 좋아서라기보다는 압 도적으로 스크린을 독점하기 때문이다. 영 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홈 페이지 통계 자료에 의하면, 개봉 첫 주말에 이 영화는 1341개의 스크린 수를 확보했다. 전국 영화관에 걸린 영화 2편 중 1편 이상이 인 셈이다. 스크린 수 2 위인 가 607개인 것을 감안하면 이 영화의 독점은 가히 압도적이 라 할 만하다.
의 스크린 수 독점은 영화의 제목대로 은밀하면서 위대하다. 한 영화의 과도한 스크린 독점은 대개 투자·배 급의 은밀한 파워에 기인한다. 를 배급한 쇼박스 미디어플렉스는 국내에서 가장 점유율이 높은 투자·배급 회사다. 가 관객 1천만 명 을 넘길 경우 쇼박스 미디어플렉스는 40억 원을 투자해 약 110억원을 벌어들일 수 있 다. 배급사가 제작투자까지 하니 해당 영화 의 배급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지 않을 수 없 다. 는 총제작비로 70억 원이 들었다고 한다. 만일 1천만 관객이 들 경우 이 영화가 상영관에서만 벌어들일 수 있는 돈은 대략 800억원이 된다. 말하자면 10배 이상의 위대한 장사를 할 수 있는 것이 다. 100억원 이상의 위대한 제작비가 든 영 화는 그만큼 위대한 수익을 내야 하는데, 그 러려면 무조건 위대한 스크린 수를 확보해 야 한다.
스크린쿼터제는 자국 영화 보호라는 기 능을 나름대로 충실하게 수행하지만, 영화 의 종 다양성 확보라는 목적에는 온전히 부 합하지 않는다. 스크린쿼터제는 자국 영화 를 보호할 수는 있어도 다양한 영화를 보호 할 수는 없다. 이제는 스크린쿼터제가 국적 을 넘어, 자본의 독점 논리를 제어하는 이른 바 ‘마이너리티쿼터제’로 전환될 때가 아닌 가 싶다. 그러나 정작 국내 영화 제작사나 배 급사는 이 제도를 찬성하지 않는다. 영화 제 작·배급사들은 특정 영화의 과도한 독점을 못마땅해하면서도, 정작 이 제도가 도입되 면 대박 흥행을 노리는 자신들이 제도의 희 생양이 될지 모른다고 우려한다.
영화 제작·배급사들은 이제 대박이 아닌 초대박 영화를 노리고 있다. 1천만이 아니라 2천만 관객을 노리는 것이다. 그럴 경우 영 화 스크린 독점은 지금보다 더 심각할 것이 다. 그러니 서로가 공생할 수 있도록 과도한 스크린 수 독점을 제도적으로 차단하는 마 이너리티쿼터제를 하루빨리 도입해야 한다. 의 스크린 독점 현상은 단지 앞으로 닥칠 더 심각한 독점의 서막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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