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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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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국정조사와 촛불집회

등록 2013-08-27 13:34 수정 2020-05-03 04:27
국조는 전초전 본경기는 지금부터

원세훈·김용판 구체적 죄상은 재판에서 가려질 것
민주당은 촛불에 담긴 열망 안고 실질적 싸움 돌입해야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국정원의 대선 개입과 경찰의 축소 은폐 수사의 진실을 밝히려는 국정조사가 사실상 별다른 성과 없이 막을 내렸다. 이 국정조사를 한 편의 연극으로 말하면 어떤 장르로 정의할 수 있을까? 원세훈·김용판 핵심 증인들이 증인선서를 거부한 채 증인을 신문하는 국정조사가 진행됐으니 한 편의 코믹극이라고 불러야 할까? 국정조사라는 의회민주주의의 장에서 의회주의와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 모두 무너져버렸으니 부조리극이라고 말하는 게 나을까? 아니 국정원 대선 개입의 총체적 진실을 밝히려던 국정조사가 그 자체로 정치적 미궁에 빠졌으니 차라리 잔혹 스릴러극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증인들의 뻔뻔함, 새누리당의 극한 보신주의가 국정원 국정조사 파행의 모든 원인일까? 국정조사가 시작되기 전부터 증인들의 증언 거부나 새누리당의 물타기 작전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시민들이 이번 국정조사를 통해 기대한 것은 증인들과 여당의 솔직한 고백이 아니라, 그 예상된 난관을 헤치고 뻔뻔한 증인들에게 통쾌하고 시원하게 한 방을 날려줄 야당의 비장의 무기였다. 과거 5공 청문회에서 전두환 증인을 몰아세운 고 노무현 대통령처럼 시민들은 민주당에 이번 국정조사에서 진실 규명을 위해 올인하고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어떤 순수한 의협심 같은 걸 원했을 것이다. 증인선서도 거부한 이들에게 진실을 말하라고 윽박질러봐야 얻을 게 뭐가 있었을까?

국정조사에 응한 새누리당의 정치적 프레임은 명확하다. 국정조사에 응하되 최대한 뭉개기를 시도해 국정조사를 무기력하게 만들고 국정원에 대한 검찰 수사와 시민들의 저항을 희석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의회주의를 거부하지 않는다는 최소한의 명분을 획득하고 거리로 나간 민주당을 멘붕에 빠뜨리는 것이다.

민주당이 새누리당의 이런 정치적 프레임에 갇히지 않으려면 이번 국정조사에서 일어날 상황을 미리 간파하고 그 올가미에서 벗어날 방안을 철저히 마련했어야 한다. 당 차원에서 좀더 치밀한 조사와 과학적인 사실 확인, 국정조사에 참여하는 의원들의 철저한 자기 헌신, 감동적이고 희생적인 준비 과정 등에 대한 민주당의 올인 정신이 부족했다. 국정조사에 대처하는 의원의 정신 자세로는 5공 청문회의 노무현을, 진실을 밝히는 방법으로는 미국 드라마 <csi>에서 배웠어야 한다.
예상한 일이지만 여야 합의에 기반한 국정조사 보고서 채택은 물 건너갔다. 짜증나게 시작됐던 국정조사가 허무하게 끝난 셈이다. 그러나 국정원 선거 개입의 실체를 밝힐 수 있는 모든 여지가 소멸된 것은 아니다. 검찰은 이미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한 상태다. 이들의 범죄 사실은 재판을 통해 드러날 것이다. 그리고 국정원 대선 개입의 실체를 규명하려는 시민들의 촛불집회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니 민주당, 증인들의 꼼수와 새누리당의 뭉개기에 당황하지 말고 의혹을 사실로 입증할 수 있는 감동적이고 실질적인 싸움에 올인하라!


제8차 국정원 정치개입 규탄 범국민 촛불대회가 열린 17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 의원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제8차 국정원 정치개입 규탄 범국민 촛불대회가 열린 17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 의원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촛불의 진심을 누가 사유화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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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 때도 없이 뽑아드는 칼에는 정치력 깃들 여지 없어
정의·상식 내세워 촛불 부추기는 민주당 무능부터 성찰해야


허지웅 영화평론가

민주당이 장외투쟁에 들어간 지 거의 한 달이 다 되어간다.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 사건 국정조사가 마무리된 지난 8월23일에는 네 번째 대국민 보고대회를 열었다. 이후 같은 장소에서 열린 국민촛불대회에 다시 합류했다. 국정조사가 마무리된 지금, 민주당은 장외투쟁의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촛불 전선의 확대에 매달릴 것이다.
한때 촛불집회는 시민의 불복종 의사를 드러내는 효과적인 전략이었다. 조직된 집단이 아닌 공통의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개인들의 느슨한 연합이 현실정치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이해집단으로 등장했다. 사안은 매번 달랐다. 그러나 촛불과 광장이라는 두 가지 기호는 한국형 시민 불복종 운동의 상징으로서 당대의 사안을 넘어서는 정치적 함의를 갖게 되었다.
문제는 촛불의 뜨거움이 상징했던 진심과 당위가, 모든 정치적 의제를 가늠하는 절대적 기준처럼 ‘소비되기’ 시작하면서 초래되었다. 이명박 정권에 대한 반대급부로 그런 경향이 강화됐다. 를 비롯해 여기저기서 시민의 진심과 눈물과 뜨거움과 정의와 상식을 소리 높여 외치는 정치 구루들이 등장했다. 그들의 말 안에서 나의 진심과 너의 진심, 나의 정의와 너의 정의, 나의 상식과 너의 상식은 다를 수밖에 없다는 당연한 전제는 존중되지 않았다. ‘다르다’와 ‘틀리다’의 차이를 명백히 알고 있던 사람들이 ‘그렇기는 한데 너는 명백하게 틀렸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민주당은 19대 총선과 18대 대선을 앞두고 아예 강령에 ‘2008년 촛불민심의 시민주권 의식 계승’을 추가했다. 선거가 치러졌다. 그리고 우리는 특정 진영이 도덕적 우월감을 정치 슬로건화했을 때 벌어질 수 있는 가장 참담한 결과를 목격했다. 각 진영은 가능한 지지자의 총량을 동원했다. 우리를 지지하지 않으면 민주시민이 아니고 진심도 정의도 상식도 없는 자, 라는 식의 수사로 일관한 민주당과 극렬 지지층이 아직 표심을 결정하지 못한 중간층의 피로를 야기함으로써 대선 패배의 주요 요인이 되었다.
그것이 반복되고 있다. 촛불집회를 등에 업은 민주당의 장외투쟁이 소기의 성과를 얻는다고 가정해보자. 그 전략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이나 기타 야권 지지자들마저 울며 겨자 먹기로 민주당을 지지하고, 그래서 민주당이 지난 대선 직전의 역량과 지위를 어떻게든 끌어모아 확보하는 데 성공한다고 생각해보자. 그것이 민주당이라는 정당의 비전이 닿을 수 있는 최대치인가. 같은 전략으로 다시 지는 것?
시도 때도 없이 빼드는 칼에는 물리력은 있어도 정치력은 있을 수 없다. 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은 심각한 문제다. 남재준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은 적법한 절차를 거쳐 그에 합당한 책임과 처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타협과 합의라는 기본적 수준의 민주사회 룰을 무시하고, 정의와 상식이라는 말만 앞세워 절대악을 쳐부수자고 시끄럽게 규탄해야만 자기 존재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그러면서 정작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데는 게으른 정당과 그 지지자들은 촛불을 사유화하려는 행보를 그칠 필요가 있다.

@actormoon ‘민주당, 강경투쟁 지속 결정’ 응원합니다. 의원들께서 시민의 격려에서 큰 힘을 받는다 들었습니다. 시민과 ‘소통’하고 ‘참여 시민’과 손잡아야 민주 진영에 희망이 생깁니다. 이번 촛불 경험을 정당 혁신에 적극 반영하시기 바랍니다.</c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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