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폭염에 달궈진 도시는 해가 떨어져도 식을 줄 모른다. 서로를 향해 뿜어낸 에어컨 실외기의 후끈한 바람 탓에 밤에도 창문을 열기가 어렵다. 어찌하면 큰 품 들이지 않고 푹푹 찌는 밤을 벗어날 수 있을까.
‘등잔 밑’ 아니 아파트 단지 아래 답이 있다. 고층아파트 단지에서 불과 1㎞ 남짓 떨어진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대화동 ‘킨텍스 캠핑장’. 킨텍스 전시장 바로 뒤편에 자리한 이곳에는 텐트를 칠 수 있는 시민가족캠핑존 15면, 이른바 ‘차박’을 할 수 있는 오토캠핑존 25면, 캠핑카를 대여해주는 카라반존 36면 등 76면의 캠핑 공간이 준비돼 있다. 3만9천㎡(약 1만1800평)의 넓은 면적에 남녀 샤워장 2곳, 세척장 2곳, 음수대 2곳, 화장실과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도 갖췄다.
한밤 기온이 26도를 넘어 서울과 수도권이 21일째 열대야를 기록한 2024년 8월10일 밤 구영모(40)씨 가족이 이 캠핑장을 찾았다. 11살 딸, 8살·5살 아들을 둔 이 다둥이 가족은 카라반 예약이 꽉 차 가족캠핑존에 텐트를 쳤다.
삼겹살을 구워 저녁식사를 하는 이들에게 ‘도시 캠핑’에 대한 느낌을 묻자, 구씨는 “집에서 가까우면서 시설이 깨끗하고 좋아서 앞으로 또 올 것 같다”고 답한다. 이들은 이곳에서 차로 10여 분 거리의 주엽동 아파트에 산다. 맏딸 서연이 “집보다 시원하고, 감성이 있어 좋다”고 덧붙인다.
캠핑장 안쪽 한복판엔 모래가 깔린 놀이터가 있다. 낮게 뜬 초승달 아래서 아이들이 모래성을 쌓고 있다. 그 옆에서 아빠와 아들이 형광 셔틀콕으로 배드민턴을 친다. 빛이 나는 셔틀콕이어서 칠 때마다 파란 궤적이 밤하늘을 밝힌다. 역시 주엽동에서 왔다는 이 부자는 2021년 이사 온 뒤 벌써 열 몇 번째 이곳을 찾았다고 했다. 주로 봄가을에 오는 편인데, 이번엔 카라반 예약에 성공해 한여름 캠핑을 나섰다.
모래쌓기에 열중인 송다원(9)·예진(7) 오누이는 10여 명의 대가족이 함께 왔다. 친척들과 이들이 함께한 저녁 메뉴는 직접 만든 ‘파닭’이었다고 자랑한다.
한쪽에서 흥겨운 케이(K)팝 음악이 흘러나와 따라가봤다. 한 어린이가 아이돌 군무를 연상케 하는 절도에 ‘스왜그’까지 갖춘 춤을 추고 있다. 엄마는 스마트폰으로 아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고, 아빠는 미소를 머금은 입가에 조금 놀란 눈으로 아이를 바라본다.
2024년 들어 8월8일까지 전국 평균 열대야 일수는 13.2일로 평년(1991~2020년 평균) 같은 기간 열대야일(4.4일)의 꼭 3배다. 사상 최악의 폭염으로 기록된 2018년(11.6일)보다 올해가 더 많다. 기상청은 “8월19일까진 최고 체감온도가 35도까지 오르고 열대야가 반복될 것”으로 내다봤다.
우리가 편리함을 추구하며 뿜어낸 탄소의 역습으로 해마다 더 독해지는 날씨를 견뎌야 한다. 어차피 겪을 바에야 서연이처럼 “감성 있게”, 올림픽 챔피언 안세영처럼 “낭만 있게” 여름밤을 지새워볼까.
사진·글 이정우 사진가
*낯섦과 익숙함, 경험과 미지, 예측과 기억, 이 사이를 넘나들며 감각과 인식을 일깨우는 시각적 자극이 카메라를 들어 올립니다. 뉴스를 다루는 사진기자에서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변신한 이정우 사진가가 펼쳐놓는 프레임 안과 밖 이야기.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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