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상채 평화마을양조장 대표가 2026년 1월10일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눌노리 양조장에서 발효 중인 막걸리를 휘젓고 있다. 개성소주가 증류되는 소줏고리(왼쪽 옹기)에선 소주가 방울져 떨어지고 있다.
남북을 가로지른 군사분계선 턱밑에 자리한 평화마을에서 우리나라 3대 소주 중 하나로 꼽히는 개성소주가 복원되고 있다. 이곳에선 토종벼 붉은차나락으로 빚은 임진강쌀막걸리도 익어간다.
임진강과 맞닿은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눌노리에는 평화와 생태주의를 좇는 예술인·교사·농부 등이 공동체를 꾸린 평화마을이 있다. 마을 건립에 참여한 열네 가구 가운데 집을 지어 입주한 가구는 여섯 가구다. 이들이 마을의 경제적 자립을 도모하려 세운 ‘평화로가게’와 ‘평화마을양조장’이 운영 중이다.
마을에 들어서면 집집이 태양광 집전판이 지붕을 덮고 있다. 이 마을의 별난 점은 곳곳에 더 숨겨져 있다. 에너지 자립을 꿈꾸는 이곳의 집들은 지열로 냉난방을 한다. 땅속 150m에서 연중 15도 안팎으로 유지되는 지중열을 방바닥 온돌 배관과 연결해 순환하는 방식이다.
또 마을 한복판 땅속에 35t과 25t의 빗물을 담는 저류조 2개가 설치돼 있다. 이 저류조를 각 집으로 연결해 작물에 수분을 공급하고 화장실 등 식수 이외의 용도로 쓴다. 마을 곳곳에 놓인 2~3층의 타이어탑은 음식물 쓰레기 처리기다. 버린 음식물 위에 마른풀을 덮어 삭힌 뒤 거름으로 쓴다.
마을 남쪽 끝에는 역시 에너지 자립형 온실이 있다. 비닐 지붕은 한낮의 태양열로 공기를 데우고, 땅속 2.7m까지 내려간 주름관을 통해 온실 공기와 땅속 온기를 반대쪽으로 순환시킨다. 공기 순환용 팬을 돌리는 에너지만 일반 전기를 쓴다. 이 온실에서는 레몬과 무화과, 셀러리 등이 자란다.
마을 들머리에선 평화로가게가 내방객을 맞는다. 마을에서 3㎞ 떨어진 파주시 적성면 식현리에 땅을 빌려 일군 평화밭에서 키운 채소류와 과일, 화초, 유정란 등과 계약 재배 농가에서 생산한 고춧가루, 약된장, 콩 등을 판매하는 이곳에선 마을 체험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가게 맞은편 평화마을양조장에 들어서면 소주를 내리면서 퍼진 시큼한 향이 코끝을 파고든다. 우리 전통 3대 소주 중 안동소주와 제주 고소리술은 현존하지만, 개성소주는 맥이 끊겼다. 이 양조장을 운영하는 임상채(64) 대표는 전통 방식으로 개성소주를 만들려고 전남 곡성에 있는 명인 정희창 작가에게 의뢰해 소줏고리(증류식 소주를 빚기 위한 증류기) 여섯 세트를 제작했다.
고려시대 명주로 알려진 개성소주는 워낙 관련 문헌이 없어 양조 전문가나 개성 출신 인사들에게 구전으로 내려오는 전언을 바탕으로 재연하고 있다. 백미에 누룩을 넣어 발효한 뒤 증류하는 것과 백미에 수수 또는 도토리를 섞은 뒤 누룩으로 발효하는 것까지 세 종류의 개성소주를 만들고 있다.
임진강쌀막걸리의 주재료인 쌀은 임 대표가 하나뿐인 직원이자 아내인 부명미(61)씨와 함께 농사를 짓는다. 처음엔 평안남도 토종벼인 북흑조를 개성소주와 임진강쌀막걸리 재료로 썼지만 수급이 어려워 붉은차나락을 직접 재배하고 있다. 농약을 쓰지 않고 유기농으로 재배해 일반 벼 생산량의 3분의 1 정도를 거둔다. 이러다보니 완제품 가격도 다른 막걸리보다 비싼 편이다.
막걸리를 빚으려면 씻은 쌀을 증기로 찐 뒤 누룩과 섞어 사흘 정도 발효한다. 그 뒤 온도를 높여 효모 활동을 왕성하게 한다. 다시 온도를 낮춰 향을 살리며 숙성시킨다. 이를 채주기로 걸러 술지게미는 논에 거름으로 뿌리고 막걸리를 병에 담는다. 이 과정을 30일간 거친 일반 막걸리와 50일 동안 거친 고급 막걸리가 이곳에서 태어난다.
쌀 재배부터 양조, 포장, 판매까지 맡고 있는 임 대표에게 양조장 살림을 묻자 “손익분기는 넘겼다”며 웃는다. 이 마을에 살며 공동체를 이끌고 있는 정진화 (사)평화마을짓자 이사장은 2026년부터 3300평의 땅을 빌려 논농사를 짓는다. 그는 “뷰 중에 제일 아름다운 뷰가 ‘논 뷰’”라며 “찹쌀 농사를 잘 지어 양조장에 납품할 것”이라는 자급 계획을 밝혔다.
마을 주민이자 ‘임진강 시인’이라 불리는 전종호 시인은 ‘누룩’이란 시를 지어 양조장에 걸었다.
“청춘은 취하여 웃고 늙은 농부는 힘내어 일하고/ 철없는 시인은 사랑을 노래하다 울지도 모르는/ 몽롱의 씨앗을 심는 막걸리는 술술 익어가는데/ 내 속에는 불명의 밀사 같은 저 누룩 한 줌이 없어/ 이것저것 관찰하고 이리저리 고민해봐도/ 향내 나는 시 한 줄 풀풀 걸러내지 못하고 있구나”
사진·글 이정우 사진가
*낯섦과 익숙함, 경험과 미지, 예측과 기억, 이 사이를 넘나들며 감각과 인식을 일깨우는 시각적 자극이 카메라를 들어 올립니다. 뉴스를 다루는 사진기자에서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변신한 이정우 사진가가 펼쳐놓는 프레임 안과 밖 이야기. 격주 연재.

군사분계선과 10여㎞ 떨어진 평화마을 하늘 위로 새떼가 날아가고 있다.

정진화 평화마을짓자 이사장이 마을 온실에서 셀러리를 따 집으로 향하며 웃고 있다. 온실 공기와 땅속 열이 순환하도록 하는 주름관 세 개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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