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남대문시장, 얼지 않았네

당일배송 시대 한파 속 시장을 찾는 사람들… 명물 야채호떡부터 맵시 더하는 모자 사러 ‘발걸음’
등록 2026-02-05 21:57 수정 2026-02-09 08:03
모처럼 최저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간 2026년 1월15일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에서 한 상인이 모자를 써 보이고 있다.

모처럼 최저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간 2026년 1월15일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에서 한 상인이 모자를 써 보이고 있다.


2026년 새해 첫날부터 영하 10도 아래로 내려간 동장군이 612년 전통의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을 1월 내내 꽁꽁 얼렸다. 한낮 기온마저 영하 8도를 기록하며 뺨을 에는 칼바람이 분 1월21일 옥외 상점이 늘어선 시장통에는 고객의 발길이 끊겼다. 단지 따끈한 먹거리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과 시민들만이 남대문시장의 명물인 야채호떡 노점 앞 인도를 가득 메울 정도로 장사진을 이뤘다.

조선 태종 14년인 1414년 조정이 상인들에게 임대한 시전 형태로 출발한 남대문시장은, 1608년(선조 41년) 대동미·대동포를 출납하는 선혜청과 그 창고가 남창동(지금의 회현동)에 들어서며 지방 특산물을 사고파는 시장으로 커졌다. 1897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상설시장으로 자리를 잡은 뒤, 1964년 건물주와 상인들이 공동출자로 서울남대문시장주식회사를 세워 시장을 운영하고 있다. 옥외로 상점이 늘어선 본시장 외에 건물 안에 들어선 37개 상가까지 1만172곳에 달하는 상점이 시장을 이룬다.

모처럼 최저기온이 영상을 기록한 1월15일 시장은 활기를 되찾았다. 털모자, 비니 등 다양한 모자를 파는 상점 앞에 손님들이 모여들자 신이 난 상인은 직접 모자를 써 보이며 맵시를 뽐낸다. 20년째 남대문시장을 지키고 있는 이 상인은 “모자라는 품목 특성 탓인지 외국 손님은 거의 없고 국내 손님이 주를 이룬다”고 귀띔한다. “올겨울 너무 추워 시장을 찾는 유동인구 자체가 없다. 모두 명동으로 갔나”라며 애꿎은 이웃 동네를 탓한다.

맞은편에서 10년째 가방을 파는 상인은 “2025년 가을에는 외국인 손님이 많이 찾았는데, 올겨울엔 손님이 크게 줄었다”면서도 가게 앞을 지키고 섰다. “가방을 찾는 고객은 국내외 반반인데, 외국인들은 캐리어를 많이 사간다”고 전한다.

서울시관광협회 소속으로 영어 안내를 하는 성태원(31)씨는 수은주가 영하 14도까지 내려간 1월21일 남대문시장 복판 네거리를 지키고 섰다. 3년째 이 일을 하는 성씨는 많을 때는 하루 700~800명, 적으면 200~300명의 문의를 응대한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근무하는 성씨는 춥지 않냐는 물음에 “한 시간씩 실내외 근무를 교대해 할 만하다”며 웃는다. “외국인은 주로 관광명소에 대해 묻고, 내국인은 맛집 위치를 묻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매서운 한파가 얼린 시장 한편에 정말 얼어붙은 듯 앉은 이가 있다. 그는 두꺼운 패딩에 챙 넓은 모자를 눌러쓰고 목도리와 무릎덮개로 몸을 감쌌다. 미국 달러, 일본 엔, 중국 위안, 유럽 유로를 우리돈으로 바꿔주는 환전상이다. 멈춰 서는 이 없이 무심히 지나치는 발길 사이로 ‘환전’이란 글귀가 고객에게 손짓하듯 빛을 튕겨낸다.

그래도 2026년 1월 추위는 과거에 견주면 덜 추운 편이다. 기상관측이 시작된 1907년 이래 가장 추웠던 1917년은 서울 1월 평균 최저기온이 영하 14도였다. 1931년 1월11일에는 영하 22.5도의 한파가 시장을 얼렸다. 서울 공식 최저기온은 1927년 12월31일 기록한 영하 23.1도다. 기상관측 이전 500년 남짓 동안 남대문시장 상인들은 더 지독한 한파 속에도 요즘보다 훨씬 헐한 차림새로 정월을 견뎌냈을 게다.

오전에 주문하면 오후에 집 앞에 물건을 놓아주는 당일배송 시대임에도 맹추위를 뚫고 ‘입어보고 써보고 만져보고’ 값을 치르려는 손님이 상인들은 반갑기만 하다. 상인들의 입가에 입김과 함께 웃음도 비어져 나온다.

 

사진·글 이정우 사진가

 

*낯섦과 익숙함, 경험과 미지, 예측과 기억, 이 사이를 넘나들며 감각과 인식을 일깨우는 시각적 자극이 카메라를 들어 올립니다. 뉴스를 다루는 사진기자에서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변신한 이정우 사진가가 펼쳐놓는 프레임 안과 밖 이야기. 격주 연재.

 

서울의 최저기온이 영하 12도까지 떨어진 1월21일 서울 남대문시장 들머리 야채호떡 노점 앞에 호떡을 사려는 외국인 관광객과 시민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서울의 최저기온이 영하 12도까지 떨어진 1월21일 서울 남대문시장 들머리 야채호떡 노점 앞에 호떡을 사려는 외국인 관광객과 시민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서울 최저기온이 영하 13도까지 떨어진 1월22일 무릎덮개 등으로 무장한 환전상 앞을 시민들이 지나치고 있다.

서울 최저기온이 영하 13도까지 떨어진 1월22일 무릎덮개 등으로 무장한 환전상 앞을 시민들이 지나치고 있다.


 

영어 관광 안내를 담당한 성태원(빨간 옷)씨가 1월21일 남대문시장에서 시민의 물음에 답하고 있다.

영어 관광 안내를 담당한 성태원(빨간 옷)씨가 1월21일 남대문시장에서 시민의 물음에 답하고 있다.


 

한겨레 저널리즘
응원으로 지켜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