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대처’라는 유령과의 싸움

대처 이후 탐욕 칭송받고 경쟁과 효율에 기반한 금융업 중심 된 영국
기품 있고 건강한 사회를 위해 우리 안의 대처 유령을 정면 돌파해야
등록 2013-04-26 21:55 수정 2020-05-03 04:27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노동 천대와 노조 불신이 만연해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노조란 철밥통, 기득권, 반대를 위한 반대, 이념 투쟁, 기업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존재로 각인돼 있기 때문이다. 노조에 대한 편견의 배후에는 ‘노동은 능력 없는 사람의 몫이고 경제적 가치는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려는 유능한 기업(가)에 의해 창출된다’는 믿음이 깔려 있다. 과도한 적자를 이유로 진주의료원- 나는 진주에 살고 있다- 을 폐업해야겠다던 경상남도 지사가 여론이 악화되자 터무니없게도 폐업의 명분으로 ‘귀족 강성노조’를 끌어들인 것도 이 때문에 가능했을 게다.
노동에 대한 사회 전체 차원의 존중
그러나 시곗바늘을 한껏 뒤로 돌려보면, 노동이 신성한 것으로 존중받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학생이던 1980년대는 ‘광장’으로 뛰어나가 혁명으로 정의롭지 못한 세상을 바꾸는 길과 연인과 함께 ‘밀실’에서 사랑을 나누며 폭력적인 세상으로부터 도피하는 길 사이에 양자택일이 강요되던 경직된 시대였다. 또한 세상을 바꾸려는 ‘운동’은 뜨거운 가슴을 지닌 청년이라면 마땅히 받아야 할 영광의 쓴잔으로, ‘밥벌이’를 위해 기성 질서에 순응하는 것은 비루한 선택으로 폄하되던 시대였다. 이 양자택일의 시대에 노동은 가치의 유일한 원천으로 신성시됐고, 자본은 노동이 만들어낸 가치를 착취하는 악한 존재로 적대시됐다. 어떤 이들은 노동이 정당한 몫을 얻어내는 세상을 위해, 또 어떤 이들은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을 위해 노동현장으로 뛰어들어 노조를 만들었다. ‘운동’의 길을 선택하지 않은 사람이더라도 ‘노동의 유토피아’를 위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려는 이들에게 채무감으로 고개를 숙이던 시절이었다. 청년들의 진지한 삶의 목표가 좋은 직장에 취직하거나 부자가 되는 것이고, 많은 젊은이들이 노조에 무관심하거나 분개하는 지금 시대의 눈으로 보면 너무도 낯선 풍경이다.
노동이 주인이 되지 못한 우리와 달리 노동에 대한 사회 전체 차원의 존중을 통해 선진국의 길에 들어선 나라들도 있었다. 가령 과거 영국은 광산·철강·조선 등 제조업을 중심으로 경제가 발전했는데, 많은 영국인들이 광산이나 공장에서 숙련기술을 발휘하며 괜찮은 보수를 받았고 고용 안정성도 대단히 높았다. 노동자는 노조를 통해 소속감과 자부심을 유지했고, 집단적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이런 사정은 독일도 비슷했다. 독일에서는 노동자 대표가 주요 기업의 이사회에 정례적으로 참여할 정도로 노동의 힘이 셌고, 노동의 경영 참여는 세계 최고 수준의 숙련기술과 더불어 경쟁력의 원천이 되었다. 그런데 영국은 새로운 사회를 꿈꾼 1980년대의 한국 젊은이들로부터 진지한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들의 이상에 근접한 나라였다. 영국에서는 20세기 초반부터 복지국가를 향한 체계적인 시도가 본격적으로 이뤄졌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집권에 성공한 노동당 정부는 의료·주택·교육·연금·실업급여 관련 사회안전망을 ‘요람에서 무덤까지’ 구축했다. 노동당 정권은 철강·광산·철도·석유·통신 등 주요 산업을 국유화했다. 나아가 완전고용을 중요한 정책목표로 설정하고 경제 곳곳에 개입했다. 사회주의적 성격이 다분히 가미된 이런 혼합경제 모델은 보수당의 집권에도 흔들리지 않은 채 전후 30년 이상 계속 유지됐다. 이 과정에서 노동이 중요하고 정부는 모든 국민의 경제적 안녕을 보살필 책무가 있다는 가치관이 영국인들 삶 속에 철옹성처럼 뿌리를 내렸다.
대처 가치관 내면화한 많은 유권자들
하지만 우리 세대의 젊은이들이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바로 그 순간, 영국에서는 건곤일척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것을 주도한 사람이 바로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마거릿 대처였다. 그녀는 노동당의 무능과 강성노조의 과격한 투쟁- 당시 영국의 노조는 진주의료원 노조와 달리 진짜 강성노조였다- 에 대한 국민적 불만에 힘입어 1979년 집권하는 데 성공했다. 집권과 함께 물가를 잡겠다며 정부 지출을 대폭 삭감하는 과정에서 대량실업 사태가 일어나 정권을 내줄 처지에 내몰렸지만, 포클랜드전쟁에서의 승리로 기사회생할 수 있었고 재선에 성공한다. 대처는 이후 광산의 폐쇄와 민영화에 맞서 파업을 벌인 광부들과 전면전을 불사했고, 결국 전국광산노조의 파업자금이 고갈되면서 파업은 종결됐다. 이후에도 노동조합원만의 고용을 법으로 강제한 ‘클로즈드숍’(Closed Shop) 조항을 철폐하고, 동조파업이나 노조의 실력 행사를 불법화해 전투적 노조를 무력화하는 데 성공한다. 노동계급에게는 게으르고 무책임하며 사회불만 세력이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졌고, 망치 소리로 우렁찼던 지역들은 실업과 빈곤 그리고 좌절 속에서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국영기업을 민영화하고 노조를 분쇄한 대처의 처방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대처가 노조와의 싸움을 선택한 것은 표를 얻으려는 정치꾼의 책략이 아니라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대중의 생각과 세상을 바꾸려는 불굴의 의지와 확신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그녀가 꿈꾼 세상은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려는 강한 개인들이 절제의 미덕 위에 규제받지 않는 자유로운 장터에서 리스크에 과감히 맞서 성공을 거두고 그런 개인들의 성공이 모여 전체의 번영이 달성되는 ‘자본의 유토피아’였다. 그렇다면 대처의 이상은 성공했는가? 대처가 자신이 바라는 방향으로 세상을 바꾸는 데 성공한 것은 분명하다. 대처를 기점으로 이전의 영국과 이후의 영국은 철저히 다른 사회가 되었다. 노동이 존중받고 사회적 신뢰와 공동체에 기반을 둔 제조업 중심의 나라는 사라지고, 탐욕이 칭송받고 영리기업이 지배하며 경쟁과 효율에 기반한 금융업 중심의 나라가 등장했다.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 정부가 정권을 되찾은 뒤 과거 혼합경제의 이상을 복원하는 대신 ‘착한’ 대처의 길을 걸었던 것은 많은 유권자들이 대처의 가치관을 내면화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대처가 만든 세상은 유토피아보다 디스토피아에 훨씬 가깝다. 경제를 살리겠다며 집권했지만, 실업률은 오히려 훨씬 높아졌고 현재까지도 만성적 고실업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빈곤층의 비중이 크게 늘었고, 소득 격차 또한 심해져 1990년대 중반부터는 미국과 더불어 선진국 중 양극화가 가장 심한 나라가 되었다. ‘노력한 만큼 기회가 제공된다’는 구호도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대처 집권 이후 계층 간 사회적 이동성이 크게 떨어져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출신 배경을 뛰어넘어 잠재력을 발휘하기란 과거보다 훨씬 어려워졌다. 따라서 공동체의 연대에 기반했던 서로에 대한 신뢰도 사라지고 있다. 대처의 전기작가 휴고 영은 대처가 위대한 정치가이지만 그녀가 남긴 유산의 색깔은 어둡다며 무엇보다 영국인들의 기질이 나쁜 방향으로 바뀌었다고 개탄한다. 영국인들은 언제부턴가 길을 가는 데 방해되는 사람을 밀쳐버리고, 경쟁자의 사업에 무례하게 끼어들며, 상대팀 축구팬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부를 유일한 미덕의 기준으로 우상화하는 등 함께하기에 불쾌한 사람들로 변했다는 것이다.
전세계 새로운 규범이던 ‘대처주의’
안타깝게도 세계화와 무한경쟁의 물결 속에서 대처주의는 전세계의 새로운 규범이 되었고, 우리도 영국인 못지않게 대처와 같은 방식으로 인간과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대처는 “사회 따위란 존재하지 않고 단지 개인과 가족이 있을 뿐”이라고 강변했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이 속한 집단 속에서 정체성을 확립하고, 집단적 규범의 영향 아래 삶의 자세를 세우며,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행복과 불행을 느끼는 존재다. 기품 있고 건강한 사회 없이는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것, 지속 가능한 번영도 불가능하다. 사람들이 대처의 뒤틀린 가치관을 공유하게 된 것은 그녀의 생각이 설득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지역공동체와 노조의 와해로 건강한 사회의 기반이 무너짐에 따라 그들의 가치관이나 태도도 함께 타락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대처가 목소리를 높이는 지금, 역사의 시곗바늘을 40년 전으로 되돌리는 일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겠지만, 활력 넘치면서 기품 있는 건강한 사회를 새롭게 건설하는 것은 결코 불가능한 꿈이 아니다. 그 첫걸음은 우리 안에 깃든 대처의 유령을 정면 돌파하는 일에서 시작돼야 할 것이다.
경남과학기술대 산업경제학과 교수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