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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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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정리’와 ‘칠판경제학’

외부불경제에 면죄부 준 ‘코스 정리’로 보수주의 상징이던 로널드 코스
정부 역할 중요시하며 시카고학파 ‘칠판 경제학’ 비판한 본모습 가려져
등록 2013-09-27 15:37 수정 2020-05-03 04:27

경제학에는 ‘외부불경제’(External Diseconomy)라는 용어가 있다. 기업이 유용한 재화나 서비스를 만들어 사회에 기여도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는 상황을 뜻한다. 외부불경제가 어떠한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는지, 더 많은 이윤을 거두기 위한 기업의 탐욕이 사태를 어떻게 악화시키는지, 외부불경제를 일으킨 쪽과 피해 당사자들 사이의 분쟁은 어떻게 전개되는지는,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그럼에도 이 문제와 관련해 결정권을 쥐고 있는 정치인, 규제 당국, 법관들의 경우에는 대기업에 대한 일체의 간섭을 없애고 자유시장의 자기교정 능력에 맡겨야 한다는 쪽이 훨씬 더 많다.

자신의 ‘코스 정리’에 반론 낸 코스

이와 관련해 로널드 코스라는 비범한 경제학자의 학문적 삶에 주목해보려고 한다. 1910년생인 그는 영국에서 경제학을 공부했고, 불혹의 나이에 미국으로 건너갔으며, 오십이 넘어 미국 시카고대학으로 연구의 터전을 옮긴 뒤에는 우파의 아이콘으로 활용된 인물이다. 그가 1960년에 발표한 ‘사회적 비용의 문제’란 논문에는 거래비용이 없다면 두 당사자들 사이의 협상을 통해 양쪽 모두에 이익이 되는 해법을 찾아낼 수 있다는 주장이 있다. 그리고 소유권이 어느 쪽에 부여됐는지는, 곧 피해에 대한 보상을 어느 쪽에서 지불하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도발적인 주장도 있다. 이러한 내용은 자유시장 이데올로기의 확산을 꿈꿨던 시카고대학 경제학과의 조지 스티글러의 주목을 받았고, 그는 이들에 ‘코스 정리’라는 이름을 붙인다. 이를 계기로 외부불경제의 책임을 누구에게 묻느냐는 중요하지 않으며 정부 개입은 나쁘다는 주장이 과학적 진리의 왕관을 두르게 되었다. 정책결정자들은 이런 자유방임주의를 경제학적으로 보편타당한 명제로 받아들여 자신들의 기업편향성을 정당화할 수 있게 되었다.

지난해 9월 시멘트 공장이 있는 지역 주민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시멘트 산업의 공해 피해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기업이 유발하는 이같은 환경오염은 대표적인 외부불경제 사례다. 아래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널드 코스 미국 시카고대학 교수.한겨레 자료

지난해 9월 시멘트 공장이 있는 지역 주민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시멘트 산업의 공해 피해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기업이 유발하는 이같은 환경오염은 대표적인 외부불경제 사례다. 아래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널드 코스 미국 시카고대학 교수.한겨레 자료

그런데 코스 정리에 대해서는 반론도 많다. 우선, 이것은 ‘정리’가 아니라는 평가가 있다. 어떤 명제가 ‘정리’(Theorem)가 되려면 가정과 결론 그리고 이를 연결하는 타당한 논증이 있어야 하는데, 코스 정리에는 이 요소들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코스 정리는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명제를 외부불경제에 적용했으므로 새로운 주장이 아니라는 비판도 있다. 그런데 가장 눈에 띄는 반론을 낸 것은 코스 자신이었다. 코스 정리가 1960년 논문의 주장을 요약한 것은 맞지만, 이는 거래비용이 없는 경우를 상정해서 이루어진 논문의 앞쪽 주장만 포함했기에 절반의 진의만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거래비용이 없는 상황을 상정한 이유는 세금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던 전통적인 접근법을 비판하기 위함이었고, 논문의 진정한 강조점은 다른 데 있었다는 게 코스 자신의 회고다. 진짜 현실에는 거래비용이 존재하며, 경제학은 이 거래비용의 문제와 정면 대결해야 한다는 믿음이 바로 그것이다.

코스는 우리가 거래비용이 존재하는 진짜 세상을 고려한다면, 이곳에서는 법률 시스템의 중요성이 아주 크다는 점을 강조한다. 시장에서는 물리적 재화는 물론 특정한 행동을 행할 권리도 거래가 된다. 이때 그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 법률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또한 가장 생산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가장 바람직하게 사용할 사람들에게 그 권리를 부여하는 일이 중요한 과제가 된다. 이 또한 법률과 정부의 몫이다. 결국 경제학자로서 코스가 도달했던 결론은 외부불경제 문제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손을 떼야 한다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정부가 소유권에 제대로 개입해야 한다는 깨달음이 그의 결론이었다. 이 점에서 코스는 통념과 달리 시카고학파나 하이에크와는 사뭇 다른 경제학자였다.

경제학이 이념 선전 수단 되는 것 반대

1937년에 발표된 ‘기업의 본질’을 보면, 그가 시장을 무비판적으로 칭송한 이데올로그가 아니라 오히려 시장의 한계에 주목한 학자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학창 시절 그는 가격기구가 자원 배분 문제를 해결해줌에도 불구하고 왜 기업이 존재하는지에 의문을 품었다. 또한 계획경제란 이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경제학자들의 주장과 달리 소련에 계획경제가 엄연히 실존하던 현실에 주목했고, 서방세계의 거대 기업도 일종의 계획경제라는 생각을 갖기도 했다. 코스는 이 문제들에 답하기 위해 연구를 거듭했고, 결국 시장에서 가격기구를 사용해 거래하는 데는 비용이 들어간다는 발견에서 해답의 실마리를 얻게 된다. 시장에서 거래를 하려면 일단 제시된 가격이 얼마인지를 찾아내야 하고, 마땅한 상대방을 찾게 되면 협상을 하고 계약도 체결해야 한다. 그리고 계약 내용이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 수시로 확인하고, 분쟁에 대비해 중재해줄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코스는 이들을 ‘거래비용’이라고 불렀다. 거래비용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시장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의미하며, 기업은 바로 이 때문에 존재하게 된다. 당시를 회고하는 코스의 노벨상 수상 연설을 들어보자. “당시 내 나이는 스물한 살이었습니다. 태양은 계속해서 반짝이고 있었지요. 나는 20대 초반의 아이디어가 60년이 지난 뒤 노벨상 수상이라는 방식으로 인정받게 되리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팔십이 되어 20대에 했던 작업으로 칭송을 받는다는 것은 참으로 이채로운 경험입니다.”

예전의 미국은 대기업의 권력을 적절히 견제하던 사회였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에 걸쳐 미국 사회는 과거에 비해 더 거칠고 불평등하며 강자의 횡포가 더 큰 쪽으로 방향을 틀게 되었다. 코스에게 노벨상의 영광을 안겨준 두 편의 논문과 노벨상 수상 연설 그리고 이후의 인터뷰 등을 종합해보면, 이 과정을 주도한 사람들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코스의 이론을 어떻게 왜곡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들은 코스의 전체 논증에서 불온한 부분을 의도적으로 삭제해 그의 진의와 달라진 메시지를 코스의 이름으로 세상에 유포했던 것이다. 코스가 정부 규제를 본능적으로 싫어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경제학자로서의 코스는 경제학이 이념의 선전 수단으로 악용되거나 추상적 이론의 가상 세계에 머무르는 일에 대해서는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그가 허구적 세상에 관한 수식과 그림으로 빼곡한 ‘칠판’으로는 자유방임의 우월성이 결코 증명될 수 없다며 자신을 보수주의의 아이콘으로 내세웠던 시카고학파의 ‘칠판 경제학’(Blackboard Economics)을 정면으로 비판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때 코스가 시카고대학에서 재직한 곳이 경제학과가 아니라 법률대학원인 점 또한 ‘정통’ 시카고학파와 거리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냉정하게 보자면 이 칠판 경제학에는 ‘코스 정리’도 포함돼야 한다. 거래비용이 시장의 숙명적인 조건이자 시장경제 속에 다양한 제도들을 출현시키는 본질적인 요인이라는 코스 자신의 통찰에 기댄다면, 코스 정리야말로 거래비용이 없는 허구적 세상을 설정해 정부의 개입 없이 달성되는 최상의 상태를 칭송하고 있다는 점에서 칠판 경제학의 속성을 오롯이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칠판 경제학’에 대한 비판 유산

코스는 바로 얼마 전 102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지난해에도 제자와 함께 중국 경제에 관한 책을 출간하는 등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학자이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그가 만년에 몰두한 과업은 칠판 경제학자들로부터 경제학을 구하는 일이었다. 코스가 우리에게 남긴 진정한 유산은 ‘코스 정리’가 아니라 ‘거래비용’ 개념 속에 녹아 있는 ‘칠판 경제학’에 대한 비판적 태도일 터이다.

박종현 경남과학기술대 산업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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