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념(Conventional wisdom)이란 숨겨진 진실을 드러내거나 세상을 살아가는 데 유용한 지침이라고 널리 인정된 익숙한 상식들이다. 당대 가장 대중적인 경제학자였던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교수는 때론 이 통념이 현실의 모순을 은폐하고 기득권 세력의 이익을 옹호하는 낡은 이념으로 전락할 수 있음을 경고한 바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계속 맹위를 떨치고 있는 두 통념은 어떨까? ‘소득불평등은 경제구조의 문제이므로 여기에 정치 논리가 개입하면 상황은 악화될 수밖에 없다’는 상식과 ‘경제 문제는 진보적 정당보다는 보수적 정당이 더 잘 다루므로 일자리를 늘리고 재정적자를 줄이려면 보수적 정당을 선택하는 게 맞다’는 상식 말이다.
자신의 삶 개선할 선택지 스스로 포기
미국에선 경제와 정치, 선거의 관계를 다양한 통계자료를 동원해 구체적으로 해명하려는 시도가 아주 많다. 대통령이 어느 정당 소속인가에 따라 소득분배가 크게 달라졌다는 래리 바텔스의 연구도 그중 하나다(, 21세기북스). 그에 따르면 소득불평등은 세계화나 기술변화 등으로 인해 1980년대를 전후로 심화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장기적 추세와는 별개로 민주당 정권 때는 불평등이 줄어들고 공화당 정권 때는 불평등이 다시 늘어나는 규칙성도 관찰된다. 이는 정치와 정책에 따라 소득불평등 추세가 반전되거나 약화될 수 있음을 뜻한다. 1948년부터 2005년까지를 대상으로 할 때, 모든 계층의 사람들은 민주당 집권기에 소득이 더 늘었는데, 하위 계층으로 갈수록 그 증가폭이 컸다. 민주당 대통령일 때, 상위 5%의 소득은 연평균 0.22% 더 늘어났던 반면 하위 20%의 소득은 무려 2.21%나 더 늘어났다.
이러한 연구는 엄청난 정치적 파장을 낳을 수도 있기에 분석 기법의 타당성을 놓고 반박 논문이 발표되기도 했다. 가령 민주당 소속 대통령은 경기가 좋을 때 취임했던 반면 공화당 소속 대통령은 경기가 나쁠 때 취임했던 경우가 많았다는 상황적 요인을 고려하면, 민주당 집권기의 비교우위는 사라질 수도 있다는 비판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저명한 경제학자인 앨런 블라인더와 마크 왓슨이 좀더 정교하고도 포괄적인 분석을 통해 민주당에 훨씬 더 우호적인 결과를 내놓았다. 이들의 연구를 보면, 1947년부터 2013년까지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민주당 대통령 때는 4.35%, 공화당 대통령 때는 2.54%였다. 그리고 고용·주가·실질임금·노동생산성 등 여타 지표들에서도 민주당이 공화당에 비해 확실한 우위를 보였으며, 재정적자 또한 민주당 때 더 적었다.
그러므로 ‘소득불평등은 정치와 무관하다’거나 ‘경제는 기업친화적이고 부자 중심의 보수 정당이 더 잘 운영한다’는 통념은 진실이 아니라 미신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이 거짓 신화가 사람들의 마음속에 진실처럼 자리잡으면 ‘누구에게 투표해도 내 삶은 그대로’라는 확신 위에 자신의 삶을 개선할 선택지를 스스로 포기하게 된다. 또한 바로 그 행위가 잘못된 확신을 한층 강화하는 웃지 못할 희비극도 연출된다. 따라서 정당 간에 집권 기간 동안의 경제 성적표 차이가 현저하다는 점을 확실히 인식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우리의 경우 이러한 연구는 아직 부족하지만 미국과 유사한 흐름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정당 간의 성과 차이는 정책적 우선순위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고, 두 나라의 정당들은 보수와 진보별로 크게 다르지 않은 정책적 선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정책적 우선순위의 차이와 그에 따른 성과의 차이는 바텔스에 의해 강조된 바 있다. 과거 민주당 정권은 중산층과 서민의 고용에, 공화당 정권은 물가 안정에 더 높은 우선순위를 부여했다. 이러한 차이가 각각 확장정책, 중산층 및 서민 감세정책과 긴축정책, 복지 예산 축소 등으로 표출되었는데, 전자의 정책이 더 높은 경제적 성과를 발휘할 수 있었다는 게다. 민주당 정권은 1980년대 이후부터는 금융시장과 중앙은행의 발언권이 높아지면서 확장정책을 통해 고용을 늘리기 어렵게 됨에 따라 부자 증세와 복지 지출 증대 그리고 최저임금 인상 등을 통해 중산층과 서민의 구매력을 유지하는 정책을 펼침으로써 공화당 정권보다 우월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는 평가도 추가된다.
80년대 이래 공화당이 선전했던 이유는
반면 블라인더와 왓슨은 민주당의 높은 성과가 운 때문일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고 본다. 이들에 따르면, 민주당 시절에는 유가 충격이 상대적으로 덜했던 반면 생산성이 더 많이 올랐고, 소비자들의 기대심리도 더 낙관적이었는데, 이들 요인을 다 합하면 양당 간 성장률 격차의 46~62%가 설명된다. 이때 저자들이 유가 충격, 생산성, 소비자 기대심리의 차이가 공화당의 호전적 외교정책, 민주당의 경쟁촉진·규제강화·증세 정책 같은 양당의 근본적 차이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는 건 아니다. 다만 이를 확실히 입증할 방법을 아직 확보하지 못했기에 단언할 수 없다는 게다.
그렇다면 민주당이 공화당보다 경제를 잘 이끌었음에도 1980년대 이래 공화당이 대통령 선거에서 선전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미국과 정치적 상황이 그리 다르지 않은 우리에게도 타산지석이 될 질문이다. 우선 역사학을 전공한 토머스 프랭크는 민주당이 대기업과 전문적 종사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 노동계급의 이익을 소홀히 했으며, 공화당이 그 공백을 파고들어 백인 노동자들로 하여금 계급적 이해관계보다는 낙태·동성애·총기·사유재산권·자유와 같은 문화적·이데올로기적 사안에 관심을 더 기울이도록 설득하는 데 성공한 결과라고 주장한다(, 갈라파고스).
반면 정치학자인 래리 바텔스는 백인 저소득층의 경우 민주당의 주요한 지지 기반으로 여전히 남아 있다고 반박하면서, 전체 유권자들이 경제 문제를 고려하는 과정에서 비합리적 판단이 개입돼 경제적 이익에 반하는 투표가 행해졌다고 본다. 민주당 대통령들은 집권 초에 경제를 개선했던 반면 공화당 대통령들은 임기 말에 고소득층의 소득을 늘리는 방식으로 경기를 부양했는데, 사람들은 투표가 임박한 시점의 경제 상황을, 그것도 부자의 경제 상황에 감정이입을 하면서 후보를 선택하기 때문에 공화당에 유리한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공공부문과 유색인종을 ‘뜯어가는 사람들’로, 나머지를 ‘빼앗기는 사람들’로 색칠한 보수 진영의 분열적 경제 담론 또한 작은 정부와 감세의 이데올로기를 효과적으로 전파함으로써 공화당의 승리를 가능케 한 요인으로 거론된다. 하지만 심리학자인 조너선 하이트는 이들과는 상이한 진단을 내린다. 백인 노동계급이 레이건이나 부시에게 표를 준 이유는 증오와 분노를 조장하는 우파의 선전에 넘어가서도, 자신도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백일몽에 빠져서도 아니며, 공화당은 애국, 사회질서, 가족애, 개인의 책임, 자유와 같은 도덕적 가치를 제공했기에 표를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 큰 영향
그렇다면 사람들이 자신의 진정한 이익에 따라 대표자를 선택하도록 할 해법은 무엇일까? 대기업 규제와 부자 증세를 한층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보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자, 중도층을 새롭게 끌어들일 수 있도록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신당을 창당하자, 보수주의와의 가치 전쟁에 적극 임하자 등 여러 목소리가 있다. 이 중 어느 제안이 더 유효한지, 여러 제안들 사이의 상호관계가 어떠한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 큰 영향을 받는데, 그 정도는 소득수준에 반비례한다”거나 “집권세력이 정부의 공적 역할을 얼마나 신뢰하고 중산층과 서민의 권리를 보호하려는 진정성을 얼마나 갖는가에 따라 경제 전반의 성과는 엄청나게 달라진다”는 학계의 연구 결과가 과거의 낡은 통념을 대신해 새로운 통념으로 자리잡는 게 첫걸음이 되어야 함은 분명해 보인다.
박종현 경남과학기술대 산업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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