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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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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은 끝났다

금융시장 효율성 옹호한 미국 시카고대학 유진 파마와 이를 논박한 예일대학 로버트 실러 교수의 노벨경제학상 공동 수상으로 금융시장 효율성 논쟁 재점화돼… 역사적 경험 고려하면 금융시장 비효율성 이미 판명
등록 2013-11-09 11:29 수정 2020-05-03 04:27

최근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올해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미국 시카고대학의 유진 파마와 라스 피터 핸슨 교수 그리고 예일대학의 로버트 실러 교수를 선정했다. 자산가격에 대한 경험적 분석을 발전시켰다는 것이 선정 이유였다. 그런데 파마는 금융시장의 효율성을 옹호하는 데 평생을 바쳤던 학자인 반면, 실러는 파마의 이론이 틀렸음을 입증하는 데 앞장섰던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처럼 상반된 인물들의 공동 수상과 관련해, 금융시장이 효율적인가를 둘러싼 오랜 논쟁이 아직 종지부를 찍지 않았음을 의미한다는 의견들이 개진되었다. 그러나 금융시장의 효율성을 둘러싼 그동안의 논의를 살펴보고 금융시장의 역사적 경험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금융시장이 효율적이지 않다는 점은 이미 분명해졌다고 봐야 한다.

주식투자 기법 허구성 드러낸 파마

금융시장이 효율적이라는 주장은 파마에 의해 본격적으로 제시되었다. 그는 특히 주식시장을 대상으로 다음과 같이 가정을 했다. 사람들은 배당을 기대하고 주식시장에 들어온다. 그곳에는 여러 기업의 미래 상황과 그에 따른 배당 흐름을 예상하는 데 필요한 모든 정보가 있다. 사람들은 제공된 정보를 가지고 해당 기업이 사업을 얼마나 잘하고 이익을 얼마나 남길 것이며 배당을 얼마나 줄 수 있을지를 계산해내고 이에 근거해 더 큰 배당을 제공할 주식을 사들인다. 요컨대 이들은 합리적인 계산기계인 셈이다. 이러한 가정이 충족되면, 주가는 기업의 미래 배당 흐름에 관한 모든 정보를 신속하고도 정확하게 반영함으로써 기업의 진정한 가치- 재무경제학자들은 이를 ‘펀더멘털’이라 부른다- 와 일치하게 된다. 파마는 이러한 세상에 ‘효율시장이론’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런데 이처럼 주가가 모든 정보를 완벽하게 반영하는 상황에서는 개별 투자자가 ‘시장을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재의 주가에 이용 가능한 모든 정보가 이미 반영돼 있다면, 앞으로의 주가는 새롭게 출현한 정보만을 반영하며 무작위로 움직일 텐데, 이 경우 미래의 주가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파마의 이론은 널리 이용되던 주식투자 기법들의 허구성을 드러내주는 귀중한 조언으로 여겨졌다. 전통적인 주식투자 기법에는 크게 기술적 분석과 기본적 분석이 있다. ‘기술적 분석’은 주가가 상승하는 흐름을 타면 한동안 올라가는 추세를 보이므로 주가가 올라갈 때 주식을 매수하는 전략을 권유한다. 반면 ‘기본적 분석’은 기업의 재무제표 등에 대한 분석을 통해 저평가된 주식을 찾아내 매수한 뒤 주가가 가치를 결국 반영하게 될 때까지 인내하는 전략을 제안한다. 그런데 주가가 무작위로 움직인다면 추세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므로 기술적 분석은 의미를 잃는다. 그리고 주가가 기업에 관한 정보를 즉각 반영한다면, 저평가된 주식이란 존재할 수 없고 가치투자 역시 불가능하게 된다. 상황이 이렇다면, 최선의 선택은 개별 주식이 아니라 시장 전체에 판돈을 거는 투자, 곧 인덱스펀드 투자가 된다.
그러나 파마의 주장은 이론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문제가 많다. 대표적인 비판은 이번에 파마와 함께 노벨상을 공동으로 수상한 실러로부터 제기되었다. 실러는 주가와 배당 흐름의 역사적 추이에 대한 검토를 통해 주가가 배당 흐름에 비해 변동성이 훨씬 높았음을 보였는데, 이는 주가가 기업에 관한 정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시장을 이기는 것’이 가능한데, 이는 역설적이게도 파마 자신의 이후 연구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그는 1990년대 들어 케네스 프렌치와의 공동연구를 통해 시가총액이 적은 소형주일수록, 주가순자산비율 같은 지표로 판단했을 때 저평가된 가치주일수록 장기적으로 높은 성과를 기록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는 이러한 현상이 주식들 사이의 위험도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지 주가가 정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결과는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이에 동의하는 학자는 그리 많지 않다.

실러, 금융시장의 거품 문제 집중 제기

그렇다면 주가가 높은 변동성을 보이고 기업의 진정한 가치를 반영하지 못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금융시장과 인간에 대한 파마의 가정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시장에 기업에 관한 모든 정보가 있다는 설명은 현실과 거리가 멀다. 이 정보들 중에는 가짜 정보도 적지 않고, 옥석을 가려내는 일 또한 쉽지 않다. 가격이 오르면 수요가 줄고 가격이 내리면 수요가 늘어나는 통상의 시장과 달리, 금융시장에서는 가격 상승이 수요를 오히려 늘리고 이것이 추가적인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현재의 가격 상승을 목격하고 앞으로 더 큰 가격 상승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해 시세차익을 노리며 수요를 더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실의 주식시장에는 회사의 사업이나 배당에는 무관심한 채 시세차익만을 기대하며 사고팔 주식을 결정하는 투자자가 더 많다. 또한 사람들은 합리적인 계산기계가 아니라 욕망과 공포 같은 정념에 좌우되는 나약한 존재로, 주가가 오를 때는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고, 다수의 선택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가는 정보를 신속하게 반영하지 못하고 추세를 띠게 된다.
현실의 금융시장과 사람들이 파마의 가정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은 무엇보다 거품의 존재를 통해 입증된다. 이 거품 문제를 집중적으로 거론한 대표적인 학자 또한 실러였다. 그는 기술주를 중심으로 주가에 거품이 끼었다며 거품의 폭발이 가져올 파장을 우려하기도 했다. 1990년대 말의 기술주 거품 붕괴나 2008년 신종 유가증권 거품의 폭발은 실러의 우려가 타당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이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파마는 거품이란 없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설득력 있는 논리를 펼치지는 못했다.
엄밀히 보자면, 파마의 이론은 금융시장에서 투자에 관한 의사결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며 이 과정에서 가격이 어떻게 형성되는가를 해명하는 것으로, 그 타당성은 현실과의 비교를 통해 판명이 날 수밖에 없는 경험적 이론이다. 그럼에도 파마는 이러한 경험적 이론을 시장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이데올로기로 변질시켰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금융감독 당국은 금융기관들의 과도한 차입과 신종 유가증권의 무분별한 확산을 방임했고 이 과정에서 엄청난 거품이 생겼다. 이러한 방임의 이면에는 시장은 합리적이고 완벽하다는 맹신이 놓여 있었는데, 이를 합리화한 게 바로 효율시장이론이었던 셈이다. 금융시장이 진정으로 효율적이려면, 생산적 투자에 자금을 제공하고 위험을 분담함으로써 경제성장을 도울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의 금융시장은 위험을 키우고 비생산적 투기를 부추겼으며 최악의 경제위기를 낳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았을 때, 시장의 효율성을 둘러싼 논쟁이 아직 진행 중이라는 주장은 진실과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이러한 주장이 계속 개진되는 것은 그만큼 자유시장 이데올로기의 힘이 세고 금융시장의 순기능에 대한 환상이 큼을 방증한다.

금융시장 순기능 높일 진지한 고민 절실

이 점은 효율시장이론의 강력한 비판자인 실러에게서도 확인된다. 그는 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활력 있는 금융시장이 여전히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갈수록 불확실성이 커지는 오늘날 사람들이 직면한 다양한 위험을 방비해줄 더 많은 파생금융상품을 통해 ‘좋은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이 금융시장의 고유한 속성과 인간의 심리적 특성에 주목해 금융시장의 비효율성을 지적했던 실러 자신의 연구와도 양립할 수 있는지는 분명치 않다. 금융시장이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것은 과연 불가능한지, 가능하다면 어떠한 조건에서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지, 그리고 금융시장의 역기능을 제어하고 순기능을 높일 새로운 규칙과 제도적 장치는 어떻게 마련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절실한 시점이다.

박종현 경남과학기술대 산업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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