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큰 물질적 풍 요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더 많은 부를 향한 갈증은 여전히 채워지지 않고 있다. 1인당 국 민소득 2만달러인 ‘국민행복’의 시대에도 자 신이 진정으로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정리해고, 비정규직, 갑의 횡포 는 언론에서만 다뤄지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 라 언제라도 우리를 찾아올 수 있는 일상화 된 위험이 되었다. 괜찮은 일자리를 가진 사 람도 삶이 고단하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대 선 때 한 정치인이 내건 ‘저녁이 있는 삶’이라 는 슬로건이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던 것 도 이 때문일 터다.
그렇다면 우리 삶이 이처럼 팍팍하고 고 단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이야기가 가능 하겠지만, ‘돈에 대한 사랑’이 문제의 핵심임 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돈에 대한 사 랑은 우리 사회의 곳곳에서 여러 모습으로 나타난다. 기업이 정규직 대신 비정규직을 쓰고, 회사 사정이 조금만 어려워도 감원부 터 하려 들고, 하청기업이나 대리점들을 최 대한 벗겨먹으려는 것은 돈에 대한 사랑 때 문이다. 그렇다고 기업의 탐욕만 탓하기도 어렵다. 이웃을 함께 의지하며 살아가야 할 확장된 가족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짓밟고 올 라서야 할 경쟁자이거나 나 자신에게 이익을 가져다줄 ‘비즈니스 파트너’로만 바라보려는 것이 우리의 자화상이다.
우리는 돈에 대한 사랑이 다른 모든 가치 를 압도하는 사회에서는 진정으로 행복한 삶 을 사는 게 어렵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 다. 돈에 대한 사랑이 사회를 어떻게 파괴하 는가를 설득력 있게 논증한 철학자 마이클 샌델의 이 많은 이 들의 주목을 받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럼 에도 이러한 현실을 바꾸려 선뜻 나서지 않 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 모두 약육강식의 불안하고 고단한 삶에 큰 불만을 가지고 있 으면서도 변화를 적극적으로 모색하지 않는 것은 다른 대안적 가능성을 알지 못하기 때 문이다. 이때 돈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거 나, 욕망을 억제하고 소박하게 살아가야 한 다거나, 이웃을 사랑하라는 충고는 고리타 분한 도덕적 설교로만 들릴 뿐이다.
가치관과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것은 개인적 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기존 가치관과 삶의 방식에 문제가 많다는 걸 알지만 이미 그것에 익숙해져 있고, 새로운 대 안은 낯설 뿐 아니라 그 성공 여부도 불확실하 며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게 현실이다.
스키델스키 부자의 (How much is enough)를 독자들에 게 소개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버지 로버트 스키델스키는 케인스의 전기작가이 자 영국 상원의원이고, 아들 에드워드 스키 델스키는 미학과 도덕철학을 전공한 철학자 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했다는 점도 인상 적이지만, 경제학자와 철학자의 공동 작업이 라는 점에 특히 눈길이 간다. ‘도덕과학’이라 는 이름 아래 가치판단의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 생산적이면서도 공정한 경제가 어떻게 가능할지를 고민하던 경제학의 옛 시절이 떠 올랐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동서고금의 다양한 사례 및 지 성사를 넘나들면서 돈에 대한 사랑이 우선 순위를 차지하고 칭송받는 것은 인류 역사 전체로 볼 때 대단히 예외적임을 입증한다. 돈에 대한 사랑은 인간의 피할 수 없는 본능 이었지만 이 본능이 어느 수준 이상으로는 분출되지 않도록 도덕과 교양으로 제어하는 게 근대 이전의 사회적 규범이었다는 것이 다. 이 책은 나아가 사람이란 게으르게 타고 난 존재이므로 동물과 다르려면 일을 하도 록 만들어야 하고 그러려면 돈을 통한 자극 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이 얼마나 피상 적이고 허약한 인간관 위에 서 있는지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가 비슷한 문제의식 위에 서 있는 다른 책들과 눈에 띄게 다른 지점은 ‘선한 삶’ 또는 ‘좋은 삶’(good life)이라는 새로운 비전을 힘있게 제시한다는 데 있다. 이때 좋은 삶이란 많은 이들이 단순히 바라는 삶이 아니라 원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삶, 그 자체로 충족된 삶을 의미한다. 또한 좋은 삶의 시각에서 보자면, 행복이란 단순한 주관적 감정이 아니라 현실을 바라보는 건강한 태도이자 입장이 된다.
모든 이들에게 ‘기본재’ 제공해야우리가 돈에 대한 사랑 대신 좋은 삶을 다 함께 추구해야 할 목표로 설정한다면, 그때의 중요한 키워드는 ‘효율’이 아니라 ‘충분’이 되어야 한다. 이제 인간의 끝없는 욕망은 교양과 문화와 도덕을 통해 일정한 한계 안에서 제어해야 할 것으로, 경제성장은 인간의 좋은 삶을 가능케 하는 한도 내에서만 추구해야 할 것으로 그 위상이 새롭게 정립된다. 이러한 세상에서는 어떤 목적함수를 극대화해야 한다는 발상은 힘을 잃게 된다. 이곳에서는 그것이 이윤이든, 행복이든, 돈이든 최대한 많이 얻는 게 아니라 적당히 얻고 가치 있게 향유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스키델스키 부자는 이와 관련해 ‘여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때 여가란 일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외적 강제 없이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일에 몰입하는 적극적인 활동을 의미한다. 여가가 없는 삶은 다른 무언가를 위해서만 바쳐졌을 뿐 실제로는 삶 그 자체를 위해 영위된 적이 없다는 점에서 공허할 수밖에 없다. 저자들에 따르면, 여가는 마르크스의 ‘소외되지 않은 노동’과 유사하며, 삶의 자유로운 표출이자 삶의 향유이고,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지향해야 할 가장 좋은 삶의 방식이다.
스키델스키 부자는 좋은 삶이 가능하려면 모든 이들에게 ‘기본재’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본재란 좋은 삶을 이루는 요소이자 인간답게 살기 위한 필요조건으로 모든 이들에게 고루 돌아가도록 사회적 차원의 자원 배분 과정에서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기본적 권리라고 할 수 있다. 기본재에는 건강·안전·존중·개성·자연과의 조화·우정·여가가 속한다. 저자들은 이러한 기본적 권리를 구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으로 주당 노동시간 제한, 법정 휴일 확대, 기본소득·누진소비세 도입, 광고 줄이기, 세계화의 속도 조절을 제안한다. 이들 요소가 왜 기본재에 속하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정책제안들이 어떠한 맥락에서 제시되었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를 통해 직접 확인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는 영국 상원의원이기도 한 아버지 스키델스키가 현실정치 속에서 이러한 정책 구상의 입법화를 어떻게 시도할지가 자못 궁금하다는 점만 언급해두기로 하자.
우리가 꿈꿔야 할 가치 있는 삶는 그동안 인류가 꿈꾸었으나 끝내 이루지 못했던 유토피아의 구상, 곧 지금 이곳에 천국이 찾아오기를 갈망하던 오랜 전통의 연장선상에 서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유토피아의 지향을 계승하되 이제까지의 시도가 지녔던 한계를 극복함으로써, 개인의 개성과 공민의 의무가 조화를 이루는 진정으로 ‘좋은 사회’를 실현하려는 ‘오래된 미래’의 기획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곳에서는 각자가 ‘자기만의 방’이나 ‘점포 뒷방’과 같은 사적인 공간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유롭게 펼쳐가면서 동시에 이웃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상대방의 좋음을 자신의 것으로 포용하며 우애를 나누는 자유인들의 연합체가 구현된다.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기는 하지만, 이 책이 기존 가치관에 대한 체계적인 비판과 함께 우리가 꿈꿔야 할 가치 있는 삶의 모습에 대한 매력적인 청사진을 보여주는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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