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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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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인스는 무분별한 쾌락주의자였나?

퍼거슨의 케인스 비하 논란 핵심은 케인스가 미래 세대에 무책임했나 여부
‘일의 노예’ 강요한 보수 논리 비판하며 ‘지금 이곳’의 ‘선한 삶’ 주장
등록 2013-05-20 13:41 수정 2020-05-03 04:27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한참 오래전의 경 제학자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현재진행형 이다. ‘죽은 경제학자’의 사상이 갖는 강력한 힘을 강조했던 것은 케인스 자신이기도 했 다. 바로 얼마 전 케인스와 관련해 니얼 퍼거 슨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작은 소동을 일으 켰다. 그는 동서고금의 다양한 사례로 자유 시장의 해방적 힘과 금융의 매혹을 찬양하 고 버락 오바마 정부의 정책을 노골적으로 비판함으로써 우파에게는 카타르시스를, 좌 파에게는 분노를 안겨주던 ‘스타’ 학자다. 퍼 거슨은 월가의 금융시장 참여자들과 경제 관련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장에서 과 거 영국의 대표적 보수주의 사상가였던 에 드먼드 버크와 케인스의 철학을 비교해달라 는 질문을 받고, 버크는 여러 세대에 걸쳐 지 속되는 ‘사회계약’을 믿은 반면 케인스는 ‘이 기심의 철학’을 믿었다고 답변했다.
이때 퍼거슨이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제시한 근거가 논란이 되었다. 그는 케 인스가 미래 세대를 신경 쓰지 않게 된 이유 를 케인스의 사생활, 곧 그가 동성애자이고 아이가 없었다는 점에서 찾았다. 요컨대 그 의 주장은 1) 케인스는 동성애자였고 자녀도 가지려 하지 않았다 2) 이런 사람들은 후손 을 신경 쓸 이유가 없다 3) 따라서 케인스는 이기적 세계관을 가졌다는 삼단논법으로 요 약되는 셈이다. 별 생각 없이 나왔을 퍼거슨 의 발언은 보도되자마자 큰 화제가 되었다. ‘세계적인’ 경제학자의 논리가 이토록 허술할 수 있는가도 얘깃거리였지만, 무엇보다 미국 사회의 예민한 쟁점인 동성애 문제를 아주 조야하게 건드렸기 때문이다. 결국 퍼거슨은 무조건적인 사과문을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 렸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현재를 중시했다는 지적은 옳다. 그러나 그가 도덕을 이기심과 방종과 나태로 대체하려 했다는 주장은 사실과 맞지 않는다. 생전의 케인스 모습. 후마니타스 제공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현재를 중시했다는 지적은 옳다. 그러나 그가 도덕을 이기심과 방종과 나태로 대체하려 했다는 주장은 사실과 맞지 않는다. 생전의 케인스 모습. 후마니타스 제공

케인스 둘러싼 경제적·철학적 간격

그런데 케인스의 사상이 왜곡되지 않길 바라는 쪽에서 보자면, 이번 사태가 ‘스타’ 경 제학자의 경솔한 처신에 관한 가벼운 한담 거리로 소비되거나 동성애자를 공격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교훈만으로 활용되는 것 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보다는 케인스 진영 과 보수주의 진영 사이에 깊이 드리워진 경 제적·철학적·도덕적 간격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살펴보는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 그 렇다면 퍼거슨의 발언을 둘러싼 초점은 케 인스가 정말로 이기심의 철학을 제창했고 미래 세대의 삶을 외면했는지에 맞춰져야 한 다. 퍼거슨 자신도 사과문에서 케인스의 이 론을 사생활에 비추어 비판한 것은 잘못이 지만, “장기적으로 우리는 모두 죽는다”(In the long run we are all dead)는 케인스의 유명한 문장을 감안할 때 그가 미래 세대의 삶을 고려하지 않은 것은 분명하며 이러한 철학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이번 소동의 후반부에 해당하는 그 사과문은 비판을 피해갈 수 있을까?

현세의 즉각적 만족 중시했다 비판받아

퍼거슨이 언급한 문장은 에 나오는 것인데, 원문의 앞뒤 맥락을 직접 확 인해보자. “장기적으로 이 관계(물가는 통화 량에 비례한다는 관계로 화폐수량설에 의해 제시되었다- 인용자)는 유지될 것이다. 그러 나 이 장기는 현재의 사태에 대한 잘못된 길 잡이다. 장기적으로 우리는 모두 죽는다. 경 제학자들이 장기를 이야기하는 것은 누군가 가 폭풍우 몰아치는 상황에서 폭풍우는 결 국 그칠 것이고 많은 시간이 흐르면 바다는 다시 고요해질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너무 쉬울 뿐 아니라 사태의 해결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대목의 직접적인 의도는 화폐수 량설이라는 전통적 경제모델이 갖는 한계를 비판하는 데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퍼거 슨이 꼬투리 잡은 문장은 미래를 무시하자 는 단기주의의 발현이 아니라 더 나은 경제적 분석과 정책에 대한 요구였던 것이다. 퍼거슨이 케인스가 현재만을 중시하고 미래를 무시한다고 주장한 것은, 막대한 재정적자와 깊은 불황이 공존하는 미국의 상황과도 관련이 있다. 그가 보기에 고용 확대와 불황 탈출을 꾀한다며 정부 지출을 늘리는 것은 재정적자를 더욱 부풀려 미래 세대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나쁜 정책인데, 이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한 게 바로 케인스였던 것이다. 하지만 재정적자가 큰데도 확장적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제안을 장기를 무시하는 주장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곤란하다. 수요가 부족한 불황 상태에서 긴축정책은 당장의 생산과 고용을 악화시킬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도 경제를 더 나쁜 상황으로 이끌고 재정적자 또한 더욱 늘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케인스의 입장에서 보자면, 경제의 단기적 상황에 따라 정책을 달리하는 것이야말로 장기를 고려하는 제대로 된 방식이다. 재정적자를 줄일 긴축정책은 호황일 때 행해져야 하며, 불황일 때는 고용 확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런데 케인스가 장기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최종적으로 겨냥하는 지점은 그의 사상이라고 보아야 한다. 현재의 쾌락만을 중시하는 무책임한 철학이 결국 사회를 쇠퇴로 이끌 것이라는 게 보수주의 사상가들의 판단이다. 이와 관련해 역사학자이자 신보수주의의 거두인 거트루드 힘멜파브의 주장이 눈에 띈다. 그녀는 케인스가 일체의 권위를 부정했던 예술가와 지식인들의 집단인 블룸즈버리그룹- 우리에게는 ‘목마와 숙녀’라는 박인환의 시 속 주인공으로 잘 알려진 버지니아 울프도 그 일원이었다- 의 인물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케인스의 경제학에는 현세의 즉각적인 만족에 우선권을 부여하는 블룸즈버리의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보았다. 그녀는 이러한 판단 위에 케인스의 사상이 건강한 가치관을 타락시키고 사회규범을 악화시킬 거라고 우려한다. 이때 힘멜파브는 특히 케인스가 저축의 ‘미덕’을 조롱한 것에 주목했다. 저축의 중요성을 강조한 애덤 스미스 같은 전통적 경제학자들과 달리, 케인스가 저축에 대해 무조건적 지지를 보내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가 문제 삼은 것은 안전한 노후와 자손을 위한 저축 그 자체가 아니라, 안락한 미래의 준비라는 명분 아래 사람들에게 불필요한 내핍을 견디며 일의 노예가 되도록 강요하던 빅토리아시대의 뒤틀린 도덕관이었다. 그가 현재를 중시했다는 지적은 옳다. 그러나 그가 도덕을 이기심과 방종과 나태로 대체하려 했다는 주장은 사실과 맞지 않는다. 케인스의 기획은 빅토리아시대의 왜곡된 도덕을 ‘선한 삶’에 기초한 좀더 건강한 도덕으로 바꾸는 데 놓였기 때문이다.

‘이기심’과 거리 먼 ‘장기적’ 고려

힘멜파브가 인용하며 문제 삼았던 바로 그 대목을 같이 음미해보자. 이 문장들로부터 무분별한 쾌락의 탐닉을 읽어낼지, 아니면 우리가 천국을 지향한다면 바로 ‘지금 이곳’을 천국답게 가꾸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믿음을 읽어낼지, 그 판단은 여러분의 몫이다. “‘저축’이라는 의무가 미덕의 거의 전부가 되었고, 파이의 성장이 진정한 종교적 목표가 되었다. 소비되지 않는 파이와 더불어 청교도 정신의 모든 본능도 함께 커졌다. 다른 시대였다면, 이 청교도 정신은 속세로부터 벗어나 향유의 수완은 물론 생산의 수완도 거부했겠지만 말이다. 이 덕분에 결국 파이가 커졌다. 그러나 무엇을 위한 성장인지에 대한 명확한 고려는 없었다. 개인들은 안전함 속에서 현재의 삶을 누리는 기쁨에 경의를 표하고 이를 키워나가기보다는 절제할 것을 권유받았다. 저축은 노후나 자식을 위해 할 일로 상정되었지만, 어디까지나 이론상으로만 그랬다. 파이의 미덕은, 그들 자신에 의해서든 그들의 자식에 의해서든, 끝내 소비되지 않는 데 있었다.”(케인스, )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이 책에서 케인스는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독일 등 패전국에 막대한 배상금을 요구한 승전국들의 탐욕과 어리석음을 개탄한다. 힘을 잃고 폐허가 된 상대방에게서 배상금을 많이 뽑아내는 게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일이며 세계평화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그의 경고는 ‘이기심’과는 거리가 먼 ‘장기적’인 고려였다.

경남과학기술대 산업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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