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락이 예정된 투기 광풍인가, 바람직한 미래 화폐인가?
세계가 비트코인(Bitcoin) 열풍으로 뜨겁다. 비트코인은 2009년 초,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익명의 프로그램 개발자가 만든 가상화폐다. 초창기에는 사람들의 관심도 없었고, 거래도 거의 없었다. 피자 한 판이 1만비트코인에 판매된 게 화젯거리였던 것도 이런 사정을 반영한다. 하지만 2011년을 기점으로 ‘티핑 포인트’를 맞이한다. 그해 2월 처음으로 1달러를 넘어섰고, 6월에는 10달러도 돌파했다. 불과 1년 사이에, 누군가는 피자 한 판을 먹는 데 ‘10만달러’를 사용한 셈이다. 그러고는 지난 4월 100달러를 넘어섰고, 11월에는 1천달러까지도 돌파한다. 비트코인의 이러한 가격 급등은 전형적인 금융 거품 현상에 해당한다. 비트코인은 ‘영원한 화폐’로 거론되는 금과는 달리 물리적 실체가 없을뿐더러 내재적 가치도 없는 ‘명목상의 화폐’다. 그럼에도 이 화폐는 그 어떤 주식보다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비트코인의 가격은 미디어 노출에 아주 민감한 반응을 보였는데, 이 또한 금융투기의 전형적인 현상이다. 이 점에서 비트코인을 둘러싼 최근 양상을 인류 역사상 가장 큰 금융 거품이라는 튤립 광풍에 비견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중지급 문제 낮은 비용으로 해결비트코인 열풍이 우리 속의 뿌리 깊은 투기적 욕망을 자양분으로 삼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비트코인도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과 같은 운명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번 현상을 또 하나의 금융투기로만 치부하는 것은 옳지 않다. 비트코인은 이제까지와는 분명히 차별화되는 화폐 모델이기 때문이다. 우선, 비트코인은 가상공간에서만 존재하는 명목상의 화폐도 기성 화폐보다 상거래를 더 훌륭하게 중개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인터넷상의 송금은 돈을 디지털 형태로 보내는 것이다. 그런데 디지털 형태의 돈은 디지털 문서와 마찬가지로 컴퓨터 속의 파일이므로 누군가에게 보냈더라도 복제를 했다가 여러 번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러한 ‘이중지급 문제’는 그동안 양쪽 모두 신뢰할 수 있는 제3자, 곧 금융기관에 장부 관리를 위탁하는 방식으로 해결됐다.
비트코인은 모든 이용자의 협력에 기초한 수평적 금융 네트워크를 통해 이중지급 문제를 낮은 비용으로 안전하게 해결했다는 점에서 혁신적이다. 핵심은 모든 거래가 ‘블록 체인’이라는 단일한 공개 장부에 기록되도록 하되, 이 거래 장부를 특정한 중앙 서버가 아니라 시스템 내 모든 이용자의 컴퓨터 네트워크에 분산시켜 공동으로 관리하는 데 있다. 새로운 거래가 일어나면 이때의 비트코인이 혹시라도 미리 사용돼 블록 체인 내에 이미 기록돼 있지 않은지를 확인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이 거래를 인증하고 그 기록을 새롭게 저장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런데 개발자인 사토시 나카모토는 이 작업이 네트워크 내 모든 이용자에 의해 공동 수행되도록 설계했다. 특히 그의 천재성은 코인의 발행 및 인증 과정을 유기적으로 연결시켰다는 점에서 빛난다. 사람들이 인증 작업에 자발적으로 동참하는 수고와 불편을 기꺼이 감수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참여 시간에 비례해 비트코인이 제공되도록 설계했던 것이다.
이제 비트코인을 이용하면 상대가 전세계 어디에 있든 돈을 주고받을 수 있다. 상대방이 비트코인을 받을 용의만 있다면 말이다. 비트코인 이용자들은 금융기관에 송금이나 결제 관련 수수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 또한 비트코인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소유자 정보는 포함하지 않은 채 주소를 임의로 생성할 수 있어 거래의 익명성이 보장된다. 그리고 비트코인의 공급량이 2100만 개를 넘지 않도록 설계됐기 때문에 지나친 남발로 인해 그 가치가 훼손될 위험도 없다.
‘총과 패스워드’로 정부 자리 대체될 수도오늘날 비트코인 열풍을 지탱하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우파의 경제 담론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사람들의 자유를 억압하고 정부를 무한정 키우기 위해 재정 적자를 천문학적으로 늘렸고,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도 헬리콥터로 돈을 쏟아부었으며, 이로 인해 미국은 실질적인 파산 상태에 놓였다거나 엄청난 인플레이션이 임박했다는 주장 말이다. 이러한 주장의 정치적 의도에는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 경제적 함축에는 공감하는 사람이 매우 많다. 미국의 파산이나 무시무시한 인플레이션을 우려한다면, 달러화를 팔고 금이나 비트코인을 사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 된다. 정리하면, 최근의 비트코인 열풍은 손쉽게 일확천금을 벌려는 투기적 욕망, 정보기술(IT) 발달에 기초한 혁신적인 지급결제 시스템에 대한 높은 평가, 보수적인 무정부주의의 유토피아를 실현하려는 꿈, 달러화에 대한 불신, 재정 적자 우려, 오바마에 대한 증오,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믿음 등 그 성격이 전혀 다른 여러 요소들이 기묘하게 뒤섞인 결과물인 것이다.
그렇다면 비트코인은 옹호자들의 믿음처럼 미래의 새로운 화폐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까? 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쉽지는 않아 보인다. 우선, 비트코인의 가격 폭등 현상 자체가 문제다. 비트코인이 지급 수단의 역할을 제대로 담당하려면 그 가치가 떨어지지 않는 것 못지않게 계속 올라가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지속적인 가치 상승이 예상된다면 상거래에 이용하는 대신 유통에서 퇴장시켜 보유만 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이 확고한 신뢰의 닻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큰 문제다. 무언가가 화폐로 작동하려면 언제 어디에서든 누구라도 화폐로 받아들일 거라는 신뢰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그동안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었던 화폐는 내재적 가치를 지닌 금과 국가에 의해 통용력을 보장받은 법정화폐였다. 비트코인은 결제 수단으로 잘 작동할 수 있음을 입증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금처럼 내재적 가치를 지닌 것도 아니고 법정화폐처럼 국가가 그 사용을 강제하는 존재도 아니다. 더욱이 비트코인과 작동 메커니즘이 유사한 다른 가상화폐들도 얼마든지 출현할 수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비트코인이 여타 가상화폐들을 제치고 지급결제 수단으로 선택된다는 보장은 전혀 없는 것이다.
비트코인이 법정통화를 대체하는 데 성공하더라도 그때의 세상은 그리 멋져 보이지 않는다. 그곳에서는 IT의 발달로 인해, 정부가 발행한 화폐나 금융기관의 도움 없이도, 조건만 맞으면 원하는 걸 무엇이든 사고팔 수 있다. 국가의 시장 통제 또한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져 한 푼의 세금도 낼 필요가 없다. 조세와 적자 재정을 통해 공공재를 공급하고 소득 재분배를 꾀하며 통화정책을 통해 일시적인 경기 후퇴가 만성적인 불황이나 대공황으로 악화되는 것을 막았던 정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비트코인이 화폐의 역할을 전담하는 세상에서 정부의 자리는 ‘총과 패스워드’로 대체된다. 이곳은 자신의 능력에 따라 원하는 것을 익명으로 모두 이룰 수 있는 ‘강한 개인’의 천국이다. 이러한 극단적 개인주의가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려면 아주 확고한 개인윤리가 필요한데,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서 이러한 윤리를 기대하는 것은 몽상에 불과하다. 비트코인이 지배하는 세상의 귀결은 공동체의 붕괴일 가능성이 아주 높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진보적 성격 읽어내려는 순진한 기대그러므로 비트코인의 실험으로부터 진보적 성격을 읽어내려는 일부 식자층의 낙관 섞인 기대에는 선뜻 동의하기가 어렵다. 대중의 참여와 협력에 기반한 개방형 네트워크 화폐는 많은 장점이 있는 게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금융기관의 권력에 균열을 가져와 소비자주권의 가능성을 키웠는데, 이러한 네트워크의 영향력이 앞으로 한층 커질 터이다. 하지만 비트코인 연결망 속에서의 개인들이 공동으로 이중지급을 막는다 할지라도, 이때의 참여와 협력은 단세포생물의 세포분열에 가까울 뿐 진정한 사회적 관계와는 거리가 멀기에 대자본에 악용될 여지가 크다. 공공선의 달성과 실물경제의 온전한 순환, 그리고 개성 존중이라는 가치에 비슷한 무게를 두려면, 국가 중심의 화폐 관계를 살아 숨쉬는 구체적 개인들 사이의 진짜 관계에 기초한 자생적 화폐 관계로 보완할 필요가 있다. 아직은 미미하지만 지역통화나 크라우드펀딩, 공유경제 등이 여기에 속할 것이다. 이들의 문제의식을 효과적으로 구현할 새로운 화폐·금융 플랫폼의 개발자, ‘진보적’ 사토시 나카모토의 출현을 기대해본다.
박종현 경남과학기술대 산업경제학과 교수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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