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경제학자들은 경제학이 과학이라고 믿는다. 경제학은 사람들의 선택이 어떻게 이뤄지며 이들이 어떤 원리에 따라 행동하는지를 연구하는 과학적 학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입장에서는 당위에 대한 고민이 경제학 내에 들어설 여지가 크지 않다. 경제학이 과학일 수 있는 것은 가치판단으로부터 독립적이기 때문이라고 이해하는 편이다. 이러한 가치중립성은 경제학자들이 시장을 굳건히 신뢰하는 주된 이유이기도 하다. 시장은 그것이 충족시킨 선호들에 대한 가치판단을 내리지 않는데, 이 점이야말로 시장이 가장 이상적인 자원배분 기구로 존재할 수 있는 이유로 상정된다. 거래되는 재화에 대해 어떤 가치를 부여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거래 당사자들의 몫이다. 시장은 어떤 것이 더 우월한 선호인지에 간섭하지 않은 채 그 선호들을 드러내주기만 하는데, 양쪽 모두 최상의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건 바로 그 덕분이라는 게다. 요컨대 시장에 대한 사랑에는 타인- 그것이 개인이든 국가든- 이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에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믿음이 강력하게 깔려 있다.
시장경제와 공동체 위한 최소한의 장치그런데 지난 대선을 계기로 우리 시대의 화두가 된 경제민주화 개념은 경제학자들의 이러한 통념과 잘 어울리는 것 같지 않아 보인다. 거칠게 정리해보면, 경제민주화란 만인의 평등, 곧 ‘1인1표’라는 정치적 민주주의 핵심 원리를 경제 영역에 적용하는 시도로서, 무엇보다 자유방임 시장에 대한 모종의 간섭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시장은 각자의 선호와 지급능력에 기초한 ‘1원1표’ 원리에 의해 작동한다. 경제민주화란 ‘둥근 사각형’ 같은 형용모순이라는 주장에 적잖은 경제학자들이 공감했던 것도 1원1표와 1인1표가 전혀 다른 원리였기 때문이다. 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자유와 평등 그리고 인권 같은 민주주의의 가치는 경제가 아닌 정치의 영역에서 추구돼야 하며, 경제 영역에서는 민주주의가 아닌 효율이라는 가치가 판단 기준이 되어야 한다. 시장은 매우 섬세한 공간이기 때문에 국가가 이곳에 개입하면 정의도 달성하지 못하면서 효율까지 망쳐놓는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시장은 사회와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무균질의 공간도, 정부나 제도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 완벽한 공간도 아니다. ‘시장 실패’가 경제학 교과서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도 이런 사정을 반영한다. 신분에 기반했던 중세 봉건제의 해체에는 시장 확대도 적지 않은 역할을 했던 게 사실이다. 이 점에서 시장에 해방적 힘이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시장이 적절한 한계를 넘어서면 사회의 안정성과 정당성을 심각하게 위협한다는 점 또한 엄연한 사실이다. 시장은 인간의 이기심과 맞물리면서 1원1표 원리를 사회 전역으로 확장하려는 내적 동인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1인1표 민주주의를 경제 영역에도 적용하는 것은 시장경제와 공동체의 공생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고 할 수 있다. ‘경제학의 아버지’인 애덤 스미스가 사회 전반의 복지를 위해서는 경제 분야 정책이나 법·제도의 수립 과정에서 계속 커지는 고용주 계급의 영향력을 견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도 이러한 맥락을 반영한다. 1인1표 원리와 1원1표 원리를 양립 불가능한 관계로 보는 것은 극단론이며 기계적 이분법에 불과하다. 오히려 현대 자본주의의 역사는 두 원리 사이의 긴장과 타협의 역사로, 시대와 장소에 따라 양자의 배합은 각기 달랐지만 원천적으로는 공존했던 것이다.
이러한 주제는 경제학, 철학, 정치학 등에서 주요한 관심사였다. 오랜 기간에 걸쳐 수많은 학자의 연구가 축적됐고, 이 과정에서 오늘날 경제민주화 논의의 훌륭한 준거가 될 견해도 제출됐다. 이마누엘 칸트의 사유 방식에 기초하고 존 롤스에 의해 명시적으로 개진된 원칙이 그것인데, 이는 경제민주화에 대한 ‘진짜’ 자유주의의 입장이기도 하다. 삶의 우연성이나 자의성의 제약을 최소화하는 가운데 각자가 최선을 다해 시장에서 경쟁하고 그 결과에 승복할 수 있는 경기 규칙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가 이들의 기본적인 문제의식이었다. 이들이 생각한 경기 규칙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가장 뛰어난 자에게 족쇄를 채우지 말고 모든 이가 동일한 경기 규칙 아래 최상의 경주를 펼치게 하라. 다만, 경주가 시작되기 전에 승전품이 미리 승자에게 모두 돌아가지 않고 패자에게도 어느 정도 돌아갈 것임을 모두가 합의토록 하자. 이는 경제 영역에서의 공정한 경쟁을 최대한 보장하되, 경쟁의 승패를 가져올 요인 중 하나인 자연적 재능은 일종의 공동 자산으로 간주하자는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타고난 재능으로부터 발생하는 이익을 경쟁에서의 패자도 같이 나눠가질 수 있도록 재분배를 허용함으로써 패자도 결과에 기꺼이 승복하고 다음 라운드의 경쟁에 다시 임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민주주의, 기업 내부에까지 적용해야이런 원칙에 반론이 제기될 수도 있다. 이러한 자유주의의 규칙을 적용할 경우 규칙이 공정하더라도 능력이나 운 또는 경제환경적 요인 등으로 인해 시장경쟁이 사람들 사이의 큰 격차로 귀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재분배, 곧 2차 분배만으로는 그 불평등을 완화시키기 어려우니 직접적 경제활동 과정에서 사람들 사이에 자율적으로 이뤄지는 분배, 곧 1차 분배와 직결된 경쟁 관련 규칙의 자유를 다소 제한하는 방식으로 바꾸자는 주장이 바로 그것이다. 이 입장에서 보면, 경량급 선수와 중량급 선수가 싸울 경우 중량급 선수에게 족쇄를 채워 링에 올리는 것이 공정하다. 골목상권 보호를 위해 대형 유통업체의 입점을 허가제로 운영하거나, 갑의 횡포를 막기 위한 밀어내기 처벌 강화법을 제정하는 게 구체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자유주의 원칙에 입각한 경제민주화는 기본적으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각자 잘 살아간다는 목표를 넘어서기 어려운데, 진정한 민주주의는 이걸로는 부족하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민주주의란 공공성의 고양이자 자기 삶의 책임 있는 주체인 시민의 참여라고 믿는 공화주의의 입장이 여기에 속할 것이다. 민주주의 원리를 시장은 물론 기업 내부에까지 본격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비슷한 맥락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입장에서 보면, 기업의 주요한 내부자인 종업원의 적극적인 참여 위에 기업 내 권력관계를 바꾸고 기업이 공공선에 기여하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경제민주화의 더 중요한 목표가 된다.
‘자유지상주의’ 한계를 비춰줘이처럼 칸트나 롤스의 전통에 기반한 규칙에 대한 일정한 수정도 있고, 더 근본적인 비판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들의 입장은 앞으로 경제민주화 논의가 발전적으로 이뤄지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입장은 자신들이 스스로 결정한 경기 규칙에 따라 행동하도록 하되, 어떤 삶이 더 우월한지에 대한 판단과 선택은 독립적인 ‘개인’의 몫으로 돌린다는 점에서 관점이 다른 사람들 사이의 토론을 원활하게 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개인의 자유를 무제한적 권리라고 주장하며 사회의 개입을 원천적으로 거부하는 ‘자유지상주의’의 한계를 비춰주기도 한다. 이 원칙들이 하나의 명확한 출발점이 된다면, 경제민주화는 형용모순이라거나 개인의 경제적 자유는 결코 침범돼서는 안 될 신성한 권리라는 식의 주장과의 소모적인 논쟁도 최소화할 수 있다. 또한 이 추상적 차원의 원칙들을 현실에서 어떻게 구현하고 수정할 지를 놓고 더 생산적인 토론도 가능해질 것이다.
박종현 경남과학기술대 산업경제학과 교수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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