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많은 경제학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단어는 아마도 인센티브일 듯싶다. 에는 이 단어가 110차례나 등장할 뿐 아니라 경제학의 가장 중요한 원리로까지 격상된다. 이때 인센티브란 사람들로 하여금 보상이나 징벌을 기대하게 함으로써 특정한 행동을 유도하는 것을 말한다. 경제학자들에게 사람들이 인센티브에 반응한다는 것은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무릎을 치면 다리가 올라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종의 자연법칙이자 섭리다. 경제학자들은 이런 섭리에 맞서지 말라고 설교하는데, 가장 큰 경계 대상이 바로 시장에 대한 개입이다. 가령 저숙련 계층의 생계를 도우려는 최저임금제가 외려 실업을 늘리거나 사회보장 재원 확보를 위한 부자 증세가 세수를 줄인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이들의 처지에서 보면, 나아가 맨큐의 세례를 받은 일반인들의 시선으로 보자면, 임금을 올리면 노동 수요가 줄어드는 반면 노동 공급은 늘어남으로써 실업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최저임금제의 실패는 예정된 셈이다.
에만 110차례 등장
그러나 최저임금제에 대해서는 고용을 일부 줄였다는 실증연구도 있지만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는 연구결과도 많다. 인센티브에 주목해 최저임금이 실업을 늘릴 것이라던 주장은 ‘여타 조건 불변’을 전제로 성립한다. 그러나 최저임금이 노동자들의 작업 의욕이나 생산성을 높여주면 고용주가 굳이 노동 수요를 줄일 필요는 없게 된다. 또한 최저임금제로 인해 노동자의 구매력이 많이 늘어서 장사가 잘되면 고용이 오히려 더 늘어날 수도 있다. 사람들이 인센티브에 반응한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명제다. 그러나 철학자 조지프 히스의 표현에 따르면, 현실의 사람들은 자기 행동의 결과는 물론 자기 행동을 지배하는 원칙도 함께 고려하며 선택을 한다. 사람들은 금전적 자극 이외에 사회적 규범은 물론 자기 행동의 내적 정당성도 함께 고려한다. 그로 인해 인센티브에 반응하는 정도는 재화마다 차이가 클 수밖에 없다. 이는 인센티브가 경제학자들의 선전과 달리 사람들의 행동을 예상하는 데 결정적이지 않음을 의미한다. 중요하고 복잡한 사안일수록 인센티브의 설명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경제학자들은 이처럼 인센티브를 명분으로 시장 개입을 최소화함과 동시에, 그간 시장이 진출하지 않았던 영역에 새롭게 인센티브를 부여함으로써 시장을 확대하는 작업을 병행하며 이를 정당화한다. 혈액의 시장거래를 예로 들어 살펴보자. 기존 헌혈제도에 혈액의 시장거래, 곧 매혈 기회가 더해지면 개인의 선택지가 늘어나고 그로 인한 후생의 증가가 기대된다. 물론 헌혈에서 보람을 느끼는 사람들은 자신의 선호에 따라 시장 바깥에 계속 머물러 있으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로 잘 알려진 철학자 마이클 샌델은 이러한 발상에 동의하지 않는다. 경제학자들의 주장이 타당하려면 혈액시장이 형성돼도 혈액의 가치나 의미는 변하지 않아야 하는데, 실제 혈액시장의 형성은 혈액의 의미를 바꾸고 헌혈의 가치도 격하된다는 것이다. 이제 혈액은 돈벌이 수단이 되면서 생명을 유지해주는 의미가 퇴색된다. 이 과정에서 헌혈의 의미도 예전처럼 타인의 생명을 돕는 고귀한 활동으로만 여겨지지 않게 되고, 헌혈 활동 자체가 줄어들 여지가 생긴다.
샌델은 인센티브를 확대하려는 시도가 재화의 품격을 떨어뜨리고 사회적 행위의 성격을 변질시키거나 타락시킨다고 비판한다. 시장 이외의 규범이 지배하던 삶의 영역 속으로 시장이 침입함으로써 이타주의·관용·연대·시민정신 같은 덕목이 크게 훼손됐다는 얘기다. 샌델은 시장으로부터 사회를, 인센티브로부터 사회적 규범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임을 분명히 하고, 그 해법을 공론장에서의 열린 토론에서 찾는다. 이때 각 사안별로 기존의 규범이나 가치관에 담긴 도덕적 중요성은 무엇인지, 돈의 논리가 이 영역에 들어올 경우 그것들이 얼마나 훼손되고 그로 인해 기존 활동의 성격이 얼마나 변질될 것인지가 핵심 쟁점이 된다.
시장은 항상 위험한가인센티브 만능론을 앞세운 경제학의 최근 흐름에 대한 샌델의 문제제기는, 배금주의가 시민사회의 소중한 가치들을 몰아내고 있는 오늘날 중요한 문제제기이자 현대 경제학에 대한 아픈 비판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샌델의 작업은 진보적 경제학자들에게서 기대만큼의 공감을 얻지는 못했다. 가장 큰 이유는, 그의 주장이 양자택일의 당위론처럼 보이는 것과 관련이 있다. ‘시장은 항상 옳다’는 주장만큼이나 ‘시장은 항상 위험하다’는 주장도 문제인데, 이러한 일반론은 공허하거나 억압적이기가 쉽기 때문이다. 상호성의 경제학으로 유명한 새뮤얼 볼스에 따르면, 시장이 도덕을 내몰아버린다는 샌델의 진술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경험적 문제로서 실제 그렇게 될지 여부는 해당 사회의 조건에 따라 다른데도 이를 보편적 진리처럼 일반화하는 것은 문제다.
경제학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필요한 것은, 시장이 사회 영역으로 진입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당위론보다는, 어떤 조건에서 시장이 나쁜지, 어떤 조건에서 시장이 규범을 타락시키지 않고 효율을 개선시킬 수 있는지 등에 관한 분석이다. 가령 주택·교육·의료·혈액 등의 재화를 어떤 원리에 의해 분배하는 게 바람직한지의 문제는 해당 재화의 공급을 시장·국가·기부·줄서기·추첨 등 다양한 원리들 중 무엇이 가장 많이 늘려줄 것인지에 의해 결정돼야 하는데, 그 판단은 실증연구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게 다수 경제학자들의 입장일 것이다. 물론 샌델은 이러한 비판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삶의 어느 영역까지는 시장과 인센티브에 맡기고 어느 영역부터는 이들의 침입을 막을 것인지의 문제는 단순히 공급의 증가 여부로 따져서는 곤란하며, 해당 영역이나 활동의 본래적 의미와 목적 그리고 그 활동으로부터 기대되는 가치에 관한 충분한 숙고와 토론을 거쳐서만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문제라고 보기 때문이다.
샌델과 비판적 경제학자들은 시장에 관한 문제의식에서도 입장이 갈린다. 샌델이 상대적으로 부패 측면에서 시장을 경계한다면, 비판적 경제학자들은 상대적으로 강압과 불공정의 관점에 더 치우쳐 시장을 비판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투명성과 법치주의의 기치 위에 공정경쟁이 이뤄지고 사회안전망 또한 튼튼하게 갖춰짐으로써 기회의 실질적 평등이 보장되는 사회에서는 금전적 인센티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더라도 사회적 규범이나 시민적 덕성이 쉽게 부패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시장이나 인센티브의 확산 자체를 막는 데 관심을 쏟기보다는, 시장의 해방적 힘을 인정한 가운데 제대로 된 공정경쟁과 튼튼한 사회안전망을 확보하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쏟자는 게 이들의 정책적 입장이 될 것이다.
경제학 vs 철학·사회학비판적 경제학자들의 이러한 태도는 가치판단 문제에 대해서는 가능한 한 각자의 몫으로 돌리고, 사람들이 타인의 간섭 없이 독립적으로 살아갈 여건을 조성하는 데 집중하겠다는 자유주의자로서의 신념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이는 지난 100년간 미국의 진보 진영이 택했던 길이기도 한데, 부정적 평가가 많다. 가치 있고 좋은 삶이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이룰 수 있는지를 공론장에서 함께 논의할 기회가 사라짐에 따라,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모두가 함께하는 기쁨을 잃은 채 파이를 늘리고 나누는 경제적 문제에만 매진하다보니 사회에 대한 불만과 정치에 대한 환멸이 커졌다는 것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 저명한 사회학자인 리처드 세넷은 인센티브만을 강조하는 경제학은 도덕을 몰아낼 뿐 아니라 사람들의 친교와 의무도 같이 몰아냈다는 점을 특히 개탄하면서, 지역에 뿌리내리고 사람들 사이의 협동과 친교에 힘쓰며 비공식적인 사회적 관계를 보존하고 확장하는 데 많은 의미를 부여하자고 주장한다. 경제학 진영과 철학·사회학 진영 중 어느 쪽이 옳은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인센티브 만능론에 대한 의미 있는 대안이 되려면 두 입장 사이의 치열한 논쟁이 더욱 요구된다는 점이다.
박종현 경남과학기술대 산업경제학과 교수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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