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정신장애인 공동체 ‘베델의 집’의 당사자연구에서 사토 다이이치가 ‘환청씨’와 대화하고 있다. 청주정신건강센터 유튜브에 올라온 참새TV 화면 갈무리
“철학책을 함께 읽으면 사람과 담론을 떨어뜨려 생각할 수 있습니다.” 최근 숭례문학당 북토크 자리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주장과 사람을 동일시하지 않으면 인격적 비난에 매몰되는 대신 이성적 토론이 가능해진다는 요지였다. 무심결에 던진 말이었지만 이상하리만치 독자들은 이 문장을 붙잡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도 아니다. 사람과 행동을 분리해서 바라보는 것 자체가 어느새 낯선 일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몇 년 전의 실언 하나가 인격 전체를 규정하는 증거처럼 소환된다. 어떤 주장에 반대하는 것을 넘어 주장하는 사람 자체를 “원래 그런 인간”으로 낙인찍는 속도 역시 점점 빨라지고 있다. 그럴 때 유일한 결론은 언제나 ‘손절’뿐이다.
문제를 일으킨 사람의 인격 자체를 비난하는 ‘범인 찾기’의 세계관에서는 도무지 대화도, 변화도 일어날 수 없다. 반면 담론과 사람을 떨어뜨려 분석하는 철학은 그 결합의 우연성에 주목함으로써 이 숨 막히는 융합을 느슨하게 해준다. ‘누가 잘못했는가’만 따지기 전에, ‘지금 우리 사이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함께 물어보는 길도 있다.
사람을 비난하라는 세상의 강박에 맞서 문제가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동료와 함께 관찰하고 알아가는 실천이 있다. 바로 ‘당사자연구’라는 방법론이다. 정신장애, 발달장애, 의존증, 만성통증 같은 다양한 삶의 곤란함을 겪는 당사자들이 의사에게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장애와 질병을 연구하고 자립을 고민하는 것이다. 2001년 일본에서 시작된 당사자연구는, 이제 장애 문제를 넘어 다수자의 삶을 성찰하는 데까지 나아가고 있다.

‘책임의 생성’, 고쿠분 고이치로, 구마가야 신이치로 지음, 박영대 옮김, 에디토리얼 펴냄, 2025년
뇌성마비 장애인이자 당사자연구 분야의 대표적 연구자 구마가야 신이치로는 철학자 고쿠분 고이치로와 함께한 대담집 ‘책임의 생성’(에디토리얼 펴냄, 2025)에서 당사자연구의 두 가지 핵심 방법을 이렇게 정리한다.
첫째는 ‘외재화’다. 곤란한 행동을 인격 바깥으로 끄집어내어 관찰 가능한 현상으로 다루는 것이다. 예컨대 당사자연구에서는 환청을 “환청씨”라 부르고 폭식이나 우울도 사람에게서 떨어뜨려 연구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 문제와 사람을 분리할 때 동료들과 함께 그 오작동의 메커니즘을 추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동료의 힘’이다. 고통에 홀로 갇혀 있을 때 자신을 객관화하기는 어렵다. 나를 비난하지 않는 동료들의 관점을 경유할 때만 비로소 내게 일어난 사건을 마치 다른 사람의 일처럼 차분히 관찰할 수 있다.
이렇듯 비난의 언어를 관찰과 묘사의 언어로 바꿀 때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삶의 모습이 하나둘 드러난다. 왜 특정한 상황만 되면 몸이 굳어버리는지, 왜 어떤 관계에서는 갑자기 패닉이 오는지 등등. 단순한 의지 부족이나 성격 결함으로 환원되던 문제가 어떤 환경과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지가 고해상도로 나타난다.
왜 이런 수고가 필요할까? 서로 다른 환경, 몸, 관계를 진지하게 고려할 때만 ‘범인 찾기’의 세계관에서 벗어날 수 있고, 늘 반복하던 반응과는 다른 관계 맺기도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바꾸려 하기 전에 그 문제의 메커니즘부터 제대로 ‘아는 것’을 지향하는 활동이 바로 당사자연구다. 구마가야 신이치로는 자신의 장애 체험을 되짚는 ‘재활의 밤’(동녘 펴냄, 2025)에서 당사자연구의 실례를 보여준다. 이 책은 경직성 뇌성마비를 갖고 살아온 자신의 삶을 하나의 역사로 정리하고 있다.

‘재활의 밤’, 구마가야 신이치로 지음, 조승미 옮김, 동녘 펴냄, 2025년
그런데 자신의 장애를 자기 이야기로 쓰는 것이 무슨 소용일까? 뇌성마비니까 당연히 몸이 불편한 것 아닌가? 이런 피상적 이해에 대해 구마가야는 책을 시작하며 단호하게 선언한다. ‘뇌성마비’나 ‘장애’ 같은 추상적 언어는 알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할 뿐, 실제 경험의 알맹이를 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필요한 것은 자신이 겪어온 세계를 생생하게 표현할 새로운 말과 이야기다. 그래서 그는 “그간 넘어졌고 지금도 넘어지는” 자신의 경험을 읽는 이 역시 함께 느낄 수 있도록 독자를 끌고 “같이 넘어지고 싶다”고 말한다.
그의 다짐대로 ‘재활의 밤’은 통상적인 장애 극복담과는 궤를 달리한다. 청소년기 재활캠프의 치료와 이후 자립 생활의 경험이 중심을 이루지만, 무엇보다 뇌성마비 체험의 “내부에서 본 풍경”을 전달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그가 자신의 몸과 주변 환경의 관계를 새롭게 정의하는 방식이다. 어린 시절 참여했던 재활캠프에서 그는 ‘비장애인의 움직임’을 반복해서 학습해야 했지만, 그 규범적 움직임은 끝내 자신의 몸에 들어오지 못했다.
반대로 성인이 된 뒤 그는 비장애인의 몸을 모방하는 의료적 재활 모델과 결별하고, 자신의 몸에 맞춰 사물과 환경을 다시 조정하기 시작한다. 혼자 살게 된 집의 화장실을 개조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그는 개조 이전에는 몸이 계속 “거부당하는” 감각을 느꼈지만, 자신의 움직임에 맞춰 바뀐 공간에서는 화장실이 자신의 움직임을 “주워준다”고 표현한다. 장애를 가진 몸이 정상성의 규범에 억지로 맞춰지는 것이 아니라, 몸과 사물이 서로의 움직임을 받아내고 조율하는 관계 속에서 새로운 자립과 의존의 가능성이 열린다는 것이다.
나는 책을 읽어가며 뇌성마비를 추체험하는 듯한 감각을 맛보았다. 그 순간 단순히 장애인의 어려움을 시혜적으로 이해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나의 숨은 취약함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낯선 자리에서 발표할 때 몸이 얼어붙던 당혹스러운 기억이 뇌성마비 장애인의 경직 위로 겹쳐 흐르는 순간이 있었다.
물론 장애인의 삶과 비장애인의 삶은 같지 않다. 그러나 신체적 손상이 아니라 사회적 장애에 주목하면, 둘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심연이 아니라 환경에 따라 변하는 상대적인 차이가 있을 뿐이다. 장애란 피부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피부 바깥에, 사회적 관계와 함께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책을 덮으며 획득해야 할 것은 동정의 시선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일상에서 가끔 겪으며 괴로워하는 곤란함을, 저자는 매번, 그것도 자주 겪으며, 그래서 이 곤란함을 풀어내는 데 나보다 훨씬 더 전문가구나!”라고 느끼는 인식의 전환이다.
여기에 당사자연구의 보편성이 있지 않을까. 당사자의 자기 연구는 특수한 주변부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의 약함과 의존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보편적 이야기로 다가온다. 중요한 것은 서로 다른 곤란함을 지닌 사람들이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는지 서로 배우는 데 있고, 이 배움은 당사자의 말하기를 경유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발달장애 당사자연구’, 아야야 사쓰키, 구마가야 신이치로 지음, 유기훈 외 옮김, EM실천 펴냄, 2025년
또 다른 당사자연구자이자 자폐인 아야야 사쓰키는 ‘발달장애 당사자연구’(EM실천 펴냄, 2025)에서 자폐스펙트럼장애가 단순한 커뮤니케이션 능력 부족이 아님을 보여준다. 애초에 커뮤니케이션 장애란 한쪽의 결함만으로 성립하는 문제가 아니다. 그가 보여주는 것은 자폐인이 겪는 감각의 과포화와 정보 처리 방식의 차이, 그리고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적 리듬과 충돌할 때 발생하는 피로와 혼란이다. 비장애인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소리와 빛, 시선과 표정이 어떤 사람에게는 견디기 어려운 자극의 폭풍처럼 밀려올 수 있다. 이때 문제는 개인의 신체 내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신체 감각을 충분히 수용하지 못하는 사회적 환경 쪽에 있다.
당사자의 말하기가 중요한 것은, 당사자가 실제로 겪는 체험이 일반적인 언어나 범주만으로는 좀처럼 서술되거나 분류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각자의 서로 다른 체험을 공유하다보면 이러한 마찰과 몰이해를 외면한 채로는 함께 살아갈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당사자와 비당사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는 일은 시간 낭비나 감상적 고백이 아니다. 그 과정을 통해 이전에는 단지 “이상한 사람” “예민한 사람”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여겨지던 사소한 경험이 공동생활에서 반드시 다루어져야 할 과제로 이해되기 시작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당사자의 말하기는 자기 이야기를 넘어 더 나은 공존을 위한 필수 통과점이 된다.
그래서 당사자연구는 소수자의 영토에 머물지 않는다. 구마가야는 한 강연에서 당사자연구의 지평을 다수자의 삶으로 확장하며 이렇게 말한다. “당사자연구에서 ‘당사자’는 장애를 가진 본인만이 아닙니다. 정신과 의사도, 일반 시민도 망상에 빠져버릴 수 있습니다. 취약한 존재로서의 ‘당사자’는 보편적인 범주입니다.”
자신을 지극히 정상이라 믿는 다수자야말로 자신이 얼마나 쉽게 독단과 망상에 빠질 수 있는지 알아차리지 못하는 존재일지 모른다. 자신의 취약함을 자각하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타인을 단지 ‘교정되어야 할 문제’로 바라보기 쉽다. 그렇다면 다수자 역시 저마다의 삶을 성찰해야 할 또 다른 당사자가 아닐까.
이렇듯 사회를 바꾸는 일과 자기를 바꾸는 일은 연결돼 있다. 지금까지 빛이 비춰지지 않았던 서로 다른 자기들의 경험에 정직한 묘사의 말이 주어질 때, 그 말은 여러 장소에서 상호 참조되며 세상의 딱딱한 규범을 조금씩 녹여내기 때문이다. 동료를 믿고 솔직하게 자기 경험을 이야기하고 공유할 때 그 부산물로서 서서히 사회가 변해간다.
당사자연구자들이 우리에게 권하는 것은 멀찍이 서서 소수자를 동정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같이 넘어지며 서로를 배우자는 초대에 가깝다. 함께 넘어지는 경험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곤란함을 안고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다. 당사자의 이야기를 통과하는 시간이 내 삶의 자리를 되돌아보게 하는 ‘재활의 밤’이 되는 이유다.
박동수 사월의책 편집장·철학책 편집자
*철학책 편집자 박동수가 ‘지금 한국 한복판에서 일어나고 있는 철학 이야기’를 전합니다. 4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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