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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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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합 혐의 대기업이 대형 로펌으로 달려가는 이유?

부와 욕망 좇아 로펌으로 향하는 어제의 공직자들…
현실적 기여와 부작용 모두 고려한 규제 개선 필요해
등록 2011-06-02 18:35 수정 2020-05-03 04:26
» 5월26일 오전 국회에서 권도엽 국토해양부 장관 후보자(오른쪽)의 인사청문회가 열렸다. 인사청문회에 앞서 5월24일 권 후보자는 대형 로펌 김앤장의 고문으로 일하며 국토부와 직접 관련된 용역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겨레 류우종

» 5월26일 오전 국회에서 권도엽 국토해양부 장관 후보자(오른쪽)의 인사청문회가 열렸다. 인사청문회에 앞서 5월24일 권 후보자는 대형 로펌 김앤장의 고문으로 일하며 국토부와 직접 관련된 용역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겨레 류우종

“공정거래위원회의 담합 조사를 받은 대기업들이 가장 먼저 대형 로펌으로 달려가는 비밀이 뭔지 압니까?”

공정위 관련 사건 소송에 밝은 한 변호사의 설명을 들어보자. 리니언시(자진신고감면제)는 남보다 먼저 담합 혐의를 인정한 기업에 과징금을 100~50% 면제해주는 제도다. 담합 적발을 쉽게 하기 위해서다. 대형 담합 사건의 경우 과징금이 수천억원에 달하는데, 리니언시를 잘 활용하면 한 푼도 안 내도 된다. 한 예로 5월26일 4개 정유사가 ‘주유소 시장 나눠먹기’ 담합으로 4348억원이라는 거액의 과징금을 부과받았지만, 리니언시 1순위 업체는 1800억원에 달하는 과징금을 모두 면제받았다. 반면에 다른 업체보다 후순위로 자백한 기업은 과징금 면제 혜택도 못 받고 자기 무덤만 파게 된다. 기업들로서는 리니언시 정보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 공정위는 원칙적으로 리니언시 내용을 일체 비밀로 한다. 그런데도 기업들이 대형 로펌을 찾는 이유는 뭘까? “로펌들이 억대의 고액을 주고 앞다퉈 공정위 출신을 영입하는 이유가 뭐겠습니까?” 변호사는 목소리를 낮추며 되묻는다.

사건 수임, 영향력 행사…“억대 연봉 값한다”

저축은행 사태를 계기로 공직자들의 ‘전관예우’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특히 그동안 전관예우 규제의 ‘사각지대’로 남아 있던 퇴직 공직자들의 로펌행이 큰 논란이 되고 있다.

공직사회는 내놓고 말은 않지만, 속으론 불만이 적지 않다. 한마디로 “억울하다”는 것이다. 경제부처의 한 국장은 “공직자가 로펌에 취업하는 것은 인허가권이나 감독권이 있는 정부부처나 감독기관 출신이 규제 대상인 민간기업이나 금융회사에 감사, 사외이사, 고문 등으로 가는 낙하산 인사와는 전혀 성격이 다르다”며 “로펌 스스로 원해서 영입하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로펌들은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공정위, 국세청 등 경제부처나 감독기관 출신을 선호한다.

장차관이나 1급 등 고위 공직자들은 로펌에서 고문으로 불린다. 그 이하 중·하위 공무원들은 전문위원이라고 한다. 이들은 많게는 수억원의 고액 연봉을 받는다. 권도엽 국토해양부 장관 내정자는 지난해 차관을 그만두고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에 들어가 5개월 동안 1억2천만원을 받았다. 올해 초 이재훈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와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는 로펌에서의 전관예우 논란으로 낙마했다. 특히 정 후보는 퇴직 뒤 7개월 동안 무려 7억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경제부처의 한 국장은 “우리 속담에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아픈 것은 못 참는다는 말이 있다”며 로펌행에 대한 비판론을 시샘 탓으로 돌렸다.

‘밑지고 하는 장사는 없다’는 옛말이 있듯이, 로펌이 고액 연봉을 주고 퇴직 공직자들을 영입하는 것은 그 이상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공정위 관련 사건을 많이 맡는 한 변호사는 “공정위 관련 사건의 경우 줄어든 과징금의 3~5% 정도를 성공 보수로 받는 게 일반적”이라고 말한다. 1천억원의 과징금이 예정된 사건이 최종적으로 500억원으로 줄었다면, 성공 보수만 15억~25억원에 달하는 셈이다. 대형 로펌의 한 고문은 “퇴직 공직자를 가장 많이 영입한 로펌은 ‘법조계의 삼성’으로 불리는 김앤장으로, 특정 경제부처 출신만 20여 명에 달한다”며 “최근 경실련이 국내 상위 6대 로펌의 고문과 전문위원이 100명 남짓이라고 밝혔는데 실제론 훨씬 많다”고 말했다.

퇴직 공직자들이 로펌에서 하는 일은 컨설팅, 사건 수임, 정보 수집, 영향력 행사 등 다양하다. 전문지식을 활용한 컨설팅은 문제될 게 거의 없다. 김앤장 관계자도 “변호사가 전문화되지 않은 분야가 꽤 있어 퇴직 공직자 영입으로 전문성을 보완하고 서비스의 질을 높인다”고 설명한다. 이는 중·장기적으로 정부의 업무 처리 능력을 높이는 데 좋은 자극제가 되기도 한다. 경제부처의 한 국장은 “퇴직자들이 정부의 사건 처리 허점을 찾아내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정부도 이에 맞서 업무 처리에 더 만전을 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공직 재임 때 구축한 인적 네트워크와 정보를 이용한 사건 수임과 출신 부처를 통한 정보 수집, 고객 기업을 위해 제재 수준을 낮추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 등은 정부의 정상적인 기능 수행을 가로막고 사회정의에 역행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한 예로 로펌을 통한 사전 정보 유출은 정부 조사에 치명적이다. 정부의 한 고위 간부는 “정보 유출 우려 때문에 조사 착수 보고를 최고 윗선에게만 하는 경우도 있다”며 “실제 조사 정보가 사전에 새서 조사를 못한 일도 있다”고 털어놨다.

“일방적 규제는 편법 로펌행 양성할 것”

정부는 공직자윤리법 개정을 통해 재취업 규제 대상에 대형 로펌을 포함시키고, 퇴직 공직자의 재직시 업무연관성 범위도 더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현행 공직자윤리법은 퇴직 공직자들이 퇴직 전 3년 이내에 소속했던 부서의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영리사기업체에는 퇴직 뒤 2년간 취업할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취업제한 대상 업체에서 로펌이 빠지는 등 전관예우 폐해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많다. 공직자윤리법 개정 필요성이 제기된 것은 어제오늘이 아니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개정안도 16건이나 된다. 가장 최근에는 5월25일 조승수 진보신당 의원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에서 청원한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퇴직 공직자의 로펌행 규제에 대해서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경제부처의 한 국장은 “취업 자유 침해로 위헌 소지가 있고, 퇴직자들의 전문성을 사장시키는 것도 국가적 손실”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경제부처의 간부는 “로펌으로 간 퇴직 관료들이 친정인 정부부처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몰라서 하는 소리”라며 “무조건 로펌행을 막기보다는 이런 이런 것은 해서는 안 된다는 행위 규제로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퇴직 공직자들의 재취업을 강력히 규제하려면 현직에 있을 때 신분보장과 대우부터 제대로 해줘야 한다. 하지만 공무원의 정년 보장이 말뿐이 된 지 오래고, 대우는 민간 대기업에 비해 많이 떨어진다. “이렇게 좋은 세상이 있는 줄 몰랐다.” 로펌으로 자리를 옮긴 경제부처의 전직 간부가 술자리에서 털어놓은 말이다. 공직에 있을 때보다 업무 부담은 적은 대신 보수는 훨씬 많고 하고 싶은 운동도 마음껏 할 수 있으니 얼굴색부터 달라졌다고 한다. 로펌의 한 고문은 “현실적 수요가 있는데 무조건 법으로 막으면 또 다른 편법을 낳을 것”이라고 말했다. 퇴직 공직자들이 재직시 업무연관성이 있는 민간기업으로 재취업하는 것을 막으니까, 일부 재벌은 산하 경제연구소 등을 ‘일시적 정류소’로 활용하는 편법을 동원했다.

일부 부처는 공무원 행동강령이나 퇴직공무원 윤리규정을 강화하고 있다. 공정위의 경우 지난해부터 퇴직 공무원은 퇴직 뒤 6개월 동안 공정위를 출입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일부에선 아예 미국처럼 로비스트 양성화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음지에서 이뤄지는 로비를 양지로 끌어내자는 취지다. 17대 국회 때는 로비스트 양성화 법안이 잇달아 발의됐다. 하지만 우려의 시선도 적지 않다. 양성화의 관건인 로비스트에 대한 행위 규제가 현실 여건상 제대로 이뤄질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공직자와 로펌의 인식 전환도 요구된다. 경제부처의 한 국장은 “공직자들이 퇴직 후에는 부를 좇는 게 아니라 현직에서 쌓은 전문성으로 사회를 위해 봉사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로펌의 한 관계자는 “로펌의 탐욕이 근본 문제”라고 지적했다. 결국 퇴직 공직자의 로펌행 문제는 사회 전체의 인식 전환과 관련 규범 및 제도 개선이라는 종합적 접근이 요구된다.

정부 차원의 ‘회전문 인사’ 근절 필요해

이와 관련해 대통령부터 장차관 인사와 관련해 로펌을 이용한 ‘회전문 인사’를 근절하겠다는 선언을 할 필요가 있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는 로펌을 이용한 회전문 인사의 전형이다. 그는 김대중 정부에서 재정경제부 장관을 지낸 뒤 김앤장 고문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2004년 노무현 정부에서 경제부총리로 재기용됐는데, 부인의 투기 의혹으로 중도 하차하자 재차 김앤장으로 돌아갔다. MB 정부에서는 로펌 관련 회전문 인사가 유난히 많았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한덕수 주한 미대사, 이재훈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인사청문회에서 낙마) 등이 대표적이다. 회전문 인사를 남발한 MB 정부가 퇴직 공직자 전관예우 관행을 문제 삼는 것을 국민은 뭐라고 할까?

곽정수 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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