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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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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진정한 변화 이재용 부회장의 몫

김상조 교수 강사로 초빙하고 협력사 직원들 인센티브 도입한 삼성
혁신과 변화는 이재용 부회장이 준법과 윤리경영 주도할 때 가능해
등록 2013-07-24 10:46 수정 2020-05-03 04:27
지난 5월31일 서울 중구 순화동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2013년 호암상 시상식’에 부인인 홍라희 리움미술관 관장과 함께 참석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이 회장 부부 뒤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모습이 보인다.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지난 5월31일 서울 중구 순화동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2013년 호암상 시상식’에 부인인 홍라희 리움미술관 관장과 함께 참석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이 회장 부부 뒤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모습이 보인다.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삼성 사장단이 지난 7월16일 김상조 한성대 교수를 강사로 초청했다. 강연 주제가 삼성 의 아킬레스건인 경제민주화라는 점도 눈길 을 끌지만, 무엇보다 강사가 예사롭지 않다. 김상조 교수가 누구인가? 재벌 개혁과 경제 민주화 운동을 주도해온 진보 성향의 경제 학자로, ‘재벌 개혁의 전도사’라는 닉네임을 갖고 있다. 그동안 삼성과의 악연을 꼽자면 열 손가락을 다 동원해도 모자란다. 최근에 도 삼성물산이 카자흐스탄 구리광 개발업체 인 카작무스의 주식을 헐값에 매각해 회사 에 최소 1400억원의 손실을 끼쳤다며 이건 희 회장 등을 배임 혐의로 고발했다. 또 4대 강 공사 입찰 담합으로 적발된 삼성물산 등 6개 건설사의 등기이사들을 상대로 공정거 래위원회로부터 부과받은 1천억원의 과징금 을 대신 물어내라며 주주대표소송을 벌이겠 다고 발표했다. 과거에는 더욱 극적인 일도 있었다. 2004년 2월 삼성전자 주총에서는 “불법 대선자금을 댄 이건희 회장 등은 징계 받아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다가, 삼성 쪽 경비원들에 의해 강제로 끌려나갔다.

확대해석 경계하는 삼성

삼성전자는 최근 협력사 직원들에 대한 인센티브 지급제도를 내년부터 신설하기로 결정했다.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함께 일하는 환경·안전 관련 35개 사내 하청업 체 소속 직원 4천여 명이 대상이다. 삼성전 자는 협력사들의 업무성과를 연말에 평가 해 A·B·C등급을 부여한 뒤 소속사 직원들 에게 1인당 500만~150만원씩 지급할 계획 이다. 삼성디스플레이 등 다른 계열사들도 도입을 적극 검토 중이다. 삼성이 본사 직원 이 아닌 협력업체 직원들에게 성과급을 지 급하는 것은 창사 이래 처음이다. 삼성의 협 력사 인센티브제는 임직원에게 시행 중인 초과이익분배제(PS·프로핏셰어링)를 떠오 르게 한다. 삼성은 이익목표를 달성하면, 이 익초과분의 20%를 다음해 초 임직원들에 게 성과보수(인센티브)로 나눠준다. 삼성은 그동안 상생경영 차원에서 PS 지급 대상을 협력사 종업원들로 확대하자는 ‘초과이익 공유제’ 제안을 비판해왔다. 이건희 회장은 2011년 3월 “내가 어릴 때부터 기업가 집안 에서 자랐고 학교에서 경제학 공부를 계속 해왔는데, 그런 얘기는 들어보지도 못했다. 사회주의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자본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공산주의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모르겠다”며 색깔론까지 동원 해 공격했다

이들 ‘두 개의 사건’을 ‘삼성의 변화’와 연결 지을 수 있을까? 삼성그룹의 한 임원은 “김 교수의 초청은 삼성이 다음 행보를 결정하 는 데 참고하려는 뜻이 아니겠느냐”고 나름 의 의미를 부여했다. 2008년 이후 세계는 자본주의 위기로 상징되는 급격한 변화의 과정을 밟고 있다. 한국 사회도 정치민주화 에 이어 경제민주화 시대를 맞고 있다. 기업 의 변화는 외부 환경에 적응하는 자연스런 과정이다. 이제 삼성이 변할 차례다.

삼성은 확대해석을 경계하는 모습이다.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의 한 임원은 김 교수 의 초청에 대해 “(삼성과) 생각이 다른 사람 의 의견도 청취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도 협력사 인센티브제에 대해 “경영 실적에 연동해 성과를 나누는 초과이익공 유제와는 다르고, 안전사고를 예방하고 무 사고를 독려하기 위한 일종의 안전 인센티브 제도”라고 선을 그었다.

삼성은 과거 큰 위기를 맞을 때마다 국민 앞에서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사죄하고, 변 화를 약속했다. 2006년 안기부 X파일 사건 등 ‘삼성공화국’ 논란으로 인한 ‘2·7 선언’과 2008년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으로 촉 발된 삼성 비자금 의혹과 특검 수사에 뒤이 은 ‘4·22 선언’이 대표적 사례다. 하지만 그 약속들은 뼈아픈 자기반성보다는 비판 여론 무마용이었다는 지적을 받는다. 한 예로 삼성은 4·22 대국민 사과에서 이건희 회장의 경영 퇴진과 그룹의 사령탑인 구조조정본부 해체를 제시했다. 하지만 이 회장은 2년도 안 돼 경영에 복귀했고, 구조본은 이름만 미래전략실로 바뀐 채 여전히 막강한 힘을 행사하고 있다. 2·7 대국민 사과 때도 마찬가지다. 삼성은 각계의 외부 인사로 구성된 ‘삼성을 지켜보는 모임’(삼지모)을 만들며 변화를 다짐했다. 7년이 흐른 지금 삼지모를 기억하는 사람은 삼성 안에서조차 찾기 힘들다.

지배구조 후진성, 경영성과 약점으로

이번에도 삼성이 변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외부에 보여주기 위한 ‘과시용’일 수 있다. 하지만 삼성이 처한 상황은 그리 여유롭지 못한 듯하다. 김상조 교수는 강연에서 “삼성은 놀라운 경영성과에도 불구하고 명과 암이 50 대 50의 존재로 남아 있고, 삼성이 비즈니스와 관련한 의사결정에는 그렇게 똑똑하면서 지배구조와 관련한 의사결정에서는 왜 이해하기 어려운 면모를 보이느냐”고 물었다. 이제는 삼성 지배구조의 후진성이 삼성의 경영성과에도 점점 더 치명적인 약점이 되고 있다. 삼성전자의 주가는 최근 놀라운 영업이익 달성에도 불구하고 곤두박질쳤다. 삼성전자를 먹여살리고 있는 휴대전화 사업에서 사상 최대 실적 행진이 머지않아 끝날 것이라는 ‘공포’ 때문이다. 그 배경에는 다름 아닌 ‘차이나리스크’가 도사리고 있다. 삼성전자의 한 임원은 “삼성전자의 중저가폰은 이미 중국 업체들에 잠식되고 있고, 현재 높은 이익을 창출하는 프리미엄폰도 중국 업체와의 기술 격차가 갈수록 좁혀지고 있다”고 털어놨다. 일본의 소니가 삼성전자에 추월당한 것처럼, 삼성전자가 화웨이나 레노버 같은 중국 기업에 추월당할 위험은 상존한다.

삼성이 살길은 끊임없는 혁신과 창조경영이다. 이건희 회장도 얼마 전 “삼성의 미래는 신사업·신제품·신기술에 달려 있다. 기업 문화를 더 개방적이고 유연하며 혁신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역설했다. 하지만 아이로니컬하게도 삼성에 필요한 개방성과 유연성, 창의성을 가로막는 최대 장애물은 다름 아닌 이건희 회장을 정점으로 한 제왕적 지배구조라는 지적이 많다. 삼성전자에 영입된 한 외국인 임원은 “현재의 삼성 체질로는 창조나 창의는 기대하기 힘들다”고 털어놨다. 삼성전자의 한 전직 임원도 “삼성 조직은 이건희 회장이라는 제왕을 정점으로 수직적 위계질서를 갖고 있다. 윗사람의 눈치를 살펴야 살아남는 조직 풍토에서 어떻게 창의적인 발상이 꽃피겠느냐”고 반문했다.

삼성의 진정한 변화는 이처럼 자기부정을 수반한 환골탈태를 요구한다. 전근대적이고 탈법적인 무노조 경영은 또 다른 사례다. 최근 삼성전자서비스에서 일하는 1만여 명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불법 파견 시정을 요구하며 노조 설립을 선언했다. 삼성은 이에 대해 “사내하청 협력사의 노사 간 문제일 뿐”이라며 남의 일처럼 말한다. 하지만 사내하청 문제로 7년간 법적 공방을 벌였던 현대차 임원의 말은 다르다. “삼성이 일상적으로 작업 지시를 내리고 인사, 노무, 경영권 행사에서 사내 하청업체의 독립성이 없었던 만큼 100% 불법 파견에 해당한다. 현대차 사례보다 더욱 명확하다.” 삼성의 무노조 경영은 창업자인 이병철 선대 회장과 아들인 이건희 회장의 아집 때문이다. 총수가 생각을 바꾸지 않는 한 일개 월급쟁이 사장들로서는 변화가 불가능하다.

창의 꽃피우는 새 삼성 만들어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최고 권력자가 자신의 과오를 스스로 인정하는 일은 드물다. 결국 삼성의 변화는 차기 총수의 몫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건희 회장의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6월 말 중국 시안의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건설 현장에서 방중 중이던 박근혜 대통령을 영접하며, 자신이 차기 삼성 총수임을 세상에 ‘선언’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이 삼성의 진정한 변화를 만들지 못한다면 경영권 승계의 길은 험난할 수밖에 없다. 이건희 회장은 20년 전 “마누라와 자식을 제외하고 모두 바꾸라”며 신경영 선언을 했다. 이 부회장도 삼성이 변화를 주도하는 역량을 보여줘야 한다. 그리고 준법과 윤리경영을 기본으로 하면서, 사회책임과 경제민주화라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며 사회와 소통하고, 창의와 혁신이 꽃피는 새로운 삼성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재용의 시대는 없다.

곽정수 경제부 선임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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