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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불안 증후군’ 막을 야권 단일화의 조건들

등록 2012-11-20 20:59 수정 2020-05-03 04:27

새누리당의 박근혜 대선 후보와 대선 공약 개발을 책임지고 있는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 간의 갈등이 심상치 않다. 경제민주화의 대부 격인 김 위원장이 새누리당에 들어간 뒤 경제민주화를 둘러싼 갈등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9월 이후에만 벌써 세 번째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왼쪽)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가 지난 11월6일 저녁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대선 후보 단일화 협상을 마친 뒤 회담장을 나서고 있다. 사진 김명진 기자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왼쪽)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가 지난 11월6일 저녁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대선 후보 단일화 협상을 마친 뒤 회담장을 나서고 있다. 사진 김명진 기자

박근혜, 김종인안의 주요 내용 제외

지난 9월 초에는 이한구 원내대표가 경제민주화를 “정체불명”이라고 공격하며 김종인 위원장과 정면 충돌했다. 10월 초에는 김 위원장이 박 후보에게 “나와 이한구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라”며 당무를 거부했다. 새누리당 의총에서 경제민주화 당론 채택이 무산된 데 대한 반발이었다.

박 후보와의 갈등은 대선에서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경제민주화 공약을 둘러싼 이견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 10월 말 박 후보에게 대선공약안을 보고했다. 하지만 박 후보는 11월16일 경제민주화 정책을 발표하며, 김 위원장의 초안 가운데 기존 순환출자 의결권 제한, 중요 경제범죄자의 ‘국민참여재판’ 회부, 재벌 계열사가 불공정·불법 행위를 반복할 경우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분 조정을 강제하는 ‘지분조정명령제도’, 주요 경영진의 급여 보상 내역 개인별 공시, 대규모 기업집단법 도입 방안을 제외했다. 새누리당 핵심 관계자는 “나머지 안건은 대부분 (공약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 의지가 약해졌다는 공세는 어불성설”이라고 반박한다. 하지만 이는 이번 갈등의 핵심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두 사람 간 이견의 뿌리에는 경제민주화와 성장이라는 두 개의 거대 경제담론을 바라보는 시각차가 놓여 있다. 새누리당의 성장론자들은 “정치권의 과도한 경제민주화로 기업의 의욕이 떨어지고 국민이 불안해한다. 정부가 성장잠재력 확충과 일자리 만들기에 좀더 확실한 메시지를 보내줘야 한다”고 말한다. 경제민주화와 성장(또는 투자 활성화 및 일자리 창출)을 대립적으로 바라보는 재벌들의 시각과 같다. 김종인 위원장은 이를 정면으로 비판한다. “개혁과 성장은 배치되는 것이 아니다. 현 위기를 극복하려면 (경제민주화를 통해 새로운 성장 방식을 찾는) 근본 처방이 필요하다. 재벌 위주의 성장정책은 이미 한계를 보인 것 아닌가?”

박근혜 후보는 지난 11월8일 경제5단체장과의 만남에서 경제의 대내외적 위기 상황에 대해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다. “경제민주화는 어떤 특정 대기업 때리기나 기업을 편가르자는 것이 결코 아니고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자는 것이다. 경제민주화와 더불어 성장잠재력을 확충하고 미래 성장동력을 키우는 것도 중시해야 한다. (경제민주화와 성장은) 서로 상충하거나 선후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다.” 박 후보의 대선 전략이 경제민주화 단일트랙에서, 경제민주화와 성장(또는 경기부양)이라는 투트랙으로 바뀌었음을 보여준다. 김종인 위원장은 “(박근혜의 선거 전략 변화를) 지난 11일 만났을 때 처음 알았다”고 털어놨다.

개혁 동반자이자, 개혁 이탈 감시자로

경제민주화와 성장이라는 투트랙 전략은 평상시에는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경제위기 상황에서는 다르다.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는 언제든 경제위기를 경제민주화 회피 명분으로 내세울 수 있다. 이런 위험성은 이미 현실화하고 있다. 박 캠프의 김광두 서강대 교수는 “경제위기 때문에 경제민주화의 속도 조절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박 후보와 김 위원장의 갈등은 일시적으로 봉합될 수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처음부터 ‘궁합’이 맞지 않는 잘못된 만남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럼 다른 대선 후보와 정책책임자들 간의 관계는 어떨까?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의 정책책임자는 이정우 경북대 교수다. 이 교수는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냈다. 재벌과 관료들에 맞서 어려움을 겪다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강행을 계기로 사임했다. 이런 이 교수가 노 전 대통령의 절친이자 정치적 계승자인 문재인 후보의 정책좌장을 맡은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부부 관계에 비유하자면, 한번 이혼했다가 재결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교수는 평소 참여정부의 최대 실책으로 재벌(삼성)과 관료 문제를 꼽아왔다. 재벌과 관료는 경제민주화와 상극이다. 문 후보가 참여정부의 실책(재벌 개혁 실종)을 되풀이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면, 언제든 이혼의 아픔이 재연될 수 있다.

안철수 무소속 후보의 정책책임자는 장하성 고려대 교수다. 그는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운동을 이끈 대표적 재벌개혁론자다. 개혁진보 성향의 전성인 홍익대 교수도 안 캠프에서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 영향 때문인지 안 후보는 재벌개혁특별위원회 신설을 포함한 강력한 재벌 개혁 정책을 내놓았다. 금융민주화와 관련해서는 모피아(금융관료) 척결을 위해 금융위원회를 폐지하는 개혁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안 후보와 개혁 성향 정책책임자들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서로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한다. 부부에 비유하자면. 서로의 성격이나 생각을 잘 알지 못하면서 첫눈에 반해버려 결합한 ‘과속결혼’이라고 할까?

사석에서 만나는 재벌그룹 임원들 중에는 “안 후보는 국민들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라고 얘기하는 이가 있다. “안 후보는 부잣집에서 태어나, 좋은 대학을 나왔고, 의사와 기업체 경영자를 지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은 다 하고 산 셈이다. 본인의 능력도 뛰어나지만, 그럴 수 있는 돈과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그의 태생만 보면 경제민주화와는 거리가 있다. 대통령이 되면 지금과는 다른 모습을 보일 것이다.” 한 사람을 평가할 때 배경과 과거 경력만으로 단정짓는 것은 위험하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혁명가 체 게바라의 조부는 라틴아메리카 해방군과 싸운 페루의 부통령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안 후보의 생각이나 철학을 충분히 검증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했다는 불안감은 여전하다.

문 후보와 안 후보가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개혁 불안 증후군’은 단일화 과정에서 반드시 해결돼야 한다. 두 후보의 당면 과제는 단일화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에게 더욱 중요한 것은 단일화의 얼굴(후보)이 아니라, 후보 단일화→대선 승리→(경제민주화) 공약 이행을 통해 실질적으로 삶이 개선되는 것이다. 후보 단일화가 이뤄져도 국민에게 이런 믿음을 주지 못하면 야권의 대선 승리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단일화의 핵심 과제는 경제민주화를 비롯한 핵심 공약을 제대로 시행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마련해 국민에게 신뢰를 얻는 것이다. 두 캠프의 정책 단일화는 그 최소 조건이다. 단일화 이후에도 야권 지지세력의 협력을 붙들어맬 수 있는 추가적인 장치가 강구돼야 한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김종인 위원장과의 결별까지 각오하며 재벌에 구애를 하는 상황에서 두 후보의 협력은 대선 이후에도 개혁의 성공을 위해 필수적이다. 공동정부 카드는 대선 이후에도 개혁의 성공을 담보할 유력한 안전장치 중 하나다. 서로가 개혁의 동반자이자, 개혁 이탈을 막는 감시자가 되는 것이다. 국민을 위한 협력은 일각에서 말하는 권력 나눠먹기나 야합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차기 정부에서 개혁을 주도할 핵심 포스트에 적합한 인물을 미리 합의하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다. 이를테면 재벌개혁특위 위원장에 이정우 교수나 장하성 교수를 미리 못박는 것이다.

개혁은 만들어가는 것

개혁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다. 노무현의 실패가 이명박을 불러왔다. 이명박의 실패는 정권 교체가 역사적 순리임을 보여준다. 다수 국민의 바람과 역사의 순리가 구현되려면 누구로 단일화되더라도 개혁이 성공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곽정수 한겨레 선임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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