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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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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출신 인사의 '고백'

MB 질타 등 저축은행 사태로 여론의 몰매맞는 위기의 금감원…청와대의 낙하산 인사 금지, 금산분리 완화 철회가 근본 대책
등록 2011-05-19 15:22 수정 2020-05-03 04:26

금융감독원(금감원)이 난타를 당한다. 부패한 금융권력으로 몰리며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설립 이래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예고 없이 금감원을 방문해 “나쁜 관행과 조직적 비리가 있었다”고 질타했다.
사전 예금 인출 사건의 진앙지인 부산저축은행의 검찰 수사 결과는 한국 금융의 후진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대주주는 7조원대의 불법대출과 분식회계를 자행했다. 고객이 맡긴 돈을 사금고처럼 유용한 것이다. 금감원은 감사 대상인 저축은행과 한 몸처럼 유착했다. 현직에서는 검사에서 드러난 불법을 눈감아준 대가로 거액의 뇌물을 챙기고, 감사 사실을 사전에 알려줘 비리를 은폐하도록 했다. 퇴직한 뒤에는 감사로 취임해 대주주의 불법행위를 도왔다.

구조적 부조리에 뿌리 둔 금감원 사태

금감원 직원들의 추가 비리 소식도 하루가 멀다 하고 이어진다. 검사를 잘 봐준 대가로 거액의 뇌물을 받은 간부, 대출을 알선해주고 돈을 받은 직원, 불법을 눈감아준 대가로 고급 승용차를 요구한 직원, 심지어 이사비 명목으로 억대의 금품을 요구한 간부까지 유형도 다양하다. 이를 두고 금감원이 아니라 금비원(금융비리비호원)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금감원의 한 간부는 “사기 저하, 명예 실추 차원을 넘어 일종의 공황상태”라고 허탈해했다.

지난 5월4일 오전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융감독원을 불시에 방문해 “나쁜 관행과 조직적 비리가 있었다”고 질타했다.

지난 5월4일 오전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융감독원을 불시에 방문해 “나쁜 관행과 조직적 비리가 있었다”고 질타했다.

금감원에 지금의 시련은 시작에 불과할 수 있다. 금융회사의 감사로 내정됐던 금감원 출신 간부들의 사퇴가 이어지고 있다. 감사 내정자는 증권 쪽에 7~8명, 은행과 보험 쪽에 각각 3~4명에 달한다. 한쪽에서는 평균수명 100살 시대가 다가왔다고 하는데, 50대 초·중반에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돼버린 것이다. 금감원은 퇴직 임직원의 금융회사 감사 추천 관행 폐지, 재산등록 대상 확대 등의 자체 개혁안을 긴급히 내놓고 대규모 인사도 단행했다. 하지만 대통령은 금감원의 자체 개혁 추진안에 퇴짜를 놓았다. 대신 외부 인사들이 주도하는 민관 합동 태스크포스를 출범시켰다. 금감원이 사실상 독점해온 금융회사에 대한 감독권을 한국은행 등으로 분산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하지만 금감원 감독 부실 사태가 단지 ‘금감원 때리기’로 해결될 일인지는 의문이다. 그럴 사안이라면 회초리가 아니라 몽둥이를 들어서라도 금감원의 못된 버릇을 고쳐야 한다. 그러나 금감원 사태는 좀더 구조적인 부조리에 뿌리를 두고 있고, 이를 시정하지 않는 한 그 어떤 개혁안도 미봉책에 불과할 것이라는 내부 지적이 나온다.

“바늘방석에 앉은 것 같은데, 이럴 때 보자고 하나?” 전직 금감원 간부 출신인 한 금융회사 감사는 곤혹스러워 했다. 평소 안면을 내세워 억지를 부리다시피 해서 자리를 마련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또 지금 뭐라 해도 여론이 들은 척이나 하겠나, 욕이나 더 먹기 십상이지….” 그는 한사코 손을 내저었다. 하지만 세상에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는데, 그래도 하고 싶은 말이 있지 않겠느냐고 매달렸다. 망설이던 그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한번 물꼬가 터지자 마음속에 쌓였던 얘기들이 쏟아졌다.

그는 저축은행의 잘못을 모두 금감원 탓으로 돌리는 여론에 서운함을 나타냈다. “금감원 직원들이 저축은행의 부실·불법을 알고서도 뇌물을 받고 봐준 것처럼 보는데, 잘 몰라서 하는 소리다.” 검찰처럼 (은행이) 죽은 뒤에 조사하면 차라리 불법을 밝혀내기 쉽지만, 살아 있을 때는 어렵다는 얘기다. “은행이 부실 여신을 정상 여신인 것처럼 속였더라도, 지금처럼 시간과 인원 제약이 있는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일일이 밝혀내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그럼 금감원 전·현직 간부와 저축은행의 유착 비리가 속속 드러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의 얼굴이 곤혹스러움에 일그러졌다. “어느 조직에나 문제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일부가 잘못했다고 해서 마치 전부가 썪은 것처럼 해서는 안 된다.” 임직원의 비리를 예방하지 못하고 청렴도 관리에 소홀한 것은 질책받아 마땅하지만, 금감원 전체를 마치 ‘비리집단’처럼 내모는 것은 지나치다는 항변이다.

MB정부 들어 더 심해진 금감원 낙하산 인사

그는 더욱 심각한 것은 사태의 근본 원인에는 눈감고 빙산의 일각처럼 겉으론 드러난 문제들만 보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럼 사태의 본질은 무엇일까? 그는 “금감원 인사의 파행”이라고 말한다. ‘인사가 만사’라고 했던가?

금감원 임원은 원장, 감사, 부원장 3명, 부원장보 9명 등 모두 14명이다. 이 중 외부 인사는 재무관료 출신인 권혁세 원장, 감사원 출신인 박수원 감사를 포함해 절반에 가까운 6명(43%)이다. 지난 4월 정기 인사 이전에는 외부 인사 비율이 절반을 넘었다. “정부부처도 외부 인사가 장관을 맡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그 밑은 조직 출신들이 맡는다. 하지만 금감원은 고위직이 재무관료들의 인사 적체 해소 수단이나 정치적 낙하산의 대상으로 전락해 금감원 출신들이 설 자리가 없다.”

금감원 직원들은 내부 승진이 바늘구멍인 것은 물론 정년(58살) 보장도 제대로 안 된다. 승진 탈락자는 인사 적체 해소를 명분으로 정년보다 몇 년 앞서 보직에서 물러나는 것이 관행이다. 조직이 금융회사 감사 등 취업을 알선해주는 데에는 이런 구조적 요인이 작용한다. 직원들은 퇴직 몇년 전부터 낙하산 대상 금융회사 업무와 무관한 부서에서 일한 뒤 이직하는 식의 편법 경력세탁을 한다.

인사가 투명하고 공정하다면 외부 인사 기용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그는 “금감원 간부 인사는 능력보다 정치적 배경에 의해 좌우된다”고 말한다. 간부들은 일을 열심히 해서 인정받기보다 청와대에 줄을 대는 데 혈안이 돼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원장에게 인사권이 없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다. 그는 “왜 청와대에서 금감원 간부 인사에 일일이 전화를 해야 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인다. 인사 때마다 금감원 노조의 낙하산 반대가 단골 행사가 됐다. 그는 “이런 금감원의 조직문화와 분위기에서 직원들에게 금융시장 파수꾼으로서 자부심이나 소명의식을 기대하는 것은 ‘우물에서 숭늉 찾기’”라고 말한다.

금감원 인사에 대한 청와대의 전횡은 MB 정부 들어 더욱 노골화됐다. “이전에는 청와대 입김이 임원 인사에만 작용했는데 지금은 국장급까지 확대됐다.” 지난 4월 임원 인사 때는 ‘고서영’ 인사라는 신조어가 나돌았다. 고려대·서울대·영남권 인사가 중용됐다는 얘기다. “직원들은 누가 어느 줄인지 다 안다. 모 임원 승진자는 대학 동기인 청와대 고위 관계자의 입김 때문이라는 얘기가 돌았다.”

그는 금감원이 막강한 감독 권한을 사유화했다는 비판에도 선뜻 동의하지 않았다. 금감원의 감독은 금융회사 윗선은 손대지 못하고 아래 직원들만 잡는 반쪼가리라는 것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금융회사의 의사결정을 하는 경영진이 제 역할을 하고 지배구조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보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과장·대리 같은 말단 직원들의 작은 실수를 잡는 역할에 그치고 있다.” 한국 금융권에는 5대 천왕이 군림한다. 현 금융권의 실세인 강만수 산은금융, 이팔성 우리금융, 어윤대 국민금융, 김승유 하나금융, 한동우 신한금융 회장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들 중 4명이 대통령과 가까운 이른바 실세다. “금감원이 이들 5대 천왕을 제대로 감사할 수 있겠나? 이들은 금감원장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이뿐만이 아니다. “개별 금융사에는 수많은 사외이사들이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정치적 줄을 타고 낙하산으로 임명된 사람들로, 금감원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그는 금감원의 감사 방식과 대상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금산분리 완화가 낳은 대주주 사금고화

금감원의 인사와 감독 실패의 뿌리에는 청와대가 똬리를 틀고 있다. 과거 정권에서 이런 요인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현 정부 들어 더욱 심해졌다는 게 금융계의 시각이다. MB는 금융산업 발전을 명분으로 금산(금융·산업자본)분리 완화를 강행했다. 금산분리 완화 반대론의 핵심은 대주주의 사금고화에 대한 우려다. 부산저축은행은 대주주 사금고화의 전형을 보여줬다. MB의 주장대로 제2금융권은 물론 은행까지 산업자본의 지배를 허용했다가 대주주의 사금고화가 현실화한다면, 국가경제 전체를 뒤흔드는 엄청난 재앙이 될 가능성이 높다.

MB는 금융산업의 선진화를 선거공약으로 내걸었지만 한국 금융의 후진성만 더욱 심화시켰다. MB는 금감원의 도덕적 해이를 호통치기에 앞서 자신과 청와대의 잘못부터 반성하는 것이 순서다. 그래야 금감원의 고질적 비리를 청산하고, 금융산업의 건전한 발전과 소비자 보호가 가능하다.

곽정수 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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