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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할 것인가 바꿀 것인가

애도하고 추모하고 분노한 뒤에…
가만히 있으면 언제 우리에게 또 다른 비극이 닥칠지 몰라
등록 2014-05-09 11:16 수정 2020-05-03 04:27
영화 〈후쿠시마의 미래〉 마지막은 체르노빌을 방문하고 온 사람들이 원전 반대 집회에 참석하는 것으로 끝난다. 일본을 탈출하기보다는 일본을 바꾸는 것을 택한 것이다. (주)리키필름 제공

영화 〈후쿠시마의 미래〉 마지막은 체르노빌을 방문하고 온 사람들이 원전 반대 집회에 참석하는 것으로 끝난다. 일본을 탈출하기보다는 일본을 바꾸는 것을 택한 것이다. (주)리키필름 제공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4월16일 이후, 여러 행사나 일정들이 취소됐다. 그러나 강연 일정 중에 몇 개는 예정대로 진행됐다. 주최한 쪽에서 취소하는 것도 고민했지만, 이럴 때일수록 모여서 얘기를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예정된 강연 주제는 이런 것들이었다. 경제성장만 추구해온 대한민국은, 원전 밀접도 세계 1위 국가, 온실가스 배출 세계 7위 국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두 번째로 노동시간이 긴 국가,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소득·빈부 격차가 극심해진 국가, 청소년들의 주관적 행복도가 가장 낮고 자살률이 높은 국가, 노인 빈곤율과 자살률도 매우 높은 국가. 한마디로 행복이나 ‘좋은 삶’을 추구할 수 없는 국가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경제성장이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미신에서 벗어나서 개인의 삶과 사회의 방향을 ‘녹색’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 준비된 강연의 요지였다.

자식만은 여기서 살게 하기 싫다

그러나 세월호 사고가 일어난 이후라, 자연스럽게 세월호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강연을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모두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차올라오는 슬픔과 분노를 갈무리하기는 쉽지 않았다. 어떤 여성분은 ‘차라리 자식을 이민 보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했다. 본인은 못 떠나더라도 자식만은 이런 사회에서 살게 하기 싫다는 것이다.

이 얘기를 듣고 갑자기 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생각났다. 이 다큐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경험한 뒤 일본 시민들이 우크라이나를 방문해서 겪는 일들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방문 동기는 1986년에 일어난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지금은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가 궁금해서였다. 일본 정부가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는 상황에서, 후쿠시마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가 방문객들의 관심사였다.

이들이 부딪힌 현실은 끔찍했다. 아직도 체르노빌 원전 주변에서는 높은 방사선량이 검출됐다. 첨단 신도시로 건설됐던 도시는 폐허가 되었다. 원전에서 유출된 방사능에 땅이 오염되었고, 그 땅에서 자란 먹거리를 먹은 어린이들은 암, 심장병, 그 밖에 원인을 알지 못할 온갖 질병을 앓고 있었다. 어느 학교를 방문해서 학생들에게 ‘아픈 사람 손들어보라’고 했을 때, 대부분의 학생이 손을 들던 장면을 잊을 수 없다.

이런 상황을 보고 돌아온 한 참석자는 ‘아이들아 도망쳐. 여기 있으면 위험해’라고 외치며 눈물을 흘린다. 후쿠시마는 안전하지 않고, 일본은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낀 것이다.

물론 일본 정부는 지금도 괜찮다고 한다. ‘가만히 있으라’고 한다. 사람들은 이미 방사선에 피폭당하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기준치로 관리하고 있으니까 괜찮다’고 말한다. 정보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으면서 그냥 ‘가만히 있으라’고 한다.

그러나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하다. 먹어서 괜찮은 방사성물질은 없다. 사고가 나지 않는 안전한 원전은 없다. 그래서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 세월호 참사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언제 우리에게 또 다른 비극이 닥칠지 모른다.

체르노빌을 다녀온 뒤 변한 사람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탈출을 고민하게 되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은 심정을 가지게 되었다.

강연을 하면서, 탈출하고 싶은 심정에는 공감을 한다고 말했다. ‘침몰하는 배’ 같은 대한민국에서 자식을 키우고 싶지 않다는 부모의 심정을 나무랄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러나 현실은 현실이다. 모두가 대한민국을 탈출할 수는 없다. 다른 곳으로 간들, 안전하다는 보장도 없다. 지금처럼 생태위기와 불평등이 심해지면, 지구 어느 곳에서인들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강연을 듣고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물어보는 여성도 있었다. 한마디로 답하기는 쉽지 않은 문제다.

이런 참사를 겪고 나서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애도하고 추모하는 것도 필요하다. 충분히 슬퍼해야만 다시 일어설 힘도 얻을 수 있다.

분노하는 것도 필요하다. 충분히 구할 수 있었던 목숨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 숨지게 한 선장과 승무원들, 탐욕에 사로잡혀 낡은 배를 개조하고 화물을 과다하게 실어 사고를 자초하고 사고 뒤에도 아무런 대처를 하지 않은 기업, 수백 명이 갇힌 배가 눈앞에서 침몰하는데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부. 이 모두에 분노하지 않고서는 그 어떤 행동도 시작할 수 없다.

충분히 슬퍼하고 충분히 분노해야 한다. 그러나 그다음에는 어쩔 것인가? 이 질문에 우리는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한다.

마지막은 체르노빌을 방문하고 온 사람들이 원전 반대 집회에 참석하는 것으로 끝난다. 일본을 탈출하기보다는 일본을 바꾸는 것을 택한 것이다. 집회에 참석하고 정치에 참여하면서 다시는 후쿠시마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하고, 지금이라도 어린이들이 방사선에 조금이라도 덜 피폭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가만히 있으라’는 정치를 바꿔야

세월호 참사를 겪은 우리의 선택도 다를 수 없다. 정치를 바꿔서, ‘돈’보다는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사회로 전환해야 한다. 이권과 부패와 자본의 탐욕을 통제해야 한다. 경제성장에 목을 매고 생명과 안전을 희생시키는 국가가 아니라, 사람들의 행복과 ‘좋은 삶’을 보장하는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

침몰하는 배에 갇혀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듣게 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지금이라도 대한민국이라는 배를 바꿔야 한다. 특히 대한민국이라는 배를 움직이는 정치를 바꿔야 한다. 무분별하게 규제를 완화해 생명을 희생시키고, 후쿠시마 사고를 보면서도 원전을 계속 늘리는 정치. 기후변화의 위협에도, 초미세먼지의 위협에도, 극심한 불평등에도, 극심한 경쟁 속에 희망을 잃어가는 청소년과 청년들에게도, 차별과 편견에 고통받는 소수자에게도 ‘가만히 있으라’고 말하는 정치를 바꾸지 않고서는 희망이 없다.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1010호 주요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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