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5 송전탑 막지 못하면, 먼저 가신 어르신의 원한은 어찌하겠습니까? 마을 어르신들의 새까맣게 타버린 속은 누가 달래겠습니까?”(이응인 시인)
2012년 1월 말 밀양 관아 앞에서 열린 집회에서 이 시를 들었다. 이것은 절규였고, 무관심했던 우리에게 던지는 뼈아픈 자성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그 뒤 3년이 흘렀다. 나에게는 3년이지만, 밀양의 송전탑 경과지 주민들에게는 10년 가까운 세월이었다.
언제 가동될지 알 수 없는 신고리 3·4호
3년 전 1월16일 경남 밀양시 산외면 보라마을은 전쟁터였다. 양쪽이 싸우는 전쟁이 아니라, 일방적인 폭력이 휘몰아치는 전쟁터였다. 고리·신고리 원전 단지에서 출발한다는 76만5천V 송전선 공사가 시작되고 있었다. 벌목을 하려고 젊은 용역업체 직원들이 들이닥쳤다. 힘없는 노인들은 산을 기어올라 나무를 감싸안았다. 그러나 젊은 용역들은 노인들을 짐짝처럼 들어냈다. 저항해도 소용없는 완력이었다. 참담한 낮 시간이 지난 뒤, 한 70대 농민이 “오늘 내가 죽어야 문제가 해결되겠다”는 말을 남기고 자신의 몸에 기름을 끼얹고 불을 붙였다.
그 죽음은 많은 사람들에게 각성을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밀양으로 ‘탈핵 희망버스’가 갔고, 수많은 사람들이 밀양 송전탑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정부와 한국전력은 집요했다. 여러 차례 공사를 시도했고, 2013년 10월부터는 경찰병력 수천 명을 동원해 공사를 강행했다. 그 와중에 또 한 명의 농민이 목숨을 끊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다치거나 경찰에 연행되었다.
그리고 지난해 말 한전은 송전선이 완공됐다고 발표하고 전기를 ‘시험 송전’하겠다고 얘기했다. 주민들은 115번 송전철탑 부근에 농성장을 차리고 연말을 그곳에서 보냈다.
지난 1월2일 농성 현장에 가보니, 거대한 송전탑들과 철탑에 걸쳐진 송전선이 산과 마을, 논밭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농성장에는 주민들이 회의를 위해 모여 있었다. 주민들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한전에 전달할 요구사항으로 ‘송전선이 필요 없다는 것이 확인되면 철거한다’는 내용을 넣기로 했다고 한다.
밀양 송전탑 공사가 총체적 부실과 사기였다는 것은 이미 드러나고 있다. 정부는 신고리 3·4호기가 완공되면, 그곳에서 생산되는 전기를 송전하기 위해 밀양 송전탑이 꼭 필요하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신고리 3·4호기는 언제쯤 가동될지 기약이 없는 상태다. 위조 부품 문제, 그리고 최근에도 일어난 노동자 사망사고 등으로 언제 완공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번에 시험 송전하는 전기는 대구 쪽에서 끌어온 것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전혀 급하지 않은 공사를 급하다고 사기치고 강행한 것이다.
2020년 과도안정도 ‘불안’의 이유또한 정부는 밀양 송전선이 없으면 신고리 3·4호기가 완공돼도 가동을 못하는 것처럼 얘기했다. 그러나 객관적 자료들에 의하면, 밀양 송전선이 없어도 고리·신고리 원전 단지를 운영할 수 있다. 수명이 끝나서 안전성 논란이 있는 고리 1호기만 폐쇄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한전이나 전력거래소 자료에 의하더라도, 지금 고리·신고리 원전 단지와 연결된 3개의 34만5천V 송전선으로 신고리 3·4호기까지는 송전이 가능하다. 이 부분과 관련해서는 정부와 한전에 여러 차례 토론을 제안했지만 그쪽에서 거부해왔다.
최근에 알게 된 기막힌 사실도 있다. 정부는 송전선 자체에는 여유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기존 34만5천V 송전선이 끊어지면 ‘과도안정도’라는 것에 문제가 생긴다고 주장해왔다. ‘과도안정도’란 송전선에서 사고가 날 경우, 송전선과 연결된 발전기까지 정지하게 되느냐를 따지는 것이다. ‘과도안정도’가 불안정이면, 송전선에서 사고가 날 경우 그와 연결된 발전기까지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와 한전은 이 과도안정도 때문에 밀양 송전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그런데 최근 전력거래소가 만든 ‘2013년 중장기 전력계통 운영전망’이라는 자료를 보고 깜짝 놀랐다. 이 자료에 따르면, 밀양을 지나가는 76만5천V 송전선을 짓는다고 해도, 2020년이 되면 과도안정도가 ‘불안정’으로 바뀐다고 나와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정부가 고리·신고리 원전 단지의 원전 개수를 계속 늘리기 때문이다. 노후 원전은 폐쇄하지 않고 새로운 원전을 지어대려고 하니, 2020년이 되면 고리·신고리 원전 단지의 원전 수는 10개로 늘어난다. 그럴 경우 밀양을 지나가는 76만5천V 송전선을 건설·운영하더라도, ‘과도안정도’는 불안정해지는 것이다. 한곳에 대규모 발전소를 몰아서 지으면, 그 발전소들과 연결된 송전선에서 사고가 날 경우 발전소들이 정지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결국 쓸모없는 일을 하느라고 송전선 건설에 5200억원, 변전소 건설에 2300억원을 쓴 셈이다. 정말 과도안정도가 문제라면 원전 건설부터 중단하는 게 맞다. 전력계통을 안정화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대규모 발전소 건설을 중단하고, 소비지 부근에서 전기를 생산해 초고압 송전선 자체를 필요 없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엉터리 같은 시절’ 얘기할 날 오기를이런 진실을 몇몇 언론이 취재해왔고, 나도 지면을 통해 주장해왔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포기하지는 않는다. 아니 포기할 수 없다. 115번 송전탑 농성장에서 밤을 보내면서 시를 다시 읽었다.
“전기주전자로 커피를 끓이면서, 텔레비전 켜놓고 낄낄대면서, 냉장고 문 열고 과일을 꺼내면서도 몰랐습니다. 우리 이웃 할아버지·할머니들이 전기 때문에, 송전탑 때문에, 영하의 추위에 떨며 산에서 먹고 산에서 자는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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