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알래스카에 산다면 1년 1884달러 받을 텐데

토머스 페인이 200여 년 전에 주장한 시민배당, 이건희 회장
이 주식회사의 주주로서 배당받듯 대한민국 국민은 국민으로
서 배당받을 권리가 있어
등록 2015-03-24 08:30 수정 2020-05-02 19:27

삼성그룹은 이건희 회장의 2013년 연봉이 0원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이건희 회장은 연봉이 없을지는 모르지만, 주식 배당금으로 1년에 1758억원을 받는다(2014년 기준). 이런 배당금은 당연히 노동의 대가는 아니다. 주식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어마어마한 배당금을 받는 것이다. 이건희 회장은 엄청난 부자이지만, 매년 이런 식으로 꼬박꼬박 현금을 받는다.

알래스카 같은 석유가 없더라도

얼마 전 대학을 휴학하고 알바를 하고 있다는 대학생을 만났다. 자신이 알바해서 버는 돈으로 필요한 데 쓴다. 대학을 다니다가 뭔가 새로운 가능성을 고민하는 모양인데, 아무런 경제적 기반이 없다. 이건희 회장은 주주 자격으로 매년 일정한 현금을 받는데, 이 대학생이 현금(배당금)을 받을 근거는 없을까?

이런 생각을 하던 중 미국에서 나온 기본소득에 관한 책자를 하나 읽어보게 되었다. (Exporting The Alaska Model)라는 제목의 책은 흥미로운 발상을 담고 있다. 미국 알래스카주는 석유 판매에서 나오는 돈으로 주민들에게 매년 배당금을 지급하고 있다. 만약 이 대학생이 알래스카주에 살고 있다면, 2014년 1884달러를 배당금으로 받았을 것이다. 주민의 자격으로 받는 배당금이다.

알래스카 모델은 흔히 반론에 부딪힌다. 알래스카는 석유가 나오니까 이렇게 배당금을 지급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반론이다. 석유 같은 지하자원이 없는 곳에서는 이런 발상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미국 알래스카주는 석유 판매에서 나오는 돈으로 주민들에게 매년 배당금을 지급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미국 알래스카주는 석유 판매에서 나오는 돈으로 주민들에게 매년 배당금을 지급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그러나 ‘과연 그럴까?’라는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바로 다. 이 책에서는 특별한 지하자원이 없어도 알래스카처럼 시민들에게 배당금을 지급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과 관련된 연구도 소개하고 있다.

예를 들면 석유 같은 지하자원이 없는 미국 버몬트주를 대상으로 게리 플로멘호프트(Gary Flomenhoft)라는 학자가 연구한 결과가 있다. 이 연구 결과에 따르면, 버몬트주의 공유재로부터 나오는 수익으로 연간 작게는 1972달러, 많게는 1만348달러를 지급할 수 있다. 이 연구에서는 물, 깨끗한 공기, 광물, 숲, 물고기와 야생동물, 토지 같은 자연자산과 금융시스템, 인터넷, 방송주파수 같은 인위적 공유자산에서 나오는 수익으로 이 정도의 배당금을 지급할 수 있다고 계산했다. 이런 자산은 공유재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을 사유화(私有化)해서 수익을 올리는 것에 대해, 일정 금액을 환수하여 배당금을 지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상속세를 걷어 노인·청년에게 배당금을

이 책의 서문에서는 토머스 페인의 글도 인용하고 있다. 토머스 페인은 18세기 후반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때 중요한 역할을 한 사상가이자 실천가다. 그는 이라는 책을 통해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해야 하고, 독립된 미국에서는 왕이 아니라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표자가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는 프랑스로 건너가 프랑스혁명을 지원하는 역할도 했다. 이 과정에서 토머스 페인은 단지 정치적 민주화만으로는 사람의 삶이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달은 듯하다. 토머스 페인은 1797년 그의 마지막 책인 (Agrarian Justice)를 내는데, 여기에서 ‘시민배당’이라는 아이디어를 주장한다.

토머스 페인은 세상에 두 종류의 재산이 있다고 본다. 하나는 땅·물·공기 같은 자연재산(natural property)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의 활동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재산이다. 토머스 페인은 자연재산에 대해서는 모두가 평등한 권리를 갖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자연재산에서 나오는 수입은 세금으로 걷어 시민들에게 배당금을 주자고 제안한다. 재산을 물려주는 시점에 상속세를 걷어 노인과 청년에게 배당금을 지급하자고 제안한다. 노인에게는 연금처럼 매년 돈을 지급하고, 21살에 달한 청년에게는 일시금으로 지급하자는 것이다. 청년에게 지급하는 일시금의 액수로는 당시 노동자 평균연봉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금액을 제안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청년에게 최소한의 경제적 기반을 마련해주자는 것이다.

이런 토머스 페인의 주장을 읽으며, 아무런 경제적 기반이 없는 대학생의 모습을 떠올렸다. 토머스 페인의 주장처럼, 공유재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배당금을 지급한다면, 그 청년의 삶은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기본소득은 재산의 많고 적음, 노동을 하는지에 관계없이 정부가 일정액의 현금을 시민들에게 지급하는 것이다. 다른 이름을 붙인다면 ‘시민배당’이라고 할 수 있다. 토머스 페인은 이 주장의 선구자인 셈이고, 미국의 알래스카주는 그런 생각을 현실로 만든 사례다. ‘사유화’가 극도로 진행된 대한민국이야말로 이런 발상이 절실하게 필요한 곳이다.

핀란드 총선 출마 예정자 65%, 기본소득 찬성

이건희 회장이 주식회사의 주주라는 지위를 갖고 있다면, 어느 누구든 대한민국이라는 사회 공동체의 구성원이라는 지위를 갖고 있다. 우리 주위에는 토지·천연자원 같은 자연적 공유재와 여러 인위적 공유재들이 있다. 여기에서 나오는 수익을 소수의 사람들이 누리는 것이 아니라 평등하게 배분하는 것은 충분한 정당성을 갖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국가로부터 배당받을 권리가 있다’는 주장을 한다. 이것은 시혜가 아니라 권리다. 내년 4월로 예정된 핀란드 총선 출마 예정자의 65%가 기본소득에 찬성하는 입장이라고 한다. 한국에서도 기본소득 또는 시민배당에 대해 적극적인 토론이 필요하다.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