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불거진 연말정산 사태를 둘러싸고 여러 얘기가 나오고 있다. 정부가 ‘부자 감세’ 철회나 법인세 인상은 하지 않으면서, 연말정산 제도를 바꿔 일부 중산·서민층의 세금 부담을 늘렸다는 사실이 분노를 폭발시켰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증세는 불가피한데 이러다가 증세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커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세금폭탄’이라는 용어를 써가며 정부를 비판한 새정치민주연합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아무리 정부의 연말정산 정책이 잘못됐다고 하더라도 ‘세금폭탄’ 같은 용어를 써서 공격하는 것은 잘못됐다는 의견도 있다. 이대근 논설위원은 1월29일치 칼럼을 통해 “집권 때 세금폭탄론의 피해자였으면서도 오히려 앞장섬으로써 세금폭탄론의 명분을 강화해준 것이다. 한마디로 잠자던 조세저항 심리를 흔들어 깨운 것이다”라고 새정치연합을 비판했다.
사실 ‘세금폭탄’은 적대를 불러일으키는 용어다. 마치 폭격을 하듯이 세금을 무자비하게 걷어간다는 느낌을 준다. 이 용어를 처음 쓴 곳은 같은 보수언론이었다. 2003~2004년께부터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보유세 강화 정책에 반대하면서 이 용어를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2006년 당시 김병준 청와대 정책실장이 “일부 언론이 종합부동산세가 8배 올랐다며 세금폭탄이라고 했는데 언론이 말한 세금폭탄이라면 아직 멀었다”고 말하면서 논란이 증폭되었다. 보수언론은 김병준 실장의 발언을 보도하며 노무현 정부가 무자비하게 세금을 부과하려 한다고 선전했다. 이 선전은 아주 잘 먹혔다. ‘정부가 국민에게 세금폭탄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논리는 종합부동산세와 전혀 무관한 사람에게까지 잘 다가갔다. 종합부동산세는 꽤 비싼 토지나 주택을 갖고 있어야만 내는 세금이었고, 2014년 기준으로도 25만3천 명에게만 해당되는 세금이었다. 그렇지만 전혀 관련 없는 사람들까지 종합부동산세에 대한 비판을 쏟아내게 되었다. ‘세금폭탄론’이 평소 정부에 갖고 있던 불만, 세금에 갖고 있던 불만에 불을 붙인 것이다.
세금 중에는 부당한 세금도 있다. 먹고살기도 힘든 사람들에게 짜내는 세금, 부자에게는 안 물리고 가난한 사람에게만 물리는 세금이 있다면 그런 세금은 부당하다. 그러나 세금은 다른 한편으로 ‘함께 살자’는 공생(共生)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이 말이 어떤 의미인지를 한번 생각해보자.
덴마크 조세부담률 48.6%, 한국 24.3%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조세수입 통계를 비교한 자료가 매년 발표된다. 이 자료에서 덴마크의 조세부담률(국내총생산(GDP) 대비 조세수입 비중. 세금과 의무적 사회보장부담금을 합쳐서 계산)을 찾아보니 48.6%로 나와 있다. 덴마크는 요즘 유엔 세계행복보고서에서 세계 행복도 1위로 나오며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이런 나라의 조세부담률은 무척 높다.
대한민국을 찾아보니 24.3%다. 정확하게 덴마크의 절반이다. OECD 평균은 34.1%다. 역시 대한민국보다는 한참 높다. 만약 대한민국이 OECD 평균 조세부담률만큼 세금을 걷는다면 한 해 153조원을 더 걷게 된다. 153조원에 덧붙여, 예산 낭비를 줄여 30조원 정도만 더 마련하면, 나이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게 매월 30만원씩을 기본소득으로 줄 수도 있다. 그래서 기본소득은 단순한 상상이 아니다.
어쨌든 대한민국의 조세부담률은 높지 않은 편이다. 그런데도 왜 조세저항이 심할까? 그것은 조세부담이 공평하지 못하고 투명성이 낮기 때문이다.
덴마크는 소득세가 전체 세금에서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한다. 고소득자의 경우 최고 51.5%를 세금으로 낸다. 대한민국처럼 탈세를 하는 것은 어렵다. 투명성이 높기 때문이다. 덴마크는 행복도만 1위가 아니다. 지난해 덴마크는 국제투명성기구(TI)가 발표하는 반부패 지수에서도, 세계 1위의 투명성을 자랑했다. 대한민국은 43위에 그쳤다.
또한 대한민국은 재벌을 비롯한 부자들이 변칙 상속·증여와 탈세를 밥 먹듯이 해왔다. 그리고 토지·금융자산에 대한 세금이 약하다. 고소득자에 대한 최고세율도 38%로 덴마크보다 한참 낮은 수준이다.
게다가 세금을 쓰는 과정도 투명하지 못하다. 온갖 예산 낭비가 위에서부터 아래에까지 만연해 있다. 그래서 낮은 조세부담률에도 대한민국 국민에게는 세금폭탄론이 잘 먹혀든다. 불공평한 세금을 왜 나한테만 많이 걷어가냐는 것이다. 그리고 세금을 엉터리로 쓰면서, 왜 많이 걷어가려고 하느냐는 것이다.
국가가 없어지지 않는 이상 세금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조세저항을 불러일으키는 세금폭탄론은 바람직하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세금에 대한 철학을 바로 세우는 것이다. 공평하게 부담하는 세금은 재산을 뺏기는 것이 아니다. 사회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마땅한 몫을 내는 것이다. 토지 같은 공유재는 본래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라 자연의 일부였다. 그래서 그런 공유재를 통해 이익을 얻는 경우 당연히 사회에 일정한 몫을 내야 한다. 그것이 토지보유세나 부동산 관련 세금을 내는 이유다.
소득도 마찬가지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허버트 사이먼은 ‘소득의 90%는 이전 세대에 의해 축적된 지식’ 덕분에 버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기 자신만 잘나서 돈을 벌게 된 게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소득의 일정 몫을 사회 공동체에 세금으로 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렇게 걷은 돈을 사회 공동체를 위해 투명하게 사용하면 된다. 모든 사람에게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고, 사회 공동체를 위해 필수적인 일을 잘 수행하며, 사회적 약자를 지지하고, 생태 위기를 극복하는 방향으로 돈을 쓴다면 누가 세금 자체에 대해 저항을 하겠는가?
이제는 조세정책에 이런 철학이 담겨야 한다. 그래야 세금폭탄론을 극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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