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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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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떠나야 하는 ‘인터스텔라’ 멀지 않은 지구의 현실

영화를 보고 기후변화의 심각성 느끼는 계기 되길, 무엇보다

2015년은 기후변화와 관련해서 가장 중요한 한 해
등록 2014-12-12 15:38 수정 2020-05-03 04:27

아는 분에게서 영화 를 꼭 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영화를 재미있게 보려면, ‘상대성 이론’에 대해 미리 찾아보라는 얘기도 인터넷에서 읽었지만, 그럴 만한 시간이 없어서 그냥 봤다.
영화에는 흥미로운 대목이 많았다. 그러나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던 것은 영화를 통해 묘사되는 지구의 모습이었다. 황사 같은 먼지가 폭풍처럼 밀려오고, 밀농사가 불가능해져서 옥수수만 심게 되고, 건강이 안 좋아져서 아픈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한마디로 인류의 종말을 향해 달려가는 상황이었다.

는 공상이 아니다
영화에서는 인간이 살 수 있는 다른 행성을 찾는 것이 해법으로 제시되지만, 실제 현실에서 그런 해법이 가능하리라 믿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문제는 에서 묘사된 지구의 상황이 ‘공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대로 가면 지구가 그렇게 될 것임은 과학적으로 예측되고 있다.
원인은 기후변화 때문이다. 기후변화는 잦은 가뭄과 홍수를 불러일으킬 것이고, 사막화도 더 심해질 것이다. 농작물들은 바뀐 기후에 적응하지 못하고, 농사는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미국만 하더라도 ‘메가가뭄’(Mega Drought) 얘기가 나온다. 최근 들어 미국 남서부 지방이 겪고 있는 가뭄은 일시적인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메가가뭄은 수십 년간 가뭄이 지속되는 것을 의미하는데, 미국 남서부가 그런 가뭄을 겪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영화 〈인터스텔라〉는 기후변화로 인해 인류의 종말을 향해 달려가는 상황을 묘사한다. 이 상황은 공상이 아니다. 워너브러더스 제공

영화 〈인터스텔라〉는 기후변화로 인해 인류의 종말을 향해 달려가는 상황을 묘사한다. 이 상황은 공상이 아니다. 워너브러더스 제공

기후변화에 따른 메가가뭄의 가능성은 미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세계 곳곳에서 그런 가뭄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당연히 식량 사정은 점점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식량 사정이 어려워지면 지구 곳곳에서 이를 둘러싼 분쟁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상황이 더 나빠지면 지구에 사는 동식물의 절반 이상이 멸종하는 ‘대멸종’이 닥칠 수 있다. 그때 인간만 무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에서 를 본 900만 명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영화를 본 뒤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이 영화를 통해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조금이라도 느꼈을 것이라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물론 오히려 ‘과학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과학만능주의가 더 기승을 부리지 않을까 라는 걱정이 들기도 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에 나오는 상황을 단지 ‘가상의 상황’으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 멀지 않은 미래에 닥칠 현실로 봐야 한다. 지금처럼 기후변화의 속도가 빠르다면 10년 뒤, 20년 뒤에 부딪힐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식량위기’에 가장 취약한 국가

그래서 제안을 하나 해본다. 이 영화를 계기로, 기후변화에 좀더 관심을 가져보자는 것이다. 특히 자녀에게 이 영화를 보여준 부모들은, 영화에 나오는 상황이 바로 자기 자녀가 부딪힐 현실이라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그렇다고 내가 의 주인공처럼 우주로 가서 자식과 인류를 구할 수는 없다.

좀더 현실을 알고서 대안을 찾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아는 데는 이번에 MBC가 방영한다는 이 도움이 될 수 있다. 마침 MBC가 1년 동안 8개국의 현장을 취재해서 이라는 3부작 다큐멘터리를 12월8일부터 방송한다.

가 미래의 지구를 예상한 것이라면, 은 현재 변해가고 있는 지구의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제작진이 언론 인터뷰에서 ‘자료를 조사하고 취재를 해보니 우리만 기후변화를 모르고 있더라’라고 얘기한 대목을 잘 봐야 한다. 정말 대한민국처럼 기후변화에 무관심한 국가도 없을 것이다. 경제 규모는 세계 10위권 바깥이면서도 온실가스 배출량은 세계 7위 국가일 정도로 기후변화에 무관심하고 무책임하다. 그렇지만 우리도 어느 순간 기후변화로 고통받게 될지 모른다. 곡물자급률 22%에 불과한 한국이야말로, 가 살짝 보여주는 ‘식량위기’에 가장 취약한 국가이기 때문이다.

바꿔야 할 것은 기후가 아니라 정치

와 을 보고 2015년에는 기후변화에 관심을 가져보자. 2015년은 기후변화와 관련해서 가장 중요한 해이기도 하다. 올해 12월2일부터 페루 리마에서 열리는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에 이어 내년에 프랑스 파리에서 총회가 열릴 예정이다. 이때까지 기후변화에 대한 실효성 있는 대책에 합의해야 한다. 최근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이 과거보다는 한 걸음 나아간 합의를 해서 발표했지만, 낙관할 수 있는 상황은 전혀 못 된다. 미국 내부에서도 공화당이 오바마 대통령의 온실가스 감축안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9월 세계 곳곳에서 수십만 명의 시민이 기후변화 대책을 촉구하는 시위를 했다. 그때 유럽의 녹색당 활동가들이 든 피켓에 ‘바꿔야 하는 것은 기후가 아니라 정치’(Change The Politics Not The Climate)라는 구호가 적혀 있었다. 정말 공감되는 얘기였다.

영화에서는 영웅이 인류를 구할 수 있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그런 영웅이 없다. 오히려 인류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는 잘못된 시스템만 존재한다. 이윤을 위해서라면 기후변화도 무시할 수 있는 화석연료 산업들, 그와 유착된 정치권력이 지금의 시스템을 떠받치고 있다. 그것을 바꿀 수 있는 힘은 시민들이 참여해서 정치를 바꾸는 길뿐이다.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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