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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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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올림픽, 전남 F1같이 될라

겨울올림픽 일본과 분산 개최는 대통령 한마디에 거부… 국내
다른 지역에도 활용할 시설 많아, 지금이라도 분산 개최를
등록 2015-02-17 06:14 수정 2020-05-02 19:27

스포츠 행사가 온갖 논란을 낳고 있다. 환경 파괴, 예산 낭비 등으로 얼룩져 있다.
그런데 이런 사업이 추진되는 과정을 보면 기묘하다.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서 유치운동을 벌인다. 중앙정부의 승인도 없이 추진하는 경우도 있다. 처음에는 민간자본을 유치해 재정을 마련한다고 했다가, 중간에 얘기가 바뀌는 경우도 있다. 사후 관리도 어려운 경기장을 마구 지어댄다. 토건사업과 다를 바 없다. 그래서 막대한 국가재정, 지방재정이 낭비되고 환경이 파괴되고 있다.

인천아시안게임 뒤 갚아야 할 돈 1조3336억원

전라남도가 유치했다고 자랑하던 포뮬러원(F1) 국제자동차경주대회는 이미 전라남도에 재앙이 되었다. 이 대회는 박준영 전 도지사가 독단적으로 유치한 행사다. 처음에는 중앙정부의 지원 없이 민간자본 조달로 재정을 마련한다고 했지만, 그게 잘 안 되자 중앙정부가 예산을 지원했다. 정치권도 덩달아 춤췄다. 국회는 ‘포뮬러원 국제자동차경주대회 지원법’이라는 법률까지 만들어줬다.

그래서 총 1001억원의 국가 예산이 투입되었다. 전라남도의 예산도 막대하게 들어갔다. 지방 예산 투입액이 5031억원에 달했다. 이렇게 많은 예산이 들어갔지만, 결과는 파탄이다. 4년 동안 대회를 했지만, 적자가 너무 심해서 더 이상 대회를 할 수 없게 되었다. 2010년부터 시작된 대회는 2013년을 끝으로 더 이상 열리지 않게 됐다.

4년간 누적된 적자가 1910억원이다. 경기장 건설비 등을 감안하면 총손실은 6천억원이 넘는다. 그리고 대회 주관사인 포뮬러원 매니지먼트사가 위약금을 요구하는 등 추가 손실도 발생할 수 있다. 전라남도는 행사 한번 잘못 유치했다가 엄청난 짐을 떠안게 되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은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도 반복되었다. 인천 아시안게임에는 국가 예산 5039억원, 지자체 예산 1조5460억원이 투입되었다. 그리고 인천시는 돈을 마련하기 위해 1조480억원의 지방채를 발행했다. 빚을 낸 것이다. 지방채를 발행해 조달한 돈의 대부분은 경기장 건설에 들어갔다. 그중에는 불필요한 경기장도 있었다. 예를 들면 주경기장을 새로 짓지 않고 문학경기장으로 대체할 수도 있었지만, 굳이 4772억원을 들여 새로 지었다.

남은 것은 빚더미다. 이자까지 합치면 인천시가 갚아야 할 돈은 1조3336억원에 달한다. 1년 이자만도 300억원대다. 대회가 끝난 뒤 인천 시민들을 상대로 조사해보니, 인천 시민들 중에서 43%는 실패작이라 대답했고 성공적이었다는 답변은 12%에 불과했다.

단 6시간 개·폐회식 위해 859억원

이런 쓰라린 일을 겪고도 교훈을 얻지 못하는 게 대한민국이다. 포뮬러원, 아시안게임보다도 더 큰 재앙이 벌어지려 한다. 바로 2018년에 개최될 평창겨울올림픽이다. 들어가는 돈의 규모는 훨씬 더 커졌다. 국가와 지자체 예산 11조4311억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단 6시간의 개·폐회식을 위해 859억원이 쓰인다.

알파인스키장 건설을 위해 500년 된 가리왕산의 숲을 베어내는 환경 파괴 행위도 저지르고 있다. 단 3일간의 경기를 위해 생태적 보존 가치가 높은 숲을 파괴하는 행위는 그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되기 어렵다.

국회예산정책처는 2013년 5월 ‘국제스포츠행사 지원사업 평가’라는 보고서를 통해 “동계올림픽 대회 경기시설은 이용 시기가 겨울로 한정되어 있고 일반인이 직접 즐기기 어려운 종목도 많아서 경기시설의 사후 활용 방안을 찾는 것이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경기장 신설은 최소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논란이 되고 있는 가리왕산의 알파인스키장만 하더라도, 경사가 급해서 일반인의 이용은 저조할 것이라는 게 국회예산정책처의 분석이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국제 스포츠 행사를 유치하면서 작성한 경제적 타당성 보고서가 엉터리라는 지적도 했다. 일반적인 경제성 분석에서 쓰지 않는 방법으로 경제 효과를 부풀렸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눈을 현혹하려는 ‘뻥튀기’ 때문에 국가재정이 낭비되고 강원도의 환경이 파괴되고 있다.

그래서 평창겨울올림픽을 지금이라도 분산 개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막대한 재정 낭비가 예상되고, 올림픽이 끝난 뒤에는 시설을 활용하기도 어려운데 굳이 단독 개최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직접 분산 개최에 반대하는 의견을 밝혔고, 이후 공무원들과 평창올림픽조직위원회는 일사불란하게 ‘분산 개최 불가’라는 입장으로 정리했다.

57.8% 국내 분산 개최 찬성

그러나 대통령 임기는 5년에 불과하다. 평창겨울올림픽이 열릴 때는 이미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다. 대통령의 한마디로 결정될 사안이 아닌 것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지난해 12월 ‘어젠다 2020’을 발표했다. 여기에 따르면, IOC는 복수의 국가, 또는 복수의 도시에서 분산 개최하는 것을 장려하고 있다. 그동안 올림픽이 개최될 때마다 재정 낭비와 환경 파괴 논란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입장을 밝힌 것이다. 따라서 대한민국 정부가 지금이라도 입장을 바꾸면 된다.

여론도 분산 개최를 바라고 있다. 지난해 12월 JTBC가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일본과의 분산 개최에는 반대 여론이 높지만 국내의 다른 지역과 분산 개최하는 데는 57.8%가 찬성했다. 전북 무주의 스키장 등 국내에는 활용 가능한 시설이 많이 있다. 재정 낭비도 줄이고 환경 파괴도 피할 수 있는 합리적 방안이다. 강원도 입장에서도 무리하게 추진하다가 빚을 지는 것보다는 나은 방안이다. 지금이라도 합리적인 토론을 해야 한다.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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