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 요청도 있고, 제주녹색당원들도 만날 겸 2박3일 일정으로 제주를 다녀왔다. 제주대학교 교수로 2006년부터 2009년까지 근무했기 때문에 제주는 익숙한 곳이다. 가슴속까지 시원해지는 듯한 바람, 다양한 빛깔을 가진 바다, 한라산과 오름의 억새가 떠오르는 섬이다.
그런데 제주에 가기 전부터 그런 제주가 많이 바뀌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직접 가보니, 제주는 큰 변화를 겪고 있었다. 위기라고 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생활용수 부족량, 갈수기엔 10만t
중국 자본이 들어와 제주 곳곳의 땅을 사들이고 개발사업을 벌이고 있다. 제주올레가 유명해진 뒤 제주에 살고 싶어 하는 외지인이 많아지면서 인구도 꽤 늘었다. 통계를 확인해보니, 제주 인구는 62만 명을 넘어섰다. 2008년 12월 말에 56만5천 명 정도였으니까 불과 6년 만에 5만5천 명, 인구의 10% 정도가 늘어난 셈이다.
제주를 찾는 국내외 관광객도 늘어나 1천만 명을 넘어섰다. 땅값도 많이 올랐다고 한다. 제주에서 만난 한 지인은 ‘4·3 이후 최대 변화’라고 말한다.
과연 이래도 괜찮은 것일까? 제주도는 섬이다. 생태적 용량의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특히 제주도는 지하수에 의존하는 섬이다. 그래서 감당할 수 있는 인구에도 제한이 있고, 개발하는 데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미 지하수 문제는 터져나오고 있었다.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가 서귀포시 동흥동 일대에 조성하는 헬스케어타운은 하루 3040t의 지하수를 뽑아쓰려고 한다. 그러자 인근 주민들이 농업용수와 생활용수의 부족이 우려된다며 반대하고 나섰다. 상대적으로 높은 지대에 위치한 헬스케어타운에서 대량의 지하수를 뽑아쓰면, 아래쪽 동네에서는 지하수 고갈이 우려될 수밖에 없다.
제주도의 지하수 문제를 낳는 큰 원인은 이런 종류의 개발사업과 골프장, 리조트 등이다. 이들이 뽑아쓰는 지하수의 양이 엄청나다. 제주도의 골프장이 쓰는 지하수의 양은 2011년 422만t에서 2013년에는 531만1천t으로 크게 늘었다. 골프장에 빗물을 어느 정도 사용하도록 의무화했지만, 골프장 수가 늘어나면서 지하수 이용량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인구가 계속 늘어나니 제주도는 앞으로 물 문제가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2025년이 되면, 제주도의 생활용수 부족량이 최대 10만t(갈수기 기준)에 이를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상주인구와 관광객이 늘어나니 쓰레기도 많이 나온다. 기존 매립장은 이미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그래서 구좌읍 동복리에 새로운 광역 매립장이 들어설 예정이지만, 늘어나는 쓰레기양은 제주도의 골칫거리일 수밖에 없다.
하루 6달러 환경세 부과하는 몰디브
지난 12월4일 인도양의 섬나라인 몰디브는 내년 11월부터 입국하는 관광객에게 하루 6달러의 환경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저렴한 게스트하우스에 머무르는 경우는 예외라고 한다. 리조트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치우기 위해 환경세를 걷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몰디브는 관광수입이 국내총생산(GDP)의 70%를 차지할 정도로 관광에 의존하는 국가다. 그래서 관광객에게 세금을 물리면 관광업에 타격이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러나 이런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몰디브의 쓰레기 문제가 심각한 것이다.
제주도에도 무분별한 지하수 사용, 그리고 쓰레기 배출 행위에 대해 엄격한 규제를 해야 할 것이다. 제주도의 지하수와 자연환경은 공유재라고 할 수 있다. 이 공유재를 이용해서 사적 이윤만 추구한다면, 그것은 제주도에 사는 모든 사람과 생명에게 피해를 주는 결과를 초래한다. 골프장과 리조트의 지하수 이용 규제를 대폭 강화하고 쓰레기 배출을 줄일 수 있는 정책을 펴야 한다. 그러나 ‘특별자치도’가 된 제주도청은 아직까지 안일한 인식에 젖어 있는 듯하다.
제주도의 생태적 한계는 고려하지 않고 관광객을 2천만 명까지 늘리겠다는 얘기가 나오는가 하면, 인구가 계속 늘어나는 것을 전제로 정책을 펴고 있다. 과연 그런 제주가 지속 가능할까?
제주 곳곳에 불고 있는 개발 바람에 대한 얘기를 들으면서 답답한 가슴을 안고 강정마을로 갔다. 바닷가에는 해군이 짓고 있는 해군기지 공사가 한창이었다. 해군이 마을 안에 군관사까지 지으려 해서 주민들은 공사장 앞에 농성장을 차리고 있었다. 해군은 농성장을 철거하는 행정대집행을 예고했다.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군관사는 마을에 들어오지 않도록 하겠다고 얘기했지만, 해군은 밀어붙이고 있다고 한다. 처음 해군기지 부지로 강정마을이 결정될 때도, 해군은 반대하는 주민이 압도적으로 많음에도 ‘주민 수용성이 있다’면서 해군기지 건설을 밀어붙였다.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구속되고 다치고 마을공동체가 파괴됐다.
배의 방향을 돌릴 수 있기를제주 강정마을의 해군기지는 해군기지로 끝나지 않는다. 이지스함이 포함된 전략기동함대가 배치되면 공군기지까지 들어설 것이라는 게 제주 사람들의 예측이다. 실제 국방부는 그런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4·3의 아픔을 겪은 제주도는 노무현 정부 시절에 ‘평화의 섬’으로 지정됐지만, 다시 군사기지의 섬이 될 상황에 놓인 것이다.
그러나 제주는 여전히 보석 같은 섬이다. 지금이라도 생태환경과 평화를 지키는 것으로 정책 방향을 돌린다면, 늦지 않았다. 제주에는 아직 파괴되지 않은 한라산과 곶자왈, 오름들이 있다. 강정마을에는 평화센터, 평화상단처럼 ‘평화’라는 단어가 들어간 이름들이 등장하고 있다. 제주의 마을에는 아직 마을문화가 살아 있다. 제주 출신이든 외지에서 들어왔든, 제주의 가치를 소중하게 지키려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이 모여 더 늦기 전에 제주도라는 배의 방향을 돌릴 수 있기를 소망한다.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계엄의 밤, 사라진 이장우 대전시장의 11시간…“집사람과 밤새워”
[단독] 윤석열, 4·10 총선 전 국방장관·국정원장에 “조만간 계엄”
[단독] 노상원 ‘사조직’이 정보사 장악…부대 책임자 출입도 막아
“안귀령의 강철 같은 빛”…BBC가 꼽은 ‘올해의 이 순간’
[단독] 비상계엄 전날, 군 정보 분야 현역·OB 장성 만찬…문상호도 참석
‘28시간 경찰 차벽’ 뚫은 트랙터 시위, 시민 1만명 마중 나왔다
롯데리아 내란 모의…세계가 알게 됐다
공조본, 윤석열 개인폰 통화내역 확보…‘내란의 밤’ 선명해지나
28시간 만에 시민들이 뚫었다...트랙터 시위대, 한남동 관저로 [영상]
‘내란의 밤’ 4시간 전…그들은 휴가까지 내서 판교에 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