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탄소부담금으로 기본소득을

미국·캐나다 ‘기후변화 시민로비단’이 기후변화도 막고 기본소득 재원도 마련하는
방안으로 추진, 탄소배출권 경매 부쳐 시민 배당 제안도
등록 2014-10-09 15:45 수정 2020-05-03 04:27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조건 없이 누구에게나 돈을 주자’는 제안은 매력적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 얘기를 들었을 때, ‘돈은 어디서 마련하나’라는 생각을 한다. 돈을 주는 거야 좋지만, 국가가 그런 돈을 마련할 능력이 있는지를 의심스러워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생태적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기본소득을 지급하면 사람들이 더 많이 소비해서 지구가 더 망가지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상상력을 발휘한다면, 생태 위기도 해결하고 불평등도 완화하며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미 가정 66% 부담금 제도 생겨도 이득 얻어

‘기후변화 시민로비단’ 회원들이 미국 워싱턴의 거의 모든 의회 사무실에 ‘탄소부담금과 시민배당법’에 대한 로비를 한 뒤 모여 있다. 기후변화 시민로비단 누리집 갈무리

‘기후변화 시민로비단’ 회원들이 미국 워싱턴의 거의 모든 의회 사무실에 ‘탄소부담금과 시민배당법’에 대한 로비를 한 뒤 모여 있다. 기후변화 시민로비단 누리집 갈무리

그런 아이디어 중 하나로, 기후변화의 원인이 되는 온실가스 배출에 부담금(fee)을 부과하고, 그 돈을 시민들에게 배당금으로 지급하자는 제안이 나온다. 이 제안은 미국과 캐나다를 주요 활동 기반으로 하는 시민단체 ‘기후변화 시민로비단’(Citizens’ Climate Lobby)이 ‘탄소부담금과 시민배당법’(Carbon Fee and Dividend Act)이란 이름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 제안의 요지는 간명하다. 이산화탄소 1t당 15달러의 탄소부담금을 매기기 시작해 매년 t당 10달러씩 부담금 규모를 올려나간다는 것이다. 이 부담금은 미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1990년 배출량의 10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 때까지 계속 부과된다. 이렇게 탄소부담금이 부과되면 기업들은 화석연료를 덜 사용하고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탄소부담금이 저탄소 경제로 이행하는 걸 촉진하는 것이다.

그리고 탄소부담금으로 걷힌 돈은 다른 곳에 쓰지 않고 100% 시민들에게 배당금 형식으로 나눠준다. 이렇게 배당금을 지급하는 이유는, 탄소부담금이 부과되면 물가가 올라 가정에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민들에게 배당금을 매달 또는 1년에 한 번 균등하게 지급하자는 얘기다.

이렇게 배당금을 지급하면, 미국 가정 중에 66%는 탄소부담금 제도가 생기기 전보다 오히려 더 이득을 보게 된다. 물가 상승에 따라 늘어난 부담보다는 배당금으로 지급받는 돈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배당금을 받은 가정이 그 돈을 날로 비싸지는 화석연료 제품을 구입하는 데 쓰지 않고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데 사용한다면? 그 경우에는 저탄소 경제로의 이행이 더 빨라질 수 있다.

이런 효과를 기대하고 ‘기후변화 시민로비단’은 탄소부담금과 시민 배당을 연계한 입법이 통과될 수 있도록 시민 로비를 하고 있다. 화석연료에 지원되는 보조금을 철폐하는 것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제안은 보수와 진보를 불문하고 경제학자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다.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지낸 조지 슐츠나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게리 베커 같은 사람들도 지지하고 있다.

공유재 수익은 시민이 골고루 나눠야

이런 제안이 주목받는 이유는 그만큼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이 절실하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려면 세금이나 부담금을 매겨야 하는데, 당연히 기업들은 여기에 반발한다. 그리고 탄소세나 부담금은 기업활동을 위축시키고 물가를 올릴 것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물가가 오른다는 논리는 시민들을 멈칫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아무리 기후변화 대응이 중요하다지만, 당장 먹고사는 게 어려워지는 걸 반길 사람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탄소세나 부담금을 걷으면, 그 돈을 100% 시민에게 배당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온 것이다.

‘기후변화 시민로비단’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는 사례도 있다. 탄소에 부담금을 매기는 것은 아니지만, 탄소배출량을 규제하고 탄소배출권을 경매에 부쳐서 그 돈으로 시민 배당을 하자는 제안도 나온다.

2009년 미국 민주당 상원의원인 마리아 캔트웰은 탄소배출권 경매 수익의 4분의 3을 소비자에게 환급하는 내용의 법안을 제안했다. 그리고 2014년 미국 민주당의 크리스 반 홀런 하원의원은 ‘건강한 기후와 가정안정법’(The Healthy Climate and Family Security Act)이라는 이름의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이 법률은 탄소배출권 경매 수익의 100%를 분기별로 시민들에게 나눠준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를 통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가정에도 도움이 되게 하겠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두 마리 토끼를 잡자는 제안이다.

기본소득은 시민 배당의 성격을 갖는다. 한 사회의 공유재로부터 나오는 수익, 또는 공유재를 훼손해서 나오는 수익은 시민들에게 골고루 나눠져야 한다는 것이다. 공유재인 환경을 파괴하면서 얻는 수익이 있다면 그 수익은 회수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시민들에게 배당금으로 지급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래서 탄소부담금으로 지급되는 배당금은 기본소득으로 볼 수 있다. ‘환경을 지키는 기본소득’을 현실화하는 것이다. 기본소득의 생태적 효과는 기본소득의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느냐와 연관이 있다. 기후변화를 초래하는 온실가스 배출에 세금이나 부담금을 매기고, 그 돈으로 기본소득의 재원을 삼는다면, 기본소득은 생태적 전환을 촉진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핵연료에도 이런 식의 부담금 부과한다면

이런 상상을 확대해볼 필요도 있다. 만약 원전에서 사용하는 핵연료에 대해서도 이런 식의 세금이나 부담금을 붙이고 그 돈을 시민들에게 배당한다면 어떻게 될까? 원전에서 나오는 전기는 그만큼 비싸지고, 그 전기를 대량으로 사용하는 기업들의 부담은 늘어나게 될 것이다. 이는 탈원전의 필요성을 더욱 강화할 것이다. 그리고 배당금을 지급받은 시민들이 협동조합을 만들어 그 돈으로 재생 가능 에너지에 투자한다면?

그렇게 되면 기본소득은 탈원전, 탈화석연료의 경제로 이행하는 데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이제는 이런 상상력이 필요한 때다.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