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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약보다는 기술이 필요해

아줌마들의 과학수다- 에너지 위기 호들갑 떠는 시대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등록 2010-03-25 17:24 수정 2020-05-03 04:26
과학자와 기자가 함께 만드는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scienceon.hani.co.kr)의 흥미로운 글을 독자와 나누는 코너를 마련했다. 물리학·생물학·천문학·과학기술정책학 등 여러 분야 전문가와 이공계 출신 아줌마들이 전하는 갖가지 이야기와 뉴스 비평이 매주 독자 여러분을 찾아간다.
첫 회는 에너지 절약에 관한 ‘아줌마들의 과학수다’로 문을 연다. 이공계 출신 아줌마들이 모인 ‘과학수다’의 주인공은 ‘못생긴 평발의 등번호 21번 수다꾼’(박문영), ‘뾰족코에 둥근 안경 수다꾼’(신지원), ‘살포시 웃는 빼빼 수다꾼’(최동수), ‘볶음밥 위의 노른자 수다꾼’(이인숙)이다. 전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WIST)와 사이언스온의 공동 기획으로 진행된다. 편집자
번개는 자연에서 만들어지는 강력한 에너지의 흐름이다. 번개 같은 자연의 다양한 에너지도 인류에 도움이 되는 날이 올까. 한겨레 이정용 기자

번개는 자연에서 만들어지는 강력한 에너지의 흐름이다. 번개 같은 자연의 다양한 에너지도 인류에 도움이 되는 날이 올까. 한겨레 이정용 기자

인숙: 올 시즌 한국야구위원회(KBO)가 투수에게 12초 안에 공을 던질 것을 요구했대요. 단축한 시간만큼 야간 경기장의 전기를 절약할 수 있다는 것이었어요. 얼마 뒤에는 쓰레기통을 에너지 수거함으로 이름을 바꾸자는 신문 기사를 읽었어요. 그 순간 답답하고 화가 나더라고요. 에너지를 절약하자는 건지, 에너지 절약을 보여주자는 건지.

개인의 습관보다 나라의 움직임이 중요

문영: 그 말을 들으니 대한민국의 에너지를 관리하는 곳이 어딘지 궁금해지네요. 에너지관리공단인가? 얼마 전 휴지를 아껴쓰는 방법에 관한 기사를 읽었어요. 화장실 휴지를 위쪽으로 풀리게 걸어두면, 필요한 만큼만 뜯어서 쓰게 돼 낭비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었어요. 반대로 아래쪽으로 풀리게 걸어놓았을 때와 비교하면 한 집에서 몇 그루의 나무를 심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는 거예요. 재밌는 기사라고 생각하고 무심히 넘겼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씁쓸해지더라고요.

문영: 지금의 에너지 절약은 개인의 습관보다는 기술을 필요로 해요. 아껴쓰기보다는 에너지 효율이 높은 방법으로 바꾸는 게 훨씬 효과적이죠. 백열등은 발광다이오드(LED) 전구로 바꾸고, 전력 시스템도 스마트 그리드(차세대 친환경 전력 시스템)로 바꾸고, 그래서 개인보다는 나라가 앞장서서 움직여야 해요.

동수: 그런데 이를 이끌어야 하는 정치는 ‘친박이네’ ‘친이네’로 에너지를 낭비하고, 움직여야 하는 행정은 한강다리의 아름다움과 광화문 광장의 화려함만 보여주기 바쁘고, 실천할 수 있는 국민만이 티끌 모아 태산을 만들려고 하니 답답한 거죠.

인숙: 어릴 적부터 몸에 밴 습관이 아닌 잠시 불편함을 참는 에너지 절약은 고양이가 눈 가리고 아옹 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요. 가렸다고 고양이가 아닌 것은 아니니까요. 그런데 최근 에너지 절약과 에너지 부족 문제가 불거지는 이유는 뭘까요? 에너지원인 석유, 석탄, 가스 같은 화석연료가 고갈되고 있어서? 비싸지 않으면서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는 대체에너지가 없어서? 지구의 기후변화 때문에? 아니면 에너지로 서열화돼 있는 지구 연합에 새로운 질서가 필요해서?

문영: 그 모두겠지요. 100년도 안 돼 바닥을 드러내는 화석연료를 주 에너지원으로 선택한 시작이 잘못된 것인지, 100년 뒤 인구가 4배로 증가할 줄 몰랐던 어리석음이 문제인지, 산업화의 발전 속도를 조절하지 않은 사람들의 욕심 때문인지는 몰라도 지금의 화석에너지 사용은 지구와 지구 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에 큰 영향을 주고 있어요.

동수: 옛날에는 사람의 힘과 주변에서 누구나 얻을 수 있는 자연(태양·바람·물 등)의 힘을 이용해서 일을 했어요. 에너지가 필요하면 필요한 만큼 생산하고 소비하는 합리적인 체계였지요. 많은 양의 일을 하려면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생산과 소비가 동시에 이루어졌어요. 지금의 화석에너지는 특정 지역에서 소수의 누군가에 의해 생산돼 돈을 주고 사고파는 제품이 되었어요. 많은 사람들의 삶을 웃고 울게 하는 힘의 에너지가 된 거죠.

독점적 생산,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양분해

지원: 현대사회는 편리한 생활용품만큼 에너지의 노예가 되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어요. 길들여진 쾌적함을 포기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죠. 그래도 요즘은 친환경이라는 표어 아래 야구장에 태양광 발전시설을 만들고, 아파트 옥상에 태양 전지판을 설치하고, 제철 음식물을 먹으려고 해요. 필요한 에너지를 소규모로 생산하고 소비하는 형태로 바꾸려는 움직임인 것 같아요. 무척 다행한 일이죠.

인숙: 가까운 곳에서 스스로 움직여 먹을 것을 얻고 편리함을 구하는 것은 건물 안에 갇혀 불분명한 일을 할 때와는 다른 자부심과 자신감을 주지 않을까요?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그득한 행복이 아닐까요?

지원: 한곳에서 에너지를 생산·공급하는 구조는 에너지 소비를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양분하잖아요. 그러다 보니 나라와 나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에너지 격차만큼 큰 거리를 만들어요.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많은 분쟁의 원인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 싶네요.

동수: 라디오를 듣다가 ‘세상 참 많이 변했다!’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생활보호 대상자에게 생계비와 더불어 에너지 보조금을 지급하고, 이웃돕기 성금으로 에너지 포인트를 모았다는 것이었어요. 에너지 절약을 실천하고 얻은 포인트로 추위에 떠는 이웃을 돕는 새로운 방법이 생긴 거죠.

문영: 아프리카 어린이에게 털모자를 떠서 보내자는 운동과 같네요. 밤과 낮의 기온 차이가 심해 밤의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생명을 잃는 아이들을 돕자는 운동이었죠. 한편에서는 ‘상태변화물질’(PCM·Phase Change Material)이라는 최첨단 소재로 200∼300도의 온도 변화에 견딜 수 있는 우주복도 만들어내는 시대라지만, 털모자 하나가 없어 생명을 잃는 가난한 사람들이 있는 시대이기도 하다는 게 새삼 가슴이 아프네요.

지원: ‘기술이 당신을 자유롭게 하리라’는 광고 문구를 요즘 많이 보는데, 에너지를 생산·저장하는 기술이 모든 사람에게 골고루 알려져 모두가 스스로 자유로워졌으면 해요.

동수: 어려운 경제를 살릴 수 있는 기술로 인정된 원자력발전에 대해 말 안 하고 넘어갈 수 없네요. 아랍에미리트 원자력발전소 건설 수주로 우리나라가 벌어들일 수 있는 외화가 얼마나 많은지는 누누이 들었고, 그로 인해 실업률을 조금 낮출 수 있다는 희망적인 추측에도 그럴 수 있을 거라 생각되지만 왠지 걱정도 돼요.

‘과학 수다’ 주인공들. 왼쪽부터 박문영·신지원·최동수·이인숙씨.

‘과학 수다’ 주인공들. 왼쪽부터 박문영·신지원·최동수·이인숙씨.

무한한 자연에너지가 진짜 대안

문영: 핵폭발로 인류가 멸망한 미래의 지구를 다룬 영화에 익숙해선지 화석에너지를 대체할 클린 에너지로 자리매김하는 듯한 핵에너지는 거부감이 드네요. 핵에너지가 핵무기와 관련돼 있다는 생각은 기우일까요? 핵무기를 보유한 나라의 든든한 배짱을 바로 옆에서 실감하고 있어서인지 반갑지만은 않은 게 솔직한 심정이에요.

인숙: 비를 피해 들어간 북카페에서 우연히 집어든 책이 세계재생가능에너지위원회 의장인 헤르만 셰어의 책이었어요. 유한한 자원에서 얻어지는 화석이나 핵에너지가 아닌 무한한 자원(태양·바람·파도·물·유기물 등)에서 에너지를 얻는 재생 가능 에너지만이 미래 에너지의 대안이라는 주장이었어요. 모든 사람에게 충분한 에너지를 지속적·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은 설득력 있고 매력적이었어요.

동수: 요즘 우리나라도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어요. 음식물 쓰레기가, 대관령 언덕의 세찬 바람이, 서해 바다의 밀물과 썰물이 에너지원이 되는 재생에너지는 지구 환경을 보호하고, 현재의 삶을 유지하는 에너지로 각광받고 있지요.

지원: 재생에너지 시설은 새로운 관광명소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산업으로 지역 경제에 단비 같은 존재가 되고 있죠. 그러나 에너지를 생산하는 원료는 바뀌었지만 운반 방법이 화석에너지와 다르지 않아 에너지 효율 면에서는 부족해요. 에너지 생산을 대형화하지 않고 소비가 이뤄지는 곳에서 필요한 만큼 소규모로 직접 생산하는 구조로 바뀐다면 효율적일 것 같은데, 현재의 도시 형태에는 적합할 것 같진 않아요.

인숙: 생태도시를 꿈꾸는 많은 사람이 활동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생태도시의 궁극적인 목표가 에너지의 자급자족이죠. 자연이 주는 것을 최대한 이용하고 인간이 새롭게 만드는 인공 구조물을 최소화해 자연과 교감하며 살려는 사람들의 노력이에요.

동수: 재밌는 생각을 해봤어요. E=mc²이라는 아인슈타인의 이론에 따르면, 모든 존재하는 것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주변의 모든 것은 형태만 다를 뿐 에너지인 거죠. 내게 필요한 에너지로 바꾸는 방법만 안다면 살아가는 동안 에너지는 얼마든지 얻을 수 있을 거라는 황당하지만 가능할 것 같은 상상을 해봤어요.

‘흥’이라는 에너지를 만드는 일

인숙: 지구라는 행성이 만들어지기까지, 인류라는 생명이 탄생되기까지 주변에 아무런 의미 없이 존재하거나 일어난 일은 없었어요. 태양의 복사에너지, 소행성의 충돌에너지, 운석의 이온들, 달의 인력, 판의 이동, 화산 폭발, 지진 등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지구라는 에너지를 탄생시켰고, 인류라는 생명을 탄생시켰죠.

문영: 란 영화에서 사람은 매트릭스 시스템의 에너지원으로 등장해요. 영화를 볼 때는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정말 대단한 상상력이다’라고 생각했는데, 아무 근거 없는 상상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실제로 사람 몸 안에 있는 인공 장기를 움직이는 에너지원으로 생체연료전지가 개발되고 있으니까요.

지원: 사람은 사용할 수 있는 물질로서의 에너지 말고 더 심오하고 불가사의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기적이라 불리는 많은 일들이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일어나죠. 그것도 일을 해냈다는 의미에서는 에너지라고 할 수 있죠. 또 올림픽에서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선수들은 신나고 즐거워하는 ‘흥’이라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더라고요.

동수: 에너지의 사전적 의미는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에요. 스스로 변화하거나 다른 무언가를 움직이게 하는 것이죠. 3월은 꿈틀꿈틀 일을 시작하는 달이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3월을 ‘에너지의 달’이라고 하면 어떨까요. 모두가 모든 일을 새내기의 떨림과 설렘으로 시작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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