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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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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초적 본능’ 후각을 복원하라



항균·항생제 등 인공화합물로 위생적 환경 이루면서 점차 무뎌진 후각…
냄새는 미생물 등 생태계와 소통하는 통로
등록 2010-09-15 16:20 수정 2020-05-03 04:26
최근 일본의 한 병원에서 슈퍼박테리아에 감염된 환자 46명 중 27명이 사망해 충격을 주었다. 슈퍼박테리아 모습. 뉴스 화면 캡처

최근 일본의 한 병원에서 슈퍼박테리아에 감염된 환자 46명 중 27명이 사망해 충격을 주었다. 슈퍼박테리아 모습. 뉴스 화면 캡처

사람의 다섯 가지 감각 중에서도 과거의 기억을 불러내는 데 가장 효과적인 것이 냄새라고 한다. 감각의 수용체와 그 감각을 처리하는 뇌의 거리가 가장 가깝기 때문이기도 하고, 진화의 역사에서 냄새야말로 생존과 생식에 가장 중요한 감각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개들은 수만 년을 인간과 더불어 진화했고 그렇게 인간의 문화생활에 적응해왔지만, 지금도 집을 나서면 킁킁거리며 주변 상황을 살핀다. 나 역시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부임한 병원의 인턴 숙소에 놓여 있던 방향제와 비슷한 냄새를 맡을 때마다 30년 전의 힘들고 즐거웠던 경험을 통째로 떠올리곤 한다.

병원과 화장실의 기억, 크레졸

진화 과정 속에서 어떤 냄새가 생존과 생식에 중요했다면 그것은 반사적 본능에 새겨지기까지 한다. 우리가 동물의 배설물과 부패한 음식물에서 나는 냄새를 피하고 잘 요리된 음식과 매력적인 이성에게서 나는 냄새에 끌리는 것은 축적된 경험적 지식에 의한 것이기보다는 진화된 본능에 가깝다. 인간을 포함한 많은 동물들이 먹이와 잠재적인 성적 파트너에 관한 정보를 페로몬이라는 분비물을 통해 전달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냄새에 관한 정보는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는 동시대인의 집단기억 속에 새겨져 공감을 일으키기도 한다. 해부학 실습실의 기억은 반드시 지독한 방부제 냄새와 함께하며, 민주화운동의 기억은 매캐한 최루가스 냄새와 분리해서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

지금의 젊은 세대는 매일 샤워를 하고 각종 탈취제와 향수, 고도로 분화된 여러 가지 기능성 화장품과 항균제품에 묻혀 살아가기 때문에 특별히 깨끗함이나 위생을 냄새와 관련해 기억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하지만 40대 중반 이상의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크레졸이라는 소독제의 냄새를 기억할 것이다. 동네 의원에 가면 으레 크레졸을 탄 물이 담긴 세숫대야가 있었고 의료인들은 그 물에 손을 담가 소독을 했다. 크레졸은 재래식 화장실의 소독제로도 많이 쓰였는데, 그러다 보니 그 냄새는 병원의 위생과 화장실의 역겨움이라는 이미지를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어중간한 상징이 돼버렸다.

크레졸은 ‘석탄산’이라 부르는, 그리고 1991년 두산전자가 낙동강에 방류해 큰 사회문제가 되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가 사람의 혈관에 주입해 대량학살에 사용했던 페놀과 사촌 간이다. 이 페놀이 의학 역사에 처음 등장한 것은 1865년이다. 당시는 세균이 질병의 원인인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았고, 상처 부위의 감염이 곧 죽음으로 이어지기도 했던 시절이다. 영국의 외과의사 조지프 리스터는 지독한 악취를 풍기는 오수를 정화하는 데 페놀이 뛰어난 효과가 있었다는 기사를 읽고 이 기술을 수술 환자의 상처에 적용해 큰 성공을 거둔다. 결국 부패와 감염은 같은 원인을 가진 것으로 확인됐다. 이 소독술은 이보다 조금 먼저 도입된 전신마취술과 함께 현대 외과의학의 신기원을 여는 촉매가 된다.

하지만 지독한 냄새와 독성 때문에, 그리고 소독된 수술 가운과 장갑, 마스크 등 감염을 막을 수 있는 간편한 기술들이 개발되면서 이 외과수술의 영웅은 점차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다. 우리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크레졸 냄새는 그 역사의 흔적이다. 1880년대를 지나면서 결핵과 콜레라를 일으키는 서로 다른 세균들이 확인되자 이제 질병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균이라는 악당이 일으키는 것이 되었고 세상은 그들과의 전쟁터가 된다. 리스터의 페놀이 그 악당들을 보지도 못하면서 그들이 있을 만한 곳에 퍼부은 구식 폭탄이었다면, 20세기 중반에 발명된 항생제는 먹을거리나 주사를 통해 몸속에 흡수시켜 필요한 부위에 전달하는 좀더 세련된 포탄과 같은 것이었다. 이제 인간은 이 전쟁에서 이길 수밖에 없고, 감염성 질병의 고통은 까마득한 옛이야기가 될 터였다.

슈퍼박테리아 사태의 충격

하지만 결론을 내기 전에 감염과 관련된 또 다른 냄새를 떠올려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기름을 먹인 누런 종이와 거기에 붙인 끈적끈적한 검갈색 덩어리인 ‘이명래 고약’의 아주 특별한 냄새다. 50대 이상의 한국인이라면 피부가 곪아서 생긴 부스럼(종기)에 이것을 성냥불에 달궈 붙여두고 며칠이 지났을 때 노란 고름의 뿌리가 달려 나오는 경험을 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발근고’(拔根膏)라 부르기도 했다.

지금은 여러 가지 형태로 나와 있는 항생제와 소독제가 많아 부스럼 따위는 아무런 위험이 되지 않지만, 이 약이 팔리기 시작한 1906년은 항생제가 발명되기도 훨씬 이전이었을뿐더러 세균을 비롯한 서양의학의 개념 자체가 제대로 소개되지도 않았을 때였다. 에도 종기로 고생하거나 그로 인해 목숨까지 잃은 임금이 예닐곱은 나올 정도로 종기는 위험한 병이었다. 오죽하면 궁궐에 종기 치료를 전담하는 ‘치종청’(治腫廳)이라는 관청까지 두었을까.

때로는 종기 치료에 탁월한 재능을 보이는 민간의 의사를 불러들여 벼슬을 주고 ‘신의’(神醫)라 칭송하기까지 했지만, 당시의 치료법을 유추해보면 주로 고름이 잡힌 부위를 절개해서 고름을 빼내는 일이 거의 전부였을 것이다. 탕약과 고약을 쓰고 침을 놓기도 했으나 이 역시 경험과 추측에 의한 것일 뿐 원인을 직접 겨냥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이명래 고약은 한방의 전통적 방법을 따르되, 병의 국소적 원인을 제거한다는 서양의학의 관점을 적용한 치료법이었다. 이명래 선생은 프랑스인 선교사의 도움을 받아 이 약을 개발했다고 하는데, 선교사의 도움이 약의 구체적 성분이나 제조법이기보다는 국소적 병인(病因)을 도려내는 서양의학의 사유 방식이었을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서양의학의 소독과 항생제가 정상 조직을 포함한 광범위한 파괴를 전제로 하는 폭탄의 행태를 보이는 반면, 이 고약은 불필요한 파괴를 최소화한다는 차이는 있다.

우리의 감각적 본능은 크레졸과 이명래 고약의 냄새를 동시에 불러내지 못한다. 각각의 냄새가 불러내는 기억의 장소와 맥락이 위생을 강조하는 서양식 병원과 그리 청결하다고 할 수 없는 전통적 주거지로 판이하기 때문이다. 고약과 페놀로 대변되는 전통과 현대의학의 대결은 현대의 현란한 승리로 귀결됐고, 우리는 지나치리만치 위생적인 환경에서 살아간다. 페놀처럼 독한 냄새를 풍기지 않으면서도 각종 세균을 죽일 수 있는 인공화합물이 넘쳐나고 이제 청결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그래서 1960년대 말에 이르면 세균에 의한 질병은 인류의 역사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희망이 팽배했다.

‘미생물을 친구로’ 캠페인 벌어져

그러나 21세기도 10분의 1이나 지난 지금 그 희망은 점차 공포로 바뀌고 있다. 에이즈(AIDS),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구제역, 조류독감, 신종플루, 광우병과 같이 듣도 보도 못했던 신종 전염병의 공포가 다시 찾아온 것이다. 사람들은 1918년 전세계에서 5천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스페인 독감을 떠올린다. 이런 병들은 바이러스와 프리온처럼 세균과는 다른 원인을 가지지만, 세균성 감염이라고 상황이 더 좋은 것도 아니다. 최근 일본의 한 병원에서는 어떤 항생제에도 듣지 않는 슈퍼박테리아에 감염된 환자 46명 중 27명이 사망한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한때 거의 정복한 것으로 여겼던 결핵균도 대부분의 항생제에 저항을 가지는 다제내성을 진화시켜 인간의 과학에 도전하고 있다.

인간이 인공화합물에 의지해 세균과의 전쟁을 치르면서 후각을 비롯한 감각적 본성을 점차 잃어버리는 동안 그들은 꾸준히 인공화합물에 대한 적응 기제를 진화시킨 결과다. 그래서 미국 미생물협회와 같은 전문가 단체는 세균을 포함한 미생물을 적으로 여길 것이 아니라 친구로 여겨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는 내용의 대중 캠페인을 벌이기까지 한다.

냄새는 화학적 신호를 통해 생태계의 구성원들이 생존에 필요한 정보를 주고받는 가장 원초적인 소통 수단이며, 그것을 유발하는 미생물 또한 우리가 소통해야 할 대상이다. 우리가 먹는 음식물의 대부분도 그들의 도움을 받아서 만든 발효 식품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가 몸담고 있는 생태계와의 소통을 위해 잃어버린 후각을 되찾는 운동이라도 벌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최근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한국방송 드라마 의 주인공이 성공하게 되는 비결도 세상을 포용하는 마음과 원초적 후각 때문이 아니던가.

강신익 인제의대 교수·인문의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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