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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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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전 숨진 어머니의 세포가 살아있다면



사후에도 배양돼 질병치료와 신약개발에 쓰이는 희귀병 환자의 세포…

본인과 가족에게 보상은커녕 통보조차 안 되기도
등록 2010-11-17 18:01 수정 2020-05-03 04:26

우리는 매일 조금씩 몸의 일부를 내다 버린다. 얼굴과 이를 닦고 머리를 감고 배설을 할 때마다 머리카락과 피부와 내장에서 빠져나온 많은 수의 세포가 하수구를 통해 어디론가 흘러간다. 목욕탕에 가서는 거친 수건으로 피부를 빡빡 문질러 몸의 일부를 제거하면서 희열을 느끼기도 하는데 그때 제거되는 ‘때’는 바로 우리 피부를 구성하던 세포다. 그렇게 버려지는 세포를 내 몸의 일부라고 하는 이유는, 그것이 몸의 물질적 구성요소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속에 나만의 유전정보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거액의 가치를 지닌 생체정보

» 희귀병 환자의 세포는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의학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엄청난 이익을 안겨주기도 한다. 한 병원 연구소에서 연구원이 실험을 진행 중이다.한겨레 자료

» 희귀병 환자의 세포는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의학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엄청난 이익을 안겨주기도 한다. 한 병원 연구소에서 연구원이 실험을 진행 중이다.한겨레 자료

히포크라테스 이후 18세기 이전까지의 서양의학에서 가장 흔한 질병치료법은 피를 뽑아내는 것(瀉血)이었다. 그들은 우리 몸이 혈액을 포함한 네 가지 액체로 구성돼 있다고 믿었는데, 이 중 혈액은 뜨거운 성질을 대표한다. 따라서 열이 나는 증상이 있으면 뜨거운 성질의 피가 지나치게 많은 때문이라고 여겨 상당한 양의 피를 뽑았던 것이다. 조지 워싱턴과 쇼팽 등 유명인의 죽음은 지나친 사혈이 주요 원인이라는 게 정설이다. 지금 우리 농촌의 노인들이 봄이면 링거(수액) 주사를 맞아 기력을 회복하려 하듯 중세 유럽인들은 한두 병의 피를 뽑는 걸로 봄맞이를 했다고 한다.

피가 온몸을 순환하며 산소를 공급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피는 버려야 할 몸의 여분이 아니라 지켜야 할 몸의 자원이 된다. 이제 피를 뽑아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피를 내 몸으로 옮기는 수혈이 중요한 치료 수단이 되고, 피를 팔고 사는 매매혈(賣買血)이 의료산업의 중요 수입원이 된다. 하지만 1970년대 후반에 매혈이 금지되고 자발적 헌혈로 혈액 수요량을 충당하는 제도가 정착돼 이제 피는 사고파는 상품이 아닌 자발적으로 주고받는 선물이라는 인식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식의학이 발전해 망가진 신장이나 간을 다른 사람의 그것으로 대체할 수 있게 되면서, 몸의 일부가 귀중한 생명의 선물이라는 인식은 더욱 확산되었다. 하지만 고속도로 휴게소의 화장실에는 여전히 장기를 팔고 산다는 불법 광고가 넘쳐난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기증된 장기와 그로 인한 여분의 생명을 고마운 선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확보해야 할 값비싼 상품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우리보다 생활수준이 낮은 중국이나 동남아 국가로 날아가 매매된 장기나 처형된 죄수의 장기를 이식받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여기서 몸의 일부인 장기는 생명의 기계적 대체물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장기이식이 일반화될 수 있었던 것은 장기를 기계적으로 대체하는 수술법뿐 아니라 장기의 본래 주인과 새 주인 사이에 일어나는 면역반응을 억제하는 지식과 기술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 몸의 일부가 나의 것인 이유는 그것이 몸속에서 일정한 기능을 수행할 뿐 아니라 나를 구성하는 나머지 세포들과 똑같은 유전정보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일란성 쌍생아가 아니라면 이 유전정보는 세상의 다른 누구와도 같지 않다. 모든 사람은 자기만의 유전정보를 가졌고 그것이 생물학적 정체성의 근거다. 그런데 때로는 이 생물학적 정체성이 엄청난 지적 재산이 되기도 한다. 내가 희귀한 질병을 앓고 있다면 그 정보의 가치는 더 커진다. 그리고 상당한 양의 생체정보가 중세 서양인이 건강상의 이유로 뽑아서 버리던 피에서 온다. 피·조직·장기 등의 생체물질은 그 자체로도 귀중한 자원이지만 그 속에 들어 있는 정보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잠재적 가치를 가지며 거액을 다투는 소송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불멸의 세포’가 만들어낸 소외

미국 시애틀의 사업가 존 무어는 ‘털세포백혈병’(Hairy Cell Leukemia)이라는 희귀병을 앓는 환자였다. 그는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학의 최고 전문가를 찾아 진료를 받았고 완치되었다. 하지만 이후 7년 동안 의사들은 검사를 이유로 그를 계속 로스앤젤레스로 불러 혈액·골수·피부·정액 등의 샘플을 채취했고, 환자의 피 속에 있던 특이한 화학물질에 대해 특허를 출원했다. 스위스의 제약회사인 산도즈가 무어에게서 뽑아낸 세포주를 개발하는 대가로 1500만달러를 지불했다는 얘기도 있었다. 뒤늦게 이 사실을 눈치챈 무어가 소송을 제기했지만, 캘리포니아주 대법원은 부가가치를 생산한 신체조직의 소유권이 조직 제공자인 자신에게 있다는 무어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발생한 모든 수익은 의사와 생명공학회사에 귀속된다고 판결했다(1990년).

내 몸의 일부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살아남아 의학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엄청난 이익을 안겨주기도 한다. ‘헬라’(HeLa)라 이름 붙여진 자궁경부암 세포주가 인간에게서 최초로 확립된 불멸의 세포주다. 이는 헨리에타 랙스라는 젊은 흑인 여성 환자의 암세포에서 유래했는데, 이 세포는 1951년에 채취된 이후 수도 없이 배양·증식돼 전세계 실험실은 물론 우주 공간의 인공위성으로까지 퍼져나갔다. 정상적인 세포는 50~60번 분열하면 증식을 멈추지만 이 세포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다양한 조작을 가하고 지속적으로 관찰하는 연구가 가능했다. 전세계 과학자들은 그렇게 상업적으로 증식된 헬라 세포주를 이용해 다양한 의학 연구를 했고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하는 등 성과를 내며 인류 복지에 기여했다.

이 과정에서 훌륭한 과학적 성과를 내고 유명해지거나 돈을 번 사람도 많지만 정작 세포의 주인이던 환자와 가족에게 그 과정을 설명하거나 동의를 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자식들이 어머니의 세포가 계속 증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것도 어머니가 죽고 25년이나 지난 뒤 과학자들이 유전정보를 비교하기 위해 가족들에게 피를 제공해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이 알려진 이후로도 환자의 가족은 병원과 기업 또는 국가로부터 어떠한 지원도 없이 아무 의료보험에도 가입하지 못한 채 고단한 말년을 살아간다.

환자의 자궁에서 떨어져나온 몸의 일부는 과학자들이 제공하는 영양분을 섭취하며 본래 주인과는 아무 상관 없는 생명을 살아간다. 그리고 본래 주인이 살았던 기간(30년)보다 훨씬 긴 60년 이상을 살고 있는데, 과학자들의 지원이 멈추지 않는 한 그 생명은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버려진 몸의 일부가 나름의 새 삶을 살아가며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몸의 일부가 만들어내는 과학 이야기와 그 몸의 주인이 살아온 인간적 삶의 이야기가 서로를 소외시킨다는 점이다. 과학자는 세포를 제공한 ‘사람’에게는 아무 관심이 없고 세포를 제공한 환자나 가족은 ‘불멸의 세포’라는 은유적 표현 뒤에 숨은 과학의 의미와 내용을 이해하는 데 큰 곤란을 겪는다.

10년 동안이나 랙스의 가족을 밀착 취재한 뒤 그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낸 작가 레베카 스크루트는, 랙스의 딸 데보라가 죽은 어머니의 세포가 불멸한다는 말을 이해하는 데 얼마나 큰 어려움을 겪는지 차분하게 보여준다. 데보라에게는 어머니의 삶과 죽음, 그녀의 세포가 만들어내는 과학적 성과, 그리고 그것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명분과 이권의 다툼 등을 자신의 삶과 관련지어 어떻게 이해하고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지가 가장 큰 과제다. 그녀는 작가의 도움을 받아 그 과제를 수행한다. 그리고 담배농장 노동자이던 어머니와 가족이 살았던 삶의 맥락에서 그녀가 과학과 맺은 인연을 조명하려고 한다. 첫 목표는 그녀의 고향에 작은 기념관을 짓는 것이었고, 말년에는 어머니와 관련된 이야기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과학을 공부하겠다는 열망을 불태운다.

과학과 인생의 소통을 위하여

이 책의 이야기는 어머니가 죽은 지 50년도 훨씬 지난 시점에서 그 자식들이 과학자와 만나 시험관에 담긴 어머니의 세포를 직접 대면하는 장면에서 정점에 이른다. 죽은 어머니에게서 나온 세포의 실물(과학연구의 직접 대상)과 그것을 가지고 중요한 연구를 하는 과학자(연구 주체), 그리고 죽은 어머니와 많은 유전정보를 공유하는 자식들(과학연구의 인간적 맥락)이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이제 50년 동안 추상적 과학과 풍부한 삶의 맥락 사이의 소통을 막았던 불통(不通)의 벽에 작은 균열이 생기는 것을 본다. 과학의 이야기와 삶의 이야기가 만나 제3의 이야기를 준비하는 것이다.

강신익 인제대 의대 교수·인문의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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