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외국에 있을 때 말이 통하지 않아서 답답함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런데 같은 언어를 쓰면서도 전혀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답답함을 느낄 때가 있다. 누구는 ‘코드’가 맞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누구는 ‘색깔’이 같은 것이 중요하다고 하고, 누구는 ‘이념’을 공감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표현은 달라도, 주파수가 같아서 생기는 공명 현상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뜻일 것이다. 공명 현상은 자연계에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과도 연결돼 있다.
<font color="#00847C">춘향의 그네를 멀리 미는 힘</font>동수 공명 현상은 생활 속 어디서나 볼 수 있어요. 그네가 멀리 나갈 수 있게 미는 것도 공명 현상을 이용하는 거예요. 요가에서도 공명을 이용한 호흡이 있어요. 창조와 보존과 파괴를 뜻하는 ‘옴’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옴~’ 하고 소리를 내다가 그 진동을 머리까지 옮겨서 몸의 에너지를 머리로 끌어올려 머리를 정화시킨다는군요.
지원 요가뿐 아니라 대체의학에서도 공명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우리 몸의 각 조직과 기관에서는 미약하지만 각각의 고유 파동을 내고 있다고 해요. 이 파동을 ‘에너지’ 또는 ‘기’라고 말하고요. 한방이나 불교에서는 인체뿐 아니라 마음에도 고유의 주파수가 있어 ‘기’나 ‘에너지’를 갖는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부정적인 마음을 가질 때와 긍정적인 마음을 가질 때 다른 주파수가 발생하고, 부정적인 마음에서 생기는 주파수는 몸에 안 좋은 영양소와 공명 현상을 일으켜 몸속에 쌓이게 한다는 주장도 있어요. 음악치료처럼 소리를 이용한 치료는 오래전부터 인류가 사용한 방법이에요. 요즘은 사운드테라피라는 분야까지 생겼더라고요.
인숙 첨단장치에도 이미 공명 현상을 이용하고 있어요. 광학공진기를 이용해 만든 레이저나 핵자기 공명 현상을 이용한 자기공명영상장치(MRI) 같은 것 말이에요.
문영 주부들은 세탁기를 사용할 때 공명을 느낄 수 있어요. 세탁기가 탈수하다가 ‘쿵’ ‘쾅’ 소리를 내면서 막 흔들릴 때가 있잖아요. 그때 공명이 일어난 거예요. 탈수할 때 세탁통이 돌면서 세탁기에 규칙적인 충격을 가하고 그 충격이 어느 순간 세탁기의 고유주파수와 일치하면 진폭, 즉 에너지가 커지고 그 에너지가 소리와 흔들림으로 나타나는 거잖아요. 텔레비전·라디오도 내부 수신기의 주파수를 방송사 전파의 주파수와 일치시키는 일종의 공명 장치예요. 우리 주변에 공명 현상이 정말 많군요.
동수 사람의 가청 주파수 범위에서 악기의 진동을 통한 공명 현상을 연구하는 음향학이나 음악에서도 공명은 중요하지요. 현악기도 관악기도 타악기도 모두 공명 현상을 이용한 것이고 그걸로 인간은 아름다운 소리를 만드는 것이잖아요. 양쪽이 고정된 현악기의 진동과 끝부분이 뚫린 관악기의 진동이 달라서 악기 음색도 달라지고, 진동하는 파의 파장에 따라 고유주파수가 결정되고 옥타브가 만들어지지요. 과학 원리를 알고 음악을 바라보면 한층 더 깊게 음악을 이해할 수 있어요.
문영 아름다운 소리 하니까 오래전 바닷가에서 주운 소라 껍데기가 생각나네요. 소라 껍데기를 귀에 대면 ‘쏴~’ 하는 바다 소리가 들려 기분이 좋잖아요. 소라 껍데기가 내는 소리는 주변의 여러 가지 소리 중에서 소라 껍데기의 모양과 부피에 가장 잘 공명하는 소리를 반사해주는 거예요. 기도하는 손 모양을 한 뒤 조개가 벌어진 것처럼 엄지손가락이 있는 방향을 조금 벌려 귀에 가져다 대면 같은 소리가 들려요. 이렇게 말하고 나니 소라 껍데기와 함께 가져온 즐거웠던 추억도 기계적으로 분석되는 것 같아 조금 아쉽네요.
인숙 파동이 닫힌 영역 안에 있으면 반사를 거듭하면서 여러 파동이 만들어져요. 여러 파동 중 가장 잘 활동하는 파동이 있는데, 이 파동의 주파수를 물체의 ‘고유주파수’라고 해요. 외부에서 고유주파수와 비슷한 주파수를 가진 진동이 가해지면 파동이 강해지는데, 이런 현상을 공명이라고 해요.
<font color="#C21A8D">고유주파수에 비슷한 진동 더해지면…</font>동수 유리잔이 오페라 가수가 내는 일정한 음의 연속적인 소리에 깨지는 것과 같은 현상이지요. 신기한 것은 더 큰 파장에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오직 특정한 파장에만 반응하는 거지요.
지원 파동 이야기를 하려면 빛에 대한 생각을 먼저 해야 해요. 빛의 본성을 밝히는 것은 오랜 세월 동안 과학자에게 어려운 문제였어요. 뉴턴은 빛이 입자라고 주장했어요. 하지만 로버트 훅이나 데카르트는 파동설의 기초를 만들고, 하위헌스는 빛의 파동설을 완성했지요. 어느 이론이 우세한지 증명하지는 못했지만, 당시 뉴턴의 명성 때문에도 입자설은 무시할 수 없었어요. 토머스 영의 이중슬릿 실험(실험 대상을 이중슬릿 실험 장치에 통과시키면 파동일 경우 회절과 간섭의 성질이 나타난다. 토머스 영은 실험 장치에 빛을 통과시켜 스크린에 비치는 간섭무늬를 얻었다) 으로 파동의 중첩을 보여주고 나서야 빛의 파동설에 힘이 실렸지요.
동수 파동설이 새로운 권력으로 자리잡게 되었는데, 아인슈타인의 광양자설로 빛이 입자라는 관점을 다시 가지게 돼요. 프랑스 물리학자 드브로이는 빛이 입자라는 아인슈타인의 가설을 보고 오히려 모든 입자도 파동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착상을 하게 되지요. 역발상이라고 할까요. 처음에는 드브로이의 이론이 주목받지 못했지만 아인슈타인이 관심을 갖게 되면서 부각됐어요. 결국 그 이론은 불확정성 원리를 이끌어냈고, 이런 이론을 비판했던 아인슈타인이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았다”는 말을 하게 했지요. 마치 꼬리에 꼬리를 무는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할까요.
문영 하나의 과학이론이 진리처럼 믿어지다가 그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 쌓이고 쌓이면 혁명이 일어나듯이 새로운 과학이론이 등장한다는 토머스 쿤의 ‘과학혁명’이 생각나네요. 과학자도 사람인지라, 새로운 이론은 기존 이론에 도전하는 것이 되는군요. 도전이 가능하니 오히려 열려 있는 집단이라고 생각해야 하나요. 중세를 ‘암흑시대’라고 부른 이유는 지식의 단절 때문이라던데, 이론들의 충돌은 좀더 완성된 생각으로 나아가는 데 필요한 당연한 절차처럼 보이네요.
지원 빛과 소리 모두 진동을 하지요. 그 에너지는 주파수를 가지고 있고요. 공명이 잘돼야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 수 있어요. 또 공명은 에너지를 증폭시킬 수 있잖아요. 에너지가 증폭되는 것은 기대하지 못한 창조와 치유를 할 수도 있지만 파괴를 가져올 수도 있어요.
<font color="#008ABD">‘강철 다리’ 순식간에 무너뜨리기도</font>인숙 1940년 미국 워싱턴주에 타코마 다리가 개통됐는데, 첫날부터 상하로 진동이 심해 ‘미친 다리’라는 별명이 붙었어요. 그런데 스릴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타코마 다리는 유명해져 관광객이 급증하고 교통량이 증가했어요. 흔들림과 큰 하중에도 불구하고 당시 전문가들은 다리의 안전성을 확신했지요. 하지만 그토록 자신한 튼튼한 강철 다리는 무너져내렸어요. 다리의 고유주파수와 그곳을 통과한 바람의 주파수가 같아 공명 현상이 일어난 것이지요. 결국 4개월 동안 호황을 누리던 다리는 3시간 동안의 진동으로 무너졌지요.
동수 타코마 다리가 무너진 이후 다리를 설계할 때 축소 모형으로 실험하는 것이 기본 조건이 되었지요. 요즘은 컴퓨터로 분석하고요. 다리나 건축물을 지을 때 복잡한 주파수를 가지게 설계함으로써 하나의 특정 주파수를 가진 자연현상으로 인해 무너지지 않도록 한다는군요. 공명을 고려한 내진 설계는 도시의 건물을 건축할 때 중요한 부분이지요.
문영 1831년 영국 맨체스터에 설치된 브로튼 현수교 위를 500여 명의 병력으로 구성된 영국군 1개 대대가 발맞춰 당당히 행진했는데, 병사들의 발 구름과 다리의 진동수가 동일해 다리를 요동치게 만들었대요. 이런 진동으로 다리가 순식간에 붕괴되면서 200여 명이 사망했고요.
지원 공명 현상으로 다리가 파괴되는 현상이나 불협화음 같은 부정적인 현상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에요. 이전에는 물질을 입자라고만 생각했으나 드브로이는 모든 물질에 파동의 성질이 있다는 ‘물질파’(Matter Wave) 개념을 생각해냈듯이 전혀 새로운 것도 생각할 수 있을 거예요. 고유한 주파수의 공명 현상으로 파괴가 아닌 융합을 생각해봐야겠어요.
인숙 같이 있는 내내 마음이 불편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을 만나면 오래전부터 알던 사람처럼 마음이 편해지고 금방 친해지기도 하잖아요. 사람도 고유의 주파수를 가지고 있어서 주파수가 같은 사람끼리 만나면 공명 현상이 일어나는 것 같아요.
동수 학교 다닐 때 다른 주파수를 발생시키는 소리굽쇠 2개를 놓고 그중 하나와 같은 진동을 하는 소리굽쇠를 조금 떨어진 곳에서 두드리면 같은 주파수의 소리굽쇠만 진동하는 것을 관찰하는 실험을 했잖아요. 그때는 그냥 실험 결과를 적는 것만으로도 바빴는데, 지금 그 실험을 다시 생각해보면 왜 ‘짚신도 짝이 있다’는 속담이 떠오르는지. 사람을 만나거나 친구를 사귈 때, 또는 배우자를 고를 때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불협화음으로 인한 가족 문제는 생기지 않을 것 같은데….
문영 인간관계는 컴퓨터로 모의실험을 먼저 해볼 수 없다는 것이 문제군요. 정지한 듯 보이는 것에도 진동이 있듯이 아무리 사이좋은 관계라도 흔들림이 있기 마련이지요. 사회현상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늘 대립되는 의견이 존재하잖아요.
지원 선거도 일종의 공명 현상이라고 한다면 비약이 심한 것일까요? 국민 개개인의 작은 의사가 하나로 모여 전체 의견이 결정되니까, 일종의 공명 효과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각자의 에너지는 힘이 작지만 국민의 에너지가 모이면 그 위력은 상상할 수 없잖아요.
<font color="#A341B1">소통만 잘되면 최상위자의 나쁜 의도도 무력화</font>인숙 선거 이야기를 하니까 생각났는데, 타코마 다리가 무너질 때 인명 피해는 없었다고 해요. 그래서인지 그 사건 이후 워싱턴 주지사가 똑같은 다리를 건설하겠다는 연설을 했대요. 4개월간 다리로 인해 얻은 경제적 이익을 생각한 것인지, 사람들의 어리석음에 경각심을 주려 함인지는 몰라도 받아들이기 힘든 오만이지요.
동수 그래도 희망적인 것은, 통계물리학자들이 컴퓨터로 모의실험을 했는데 최상위자가 나쁜 의견을 내려보내도 계층 간 소통 채널이 다양할수록 최상위자의 의도대로 사회가 통제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전체 시스템에 좋은 쪽으로 의견이 수렴됐다고 하네요.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사람이 사는 사회가 좋은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라는 얘기죠.
문영 유전자변형 식품이나 나노기술 등 새로운 기술이 적용되면서 전에 없던 문제가 발생하고 있어요. 개발자와 이해관계자, 소비자는 각자의 편에서 어려움과 불편함, 불안을 말하고요. 의견을 충분히 나눠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오히려 문제 해결 시간을 단축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다시 말하면, 의사소통을 통한 공명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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