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대가는 바라지 않을게, 대신 끝까지 노력하겠어

‘업보’가 진리처럼 받아들여지는 시대… 웹툰 ‘둘째에게’가 던지는 질문, 폭력과 범죄를 저지른 이에게 속죄와 구원은 가능한가
등록 2026-10-01 21:31수정 2026-10-05 08:36
네이버 웹툰 ‘둘째에게’ 화면 갈무리.

네이버 웹툰 ‘둘째에게’ 화면 갈무리.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자에게는 속죄를 구할 기회가 주어질 수 없을까. 그 자신이 구원받을 자격을 잃은 자는 누군가를 구원할 자격도 영원히 잃게 된 걸까. 천천히 곱씹어보면 결코 가볍지 않은 질문들이지만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딱히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업보’라는 말이 일종의 진리가 되어버린 시대다. 작은 잘못 한 번에 ‘나락행 급행열차’를 타는 일도 빈번하다. 이런 시대이니 속죄와 구원의 가능성에 관해 차분히 질문을 던지는 일은 귀하다.

2025년 12월 네이버에 연재를 시작한 고태호 작가의 웹툰 ‘둘째에게’는 그런 의미에서 귀한 작품이다. 고태호 작가는 인간의 본질을 사정없이 들춰낸 다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던지는 작품을 줄지어 연재해 이미 ‘만신’의 경지에 올랐다고 평가받는다. 복수와 용서의 의미를 무겁게 성찰하는가 하면(‘당신의 과녁’), 인간 군상의 복잡성을 냉정하게 그려내기도 했다(‘펀치드렁커드’). 그런 고태호 작가가 ‘둘째에게’에서는 구원과 속죄에 관해 질문을 던졌다.

 

조직폭력배·이류 소설가의 기이한 만남

 

어려서부터 범죄와 폭력으로 물든 세계에서 자라나며 그 자신 역시 숱한 폭력과 범죄에 동참해온 조직폭력배 ‘둘째’가 이 작품의 주인공이다. 작중에서 그는 이름이 공개되지 않은 채 조직 내 서열을 의미하기도 하는 둘째라는 호칭으로만 불린다. 보육원에서 함께 자란 ‘누나’가 탁월한 수완으로 조직범죄를 기획하고 추진하면, 압도적인 주먹을 가진 둘째가 행동대장 역할을 수행한다. 둘째는 조직범죄의 세계에 너무 오래 그리고 너무 깊이 몸을 담근 탓에 그 세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누나를 “형제이자 동업자, 친구이자 부모”라고 부를 정도로 정서적 결속도 강력하다.

이런 둘째에게 예상치 못한 취향이 있다. 그는 독서를 사랑한다. 그리고 글을 쓰고 싶어 한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은 그에게 의미 있는 일처럼 보인다(다른 하나는 취향에 맞는 패션을 착용하는 것이다). ‘비즈니스’(물론 폭력적인 일이다)를 하러 가기 전 카페에서 독서에 몰두해 있는 둘째의 모습이 이 웹툰의 첫 장면일 정도다. 일을 마치면 나름대로 습작을 쓰기도 할 만큼 글쓰기에 대한 둘째의 애정은 상당하다.

이 작품은 둘째가 우연한 계기로 자신이 사랑하는 책을 쓴 작가와 교류하게 되면서 시작한다. 그의 이름은 ‘이류진’, 이름에서 드러나듯 ‘이류 소설가’를 벗어나지 못하는 인물이다. 문학상에서 신인상을 받을 정도의 데뷔작을 썼지만, 직후 슬럼프에 빠져 허덕이며 카페 알바와 대학 강의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이류진은 자신의 책에 몰두하는 둘째를 지켜보다가 그가 범죄 세계에 속해 있음을 눈치채고, 그와의 만남이 자신의 창작 활동에 큰 영감을 줄 것이라는 판단으로 교류를 시작하게 된다. 둘째는 이류진의 엇나간 호기심이 불편하지만, 책에 관해 대화를 나누고 글쓰기를 배울 수 있는 작가와 교류할 기회에 비하자면 그런 불편함은 참고 넘길 수 있었다. ‘둘째에게’는 두 사람이 서로와의 만남을 계기로 조금씩 바뀌어가는 과정을 주요 줄거리로 한다.

 

네이버 웹툰 ‘둘째에게’ 화면 갈무리.

네이버 웹툰 ‘둘째에게’ 화면 갈무리.


네이버 웹툰 ‘둘째에게’ 화면 갈무리.

네이버 웹툰 ‘둘째에게’ 화면 갈무리.


모순된 삶 속에서 타인을 구원할 수 있을까

 

둘째에게 이류진은 구원이었다. 평생 조직범죄 세계 속에서 살아온 둘째는 이류진과 나누는 대화가 너무나 소중하고 귀했다. 둘째에게 조직폭력배들과의 소통은 “말의 교환”일 뿐이고, 이류진과 나누는 소통이야말로 진정 “대화”라고 부를 만한 것이었다. 하지만 둘째가 속한 세계는 늪처럼 끊임없이 둘째의 발목을 붙잡았고, 그때마다 둘째는 폭력을 휘두르며 자신의 주먹에 피를 묻힌다.

그는 씻을 수 없는 죄를 너무 많이 지었고, 구원을 기대할 수도 없는 인간이 된 지 오래됐다. 그도 자신이 이 세계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는 전혀 믿지 않는다. 폭력을 경멸하고 혐오하지만, 폭력을 행사하는 일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모순적 삶을 살아간다. 비즈니스를 방해하는 상대 조직에 과도한 폭력을 행사한 부하에게 “왜 필요 이상으로 잔혹했냐”고 힐난하고 “괴물로 사느니 병신으로 살라”고 조언하지만, 돌아오는 부하의 대답은 둘째의 윤리를 주저앉힌다. “어차피 했어야만 했던 일이잖아. 본인은 적어도 열은 담가놓고 이제 와 새삼스레….” 부하의 말에 둘째는 별다른 대꾸를 하지 못한다.

그러나 둘째가 이류진과의 교류를 통해, 그리고 독서를 통해 조금씩 바뀌어간다는 사실만은 분명해 보인다. 둘째는 자신이 관리하는 유흥업소에서 10대 여학생이 20대로 위장해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여자아이는 완전히 오염된 세상 속에서 최소한의 교양도 없이 되는대로 살아간다.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곤 밈과 욕설, 자기 과시와 뒷담화뿐이고, 몸을 파는 일에 그 어떤 자괴감도 느끼지 않는다.

둘째는 문득 이 아이의 삶을 바꿔야겠다고 결심한다. “어울리지도 않는 짓을 하는군. 주제도 모르고. 하지만 나와 같은 길을 걷게 하고 싶지는 않아.” 둘째의 독백에는 누군가를 구원하기 위해 나서는 자신의 자격을 의심하는 말이 짙게 깔려 있지만, 그것이 아이를 구원하지 않을 이유는 못 된다. 그에겐 그저 “할 수 있는 일”이 있기 때문에 그 일을 할 뿐이라는 것이다. “부탁이니 바뀌어라, 꼭.”

둘째는 아이에게 소설책과 노트를 쥐여주고, 독후감과 일기를 써오면 돈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둘째 자신이 소설을 읽고 글을 쓰면서 자신의 세계를 의심할 수 있는 힘과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고 싶다는 의지를 얻은 것처럼, 이 아이도 소설을 읽고 글을 쓰면서 그런 것을 얻길 바라는 마음이 이 제안에 담겨 있다. 둘째는 이 아이를 구원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를 통해 속죄할 수 있을까. 둘째의 이런 노력을 세상은 어떻게 평가할까.

 

미국 갱단 총잡이의 속죄를 다룬 게임도

 

아직 작품이 연재 중이니 앞으로 둘째의 삶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독자인 나는 함부로 예측하기 어렵다. 다만 참고가 될 수 있는 다른 이야기를 들여다볼 뿐이다. 2018년 출시된 게임 ‘레드 데드 리뎀션 2’(이하 ‘레데리2’)가 그것이다. 미국에서 서부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던 1899년, 서서히 몰락해가는 갱단과 그 갱단의 행동대장 ‘아서 모건’이 이 게임의 주인공이다.

‘둘째에게’는 ‘레데리2’를 현재 시점으로 각색한 이야기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그 서사구조가 상당히 닮아 있다. 아서는 어린 시절부터 ‘반 더 린드 갱단’의 리더 ‘더치’에게 거두어져 갱단에서 총잡이로 자란 인물인데, 1899년에 이르러 갱단이 몰락하면서 그 자신도 결핵을 얻어 죽음으로 향해 간다. 더치는 점점 더 악인으로 변해가고, 아서는 더 이상 최소한의 대의도 없이 범죄만을 일삼는 갱단을 보며 자신의 폭력으로 얼룩진 지난 삶을 되돌아본다.

죽음이 코앞에 다가왔음을 직감한 아서는 마지막으로 그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자신은 갱단을 벗어나지 못한 채 곧 죽을 운명이지만, 갱단에는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아서는 그들을 구원하고자 한다. 그처럼 갱단 밖을 상상하지 못하는 ‘존 마스턴’을 끈질기게 설득해 가족과 함께 다른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다. 또 자신이 갱단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삶을 파괴한 피해자들을 찾아 사죄하고 그들이 새 삶을 살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한다.

아서는 자신의 괴로움을 누구에게도 드러내지 못하지만, 오직 칼데론 수녀에게만은 솔직하게 감정을 털어놓는다. “저는 두려운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칼데론 수녀는 답한다. “두려워할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사랑이 존재한다는 도박을 하고, 사랑하는 행동을 하세요.” 아서는 수녀의 말을 따랐다. 그는 평생 범죄를 저지르며 살아왔고, 그가 피해를 입힌 이들에게 결코 용서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지만, 그럼에도 죽는 순간에는 좋은 사람, 그보다는 ‘노력하는 사람’으로 남기를 바랐다. “난 노력했어. 끝까지… 최선을 다했어.”

네이버 웹툰 ‘둘째에게’ 화면 갈무리.

네이버 웹툰 ‘둘째에게’ 화면 갈무리.


아주 작은 길이라도 열릴 때까지

 

아서 모건은 노력하는 길을 선택했다. 그 과정에서 용서를 구하지 않았고, 구원받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다만 스스로 속죄했을 뿐이며, 누군가를 구원하기 위해 분투했을 뿐이다. 우리 역사 속에서 어떤 악인들은 삶의 마지막 순간에 종교에 귀의하곤 했다. 그 목적이 그저 자신이 구원받길 바라는 마음에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뻔히 들여다보이기에 우리는 그것을 역겨워하고 도저히 인정하지 못한다.

속죄와 구원의 가능성에 관한 질문에서 정말 중요한 대목은 아마 이 지점일 것이다. 용서받길 바라며 속죄하는가? 구원받길 바라며 구원하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용서받을 수도, 구원받을 수도 없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속죄, 대가를 바라지 않는 구원. 그것을 기꺼이 선택하고 끊임없이 노력할 때 비로소 속죄와 구원을 향한 아주 작은 길이 열리는 것이다.

둘째에게 그 길이 열릴 수 있을까. 문학이 둘째를 구원했듯 그 여자아이도 문학으로 구원받을 수 있을까. 둘째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가 파괴한 세계로부터, 혹은 그의 세계를 경멸하는 세계로부터 인정받거나 용서받을 수는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둘째가 그 노력을 하지 않아야 할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게임 ‘레드 데드 리뎀션 2’ 화면 갈무리.

게임 ‘레드 데드 리뎀션 2’ 화면 갈무리.


게임 ‘레드 데드 리뎀션 2’ 화면 갈무리.

게임 ‘레드 데드 리뎀션 2’ 화면 갈무리.


게임 ‘레드 데드 리뎀션 2’ 화면 갈무리.

게임 ‘레드 데드 리뎀션 2’ 화면 갈무리.


윤리라는 것은 그 중간 어딘가에 있는 듯하다. 용서받지 못하더라도, 속죄를 위해 노력하라는 것. 구원받을 수 없어도, 누군가를 구원하기 위해 노력하라는 것. 그것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지에 대한 기대는 저 멀리 내려두고, 오직 옳다고 믿는 일을 하라는 것. 그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적어도 자신만은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는 사실을 기억할 테니.

 

강남규 ‘토론의 즐거움’ 멤버·‘지금은 없는 시민’ 저자

 

 

 

 

 

 

 

한겨레 저널리즘을
응원으로 지켜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