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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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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차례의 시시함

‘새아가’ 자격으로 본 남자들의 소꿉놀이와 어른들의 핼러윈
등록 2026-10-01 21:51수정 2026-10-03 07:57
2023년 9월22일 서울 은평구 은평한옥마을 예서헌에서 열린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2023 추석차례상 시연 행사에서 추석 전통 차례상이 소개되고 있다. 연합뉴스

2023년 9월22일 서울 은평구 은평한옥마을 예서헌에서 열린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2023 추석차례상 시연 행사에서 추석 전통 차례상이 소개되고 있다. 연합뉴스


추석 연휴의 끝자락, 내가 운영하는 독서모임에 누가 감자 치아바타를 가져왔다. 오늘 아침 직접 구웠고 완전히 식히지 못했다며 봉지를 펼치자 구워진 구황작물이 내는 고소한 향이 피어올랐다. 맛은 딱 집에서 구운 빵 맛이에요, 어설픈 맛, 하고 빵 주인은 말했지만 애매한 오후 시간의 출출함을 가시게 해주는 맛있고 소중한 간식이었다. 자른 단면에 훈기를 품은 치아바타 한 덩이가 창으로 쏟아진 오후 햇빛에 희게 빛날 때, 난생처음 ‘새댁’으로 지낸 지난 이틀이 꼭 전생처럼 낯설게 느껴졌다. 각진 책과 둥근 빵 앞에 앉은 이 시공이 진짜 나의 명절인 것처럼. 송편과 탕국, 모르는 할아버지들의 이름이 적힌 종이가 올라간 차례상 앞에 절하던 그 시공은 내가 모르는 누군가의 명절이었던 것처럼.

 

전통에 덴 경험 없이 새 전통 창안하려 했던 나

 

지난해 추석과 이번 추석 사이에 두 가지가 변했다. 아빠가 이 세상에 없다. 나는 기혼자가 되었다. ‘새아가’ 자격으로 낯선 어른들에게 인사하고 예쁨 받으러 다니는 하루는 생경했다. 이제는 아빠와 함께 차례를 지낼 수 없다는 사실, 아빠 사진을 차례상에 두고 절을 올려야 한다는 사실에 적응하기도 전에 나와 성씨가 다른 조상에게 절을 올리러 갔다. 아빠가 없는 첫 추석 아침에 엄마가 혼자인 결정적인 이유는 나도 동생도 딸이기 때문이라는 것, 그 사실을 납득하기란 불가능했다. 내 나라의 전통 앞에 내내 관광객처럼 놀라며 추석을 쇠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내게 추석이란 평소에 못 먹는 음식을 해먹는 날에 지나지 않았다. 기차표 예매 대란도, 한우 세트나 스팸 세트도, 머리를 쳐낸 과일이 올라가는 제사상도, 간만의 식사를 기다리는 조상도 프리랜서 작가에게는 거리가 먼 일이 된 지 오래였다. 한동안은 서울이 한산해지는 드문 기회를 틈타 친구들끼리 만두를 빚거나 전을 부쳐 먹곤 했다. 하나같이 원가족과의 관계가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남다른 사람들이었다. 본가에는 명절을 피해 쾌적하게 다녀왔다. 산 사람이 좋아하는 음식을 양껏 먹고 잠을 많이 잤다. 전통에 덴 경험 없이 새 전통을 창안하려 했다. 순진하고도 순정한 마음이었다.

성이 다른 가족의 명절 풍경을 보는 일은 한편으론 흥미로웠다. 꽤 오랫동안 변함없었을 명절 풍경에 갓 결혼한 젊은이가 새로 입성했다는 이유만으로도 어른들은 힘을 낼 수 있었다. 새로운 가족을 환대하고 자기 가풍을 소개하는 사람들의 활력이 내내 거실을 감돌았다. 여자 어른들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고, 남자 어른들은 활발하게 움직였다. 음식이 놓이는 순서와 방향, 지방에 적힌 한자를 가지고 다투는 남자들의 심각한 얼굴에 즐거움과 긍지가 스며 있음이 보였다. 제사란 남자들의 소꿉놀이요, 어른들의 핼러윈이었다. 차례상 앞의 사람들은 분주했고, 차례상 위의 음식들은 가만했다. 직접 하는 대신 가게에서 주문한 음식들이라 플라스틱 그릇이 받쳐져 있었다. 진짜 음식보다는 음식 모형에 가까워 보이는 구운 고기, 삶은 고기, 문어, 꼬막, 밤, 송편, 나물 등등이 가만히 앉아 사람들의 절을 받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친척들이 다 모이길 기다리는 동안 음식 냄새가 조금씩 불길하게 바뀌어갔다.

 

절하는 남성들 엉덩이와 회색 양말 같은

 

한 어른이 웃으며 내게 말했다. “남자는 두 번, 여자는 네 번 절하는 거야.” 처음 들어보는 규칙이었다. 나는 이 제사에 십 년 넘게 여자들이 참여하지 않았다고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 오래된 규칙이 새삼스레 부활한 이유는, 새 가족이 된 나를 조상에게 어여삐 소개하기 위함이다. 좋은 마음이었고, 구태의연한 풍습이었다. 남자들은 두 번의 절을 마치고 우뚝 서 있었다. 그 사이로 두 번을 더 내려가며 엄마 생각을 했다. 지금 엄마도 아빠에게 절을 올리고 있을까. 새벽까지 갈비찜과 잡채를 한댔는데, 그 맛이 얼마나 좋을까. 이 절을 차라리 아빠에게 하고 싶다. 그렇다면 네 번이 아니라 여덟 번의 절을 올릴 수도 있다. 절을 마치고 일어나며 생각했다. 나는 무척 시시하구나. 작가란 무척 시시하구나. 내가 여자라는 사실에 비하면. 또한 우리도 별거 없구나. 나도 배우자도 여성임과 남성임을 넘어설 수 없는 각자의 시공간이 있다는 게 놀라웠다.

그보다 혹은 그만큼 놀라운 것은 내가 얼마나 비위가 약하고 참을 생각이 없는지였다. 아무도 나를 구박하지 않았고 내 손에는 물 한 방울 묻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네 번의 절에 적응할 생각이 없다. 누군가는 맨손으로 피라미드를 쌓아 올리기도 한다지만, 나는 벽돌 한 장 내 손으로 옮길 생각이 없다. 이것은 저항도 혁명도 아니고 다만 어리광이자 엄살일 뿐이다. 그러나 내가 본바 구조적 억압과 차별이란 것도 그만큼이나 시시하고 쩨쩨하다. 구조는 아름답고 거대한 대리석 성벽의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구조는 이를테면 상해가는 음식 앞에 엎드린 남자들의 엉덩이와 회색 양말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참을 수 없을 정도는 아닌, 어딘가 우습고도 가여운 모습으로.

 

배신자·불화자들과 책 펴고 나눠 먹은 빵

 

한 어른은 내게 작가님이시니 이 모든 걸 잘 봐두었다가 쓰라고 일렀다. 그리고 나는 정말로 그렇게 했다. 새아가다운 미소를 짓다가도 나는 멀리 글 쓰는 사람의 자리로, 이를테면 음침한 천장 모서리처럼 나를 포함한 모두를 관찰하는 자리로 떠났다. 본래 쓰는 마음이란 자리에 있으면서도 자리를 떠나는 마음, 배신자와 밀고자의 속성이 도사리는 마음이기 때문일 것이다. 짧은 연휴의 마지막 날만큼은 그런 배신자, 불화자들과 둥글게 모여 책을 펼치고 빵을 나누어 먹었다. 더할 나위 없이 마음이 편한 한가위의 마무리였다.

 

글·사진 안담 작가

 

*냉장고와 도마 앞에서 하는 생각들. 사라지고 나타나는 한 그릇의 음식에 대해 씁니다. 출출할 때 참고하세요. 4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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